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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1 22:32
가을이 지나가네, 붙잡지도 않았고 보낼 수도 없는 가을이 지나간다. 가까이 함몰되어 바라본 가을의 정취는 부분이지만, 주마간산으로 보는 관망은 확실한 가을이다. 해 저물녁 문경새재를 지나가며 보는 월악산의 풍광은 일품이다. 다만 상업주의적 광고판이 문경새재 IC로 향하는 길에 턱하니 가로막고 있다. 사진을 찍으려다 은근히 짜증이 밀려왔다. 더구나 IC로 향하는 길은 급격한 좌회전이다. 여유도 없고 기럭지도 짧아서 도대체 불법 주, 정차도 할 수 없었다. 소중한 것은 이렇게 급박한 순간순간에 있다는 찰나의 믿음이다.
갈 길은 급하고,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가며 느끼는 가을은 확실히 가고있다. 따스한 저녁 햇살이 비치는 조그만 언덕배기 사람사는 주변에 여지없이 묘지가 잘 정리되어있다. 화려한 무덤과 비석들..그리고 잔디로 포장되어 죽음의 기록을 남겨놓았다. 좁디좁은 국토의 익숙한 풍경이지만, 죽음은 이렇게 가까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왕도 대중도 어떤 도를 텄다는 승려나 성인도 결국 죽었다. 내가 지나쳐 온 묘지가 증명하고 우리들이 확인사살할 것이다.
솔밭(존칭생략)이 내가 문경새재를 지나가기 전 카톡이 왔다. 문재인을 추천한다는 카톡이다. 나는 여지없이 확인을 눌렀고, 솔밭 덕분에 일단은 문재인의 시민멘토단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글은 만만하지 않다. 바로 그의 속물성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속물성을 자백한 사람은 솔밭만이 유일하다는 기억이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객관적 사실을 배제하고(나 포함) 속물은 없다.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솔밭만이 자백한 관계로 유일하게 솔밭만 속물이자 유죄다. 의문이다? 문제는 이러하다. 솔밭이 무죄냐? 유죄냐? 아니면 나를 포함하여 고고한 척하는 회원들이 위증죄냐? 너무 심각한 상상은 하지덜 말고..우아한 삶의 속물성!
인간의 주기관은 입과 학문(항문, 더러는 지방에 따라서 고고한 한글을 모독하는 표현을 정말로 사용한다. 당장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 알 것이다)이고,나머지는 보조기관이다. 먹는 것과 배출하는 것,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냐는 생각이다. 인간의 진화가 주기관을 보조화시켰고 보조기관을 주기관화하고 지나치게 이상화로 숭배한다. 지금 대선주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의 범주는 다 복지가 아닌가? 복지가 먹는 것의 해결이 과제다.
솔밭은 대충 80년대 학번이라 생각한다. 80년대 학벌들은 좀 유별났다. 6.29선언을 이끌어 낸 결과로 취직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짱돌을 던졌든 안 던졌든 그랬다. 이들이 취업이 힘들어서 사교육을 등에 업고 대치동 학원가로 많이 진출했다. 대표적인 예는 박원순과 곽노현을 도운 김범이 아닌가 생각한다. kbs의 스타강사인 최진기는 증권회사로 진출하였지만 말이다. 물론 사람사는 세상에서 더 지독한 운동권이 무현동상이 있지만..
이것은 결정론이자 절대론이 아니다. 내가 명망있는 사람을 지지한다고 도무지 그런 사람이 된다고 할 수도 없다. 원래 짝퉁이 더 삐까뻔쩍하게 주장하고 폼이 나는 법이다. 그러나 솔밭은 그 항상 속물成(성, 하비투스의 의미임. 언어의 이중성임. 성(性)이 절대 아니다. 니들 언어의 속성을 이해하길 바란다. 안 그러면 항상 찌질이로 살다 죽는다. 솔밭의 언어 사용법이 그렇다는 것이다. 언어의 이중성,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관점이다. 왜냐면 니들도 한 꺼풀 액면을 포장하고 화장빨로 말을 하잖아! 이것 이거이 노빠가 아닌 대중들은 절대 이해하지 않는다.
솔밭은 최소한 솔직해, 이게 내가 보는 관점이고, 당신들에게 솔직하자는 외침이자 "카르프디엠"이지. 인간은 속물적 그 근성으로 태어났다고 인정하는 절차가 솔밭의 위험성이자 솔직함이지. 물론 그가 사용하는 그 언어가 세종대왕의 뜻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지. 봉하국밥만 먹는 위험성을 상쇄하는 김치 겉절이의 곁들임이 인생의 참 맛이 아닌가.
누군가 악역을 맡아야 하고 솔밭이 기꺼이 그 역할을 맡는다면 인생의 맥주 맛이 카스와 하이트를 벗어나서 호가든, 아사히, 청도, 버드와이저의 다양한 맛으로 진보를 인정한다는 의미지. 맥주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안주라도 푸짐해야지. 암튼 내가 보는 솔밭의 의미는 그래..명색히 언어를 다루는 선생이고..경기도 용인에 사시는 사람사는 여성회원이 아들을 직접 맡겼고 결과에 성과도 이루었다는 경험을 들었어. 그런데, 난 그가 왜 수준을 낮추어 그가 그럴까? 하고 생각해? 더구나 프로들이 살아남는 강남 대치동에서 지금까지 살아서 남았다면 말야.
난, 항상 솔밭이 표현하지 못하는 글이 뭘까 하고 생각해. 죽을 때까지 숙제지. 나의 주기관은 튼튼하지만, 보조기관이 부실해. 특히 모가지가 아주 불편하지. 암보다 더한 불치병이야. 보조적 기능의 하부가 나의 상부와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어. 솔밭의 언어가 주기관과 보조기관의 각성을 촉구하는 것은 분명해..
베토벤이 "그래야 한다"란 말을 악보에 남겼는가 좀 기억이 않나? 근데 후세학자들이 그딴 뜻에 감히 베토벤이 한 말인데 뭔가 큰 뜻이 있다고 해석을 하고 난리불루스를 추었지..
근데 아무 뜻이 없어. 뜻은 외상값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얌? 예술가도 돈이 필요하고, 지금까지 좌파의 영웅이자 사람사는 세상에서 닉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체 게바라"는 아주 천박한 인물이야. 젊을 때..조카와 고모가 보는 저녁 식사자리에서 아주 천박하게 섹스를 한 인물이지.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이자 백인의 제국주의에 희생된 원주민 시녀자 식모야. 그러나 그가 쿠바혁명을 카스트로에 기대어 성공시킨 후 그는 일요일에도 노동을 한 경우지. 가끔 골프도 쳤어. 그 당시에는 아르헨티나의 인종차별이 분명히 적용된 나라였지. 결론은 우린 속물이얌. 성인은 내겐 너무 어려워. 당신들은 가능하다면 성인이 되길 바래. 난, 싫어 될 수도 없거니와 되길 주장한다고 사람사는 세상에서 주장도 안 해. 인도의 간디는 인도의 건축물에 나타는 온갖 섹스 자세를 보고 " 망측스럽다고 했다나 마나?" 그래도 동양적 차별에 노벨평화상에 다섯 번이나 노미네이트되고 상은 받을 수 없었어.
솔밭의 기본적 흐름은 솔직하고 더 크게 보자고 주장하며 넓게도 보자는 의미로 생각해. 내 생각은 대충 그렇다고..속물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현실에서 천국이 없다면 미래에도 죽음 이후에는 더더구나 없지를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