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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4 15:18
오대산 소금강 계곡의 단풍은 아직도 지치지 않고 연곡천 방향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갈색으로 변한 가을의 절정을 지나 찬바람이 계곡을 따라 이리저리 몰려오고 있었지만, 낮은 산자락엔 마지막 숨을 고르는 단풍들이 아직도 짝을 이루어 오후의 따뜻한 볕을 쬐고 있었다.
그것은 모든 오욕칠정을 내려놓고, 온통 비워서 가득찬 者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삶의 진수같은 것이다. 나는 너른 바위에 주저앉아 그들의 행적을 바라고 있다.
잠시 절정의 순간을 보내고 차라리 갈색으로 변하는 자연의 지난 시간과의 악전고투를 헤아리면서 나는 경건해진다. 그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 삶에서 거저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오직 인간만이 힘들이지 않고 쉽게 소유하려 한다고.
골짜기는 좁고 깊었고, 계곡물은 쉬지 않고 흐르고 흘러 동해로 달음박질치고 있었다. 소금강의 철지난 단풍둘은 이렇게 말한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내세우지 않으며 뽐내는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입을 열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가슴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무리를 지은 사람들은 그때 나는 거기에 있었다고 여기저기에 존재증명을 남긴다. 시절이 지나 절기가 겨울로 들어서면 인적이 끊긴 계곡은 그들만의 세상이 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오롯이 현재를 산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고, 이 순간을 위해 어제가 있었고, 내일을 위해 지금 나는 여기 존재하는 것이라고 쉬지않고 흐르는 구룡폭포는 일깨운다.
수려한 풍광을 해친다는 주위의 원성을 무릅쓰고 마눌 옆에 섰다. 나는 갑자기 다급한 요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ㅎㅎ
바다는 우리들 처지와 맞닿아 있었다. 철지난 바다는 지난 여름의 웅성거림들이 아직도 잔해처럼 남아 쉼없이 밀려드는 파도와 함께 포말로 부숴지거나 모래사장위로 올라와 흔적도 없이 흝어져 사라지곤 했다.
바다는 아주 못견딜 정도로 적막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다만 아득해진다. 오대산의 소금강 계곡물은 동해로 흘러들어 결국 세계에 닿고, 파도는 부숴져 내 눈앞에서 자글거린다. 나는 이제 슬픔이 설령 나를 옥죄어도 내 생을 연민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마음을 이 바다에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