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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8 18:52
끔찍한 사태를 피하고 인간의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와 참여정치가 중요한 역할 수행한다
- 아마티아 센의 『센코노믹스』 중에서
이번 18대 대선의 최대 화두는 심화된 불평등의 해소다.
99%의 소득과 교육, 건강과 주거, 국방과 외교, 기회 및 결과의 더 큰 평등을 지향하는 정치적 의지와 경험이 많은 후보를 뽑는 것이 18대 대선의 최대 명제다.
덴마크, 일본, 핀란드,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 등처럼 평등한 국가일수록 더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은 이미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해 입증된 사실로써, 그 핵심이 정부의 정치적 의지에 달렸다는 것은 대선을 앞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불평등이 심화돼 그의 해소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정부는 개별적이고 임시방편적 정책을 통해 “불평등을 줄이지 않은 채 건강 문제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각종 조치들은 늘 사회경제적인 어려움과 그 어려움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 사이의 연결 고리를 끊으려고”만 한다.
“이는 사람들, 특히 빈민들이 겪는 어려움을 그대로 둔 채 어찌어찌해서 그 사람들이 더 이상 정신 질환이나 십대 임신, 교육 실패, 비만이나 약물에 굴복하지 않기를 바라고만 있겠다는 자세”와 다름없다.
수동적인 정부 관계자들의 생각이란 “모든 문제들은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것으로, 다른 문제와는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는 데서 나온다.
결국 정부의 정책이란 “사람들이 운동을 하고, 성병이나 임신 위험이 있는 성관계는 갖지 않고, 약물을 복용하지 않고, 안정을 취하고, 업무와 여가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아이들과 가까운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데 치중한다.
이런 근시안적인 “정책들 대부분은 공통적으로 가난뱅이들이 더 똑똑해질 수 있도록 교육만 시키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대신에 이러한 문제들이 불평등과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문제의 근원을 공유하고 있다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놓쳐버리기 일쑤여서 근본적인 불평등을 줄이지 못한다.
그래서 상대적 박탈감을 불러오는 각종 불평등이 어떻게 늘어났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면, 그래서 같은 선진국이라고 해도 더 평등한 국가가 행복하고 더욱 성공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온갖 불평등을 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해 개별적인 대응을 하는 정부의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다.
각국의 “정부가 평등을 증대하려 할 때마다 부족했던 것은 정책이” 아니라, “역사적 증거를 살펴보면 부족했던 것은 정치적 의지였다. 정부가 선의를 가지고 사회를 더 평등하게 만들겠다고 생각할 때까지 기다리보 보면 더 큰 평등을 성취하기 어렵다.”
이런 정부들은 “보통 좀 더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추진하지 않으면 자신의 존립이 위협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야 겨우 그러한 정책을 추구”하며, 1970~80년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부가 평등주의적인 정책을 도입한 이유는 해당 국가들이 정통성의 위기를 겪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동아시아 국가들의 경우, 민주주의의 확대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약해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기본적인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게 구축되는데 그쳤고, 그 결과 1990년대의 금융위기를 맞아 사회 전체가 무너지는 등 각종 불평등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보편적 복지의 대명사처럼 알려진,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과 함께 보편적 복지가 위협받고 있는 스웨덴이 “높은 수준의 평등을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제재소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노동 분쟁을 제압하기 위해 군대가 발포한 사건에 뒤이어,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한” 사회민주당이 강력한 정치적 의지를 앞세워 적극적인 정책들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다.
또한 미국의 좌파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선진국 중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에 심도 있게 연구한 결과 선진국 중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해진 이유는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제도, 규범, 정치적 힘의 변화’에 의해 발생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결과 “노동조합 약화, 생산성 분배 협약의 파기, 정치적 우파의 영향력 증대, 정부의 세제 개혁(주로 감세에 집중됐으며 박근혜의 ‘줄푸세’와 동일하다) 및 복지 정책 변화(기업 중심의 차등적 복지)”가 일어났음을 지적했다.
공정 시장을 주장하는 자유주의적 좌파에 가까운 그는 정부가 노동자에게 기본적인 삶의 질을 강제화하는 최저 임금제를 입법화하지 못한 것을 놓치는 우를 범했다.
사실 그것만큼 미국의 불평등을 설명하는데 핵심적인 것도 없는데 스티글리츠와는 달리 크루그먼은 노동자 입장에서 볼 때 각종 불평등을 야기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을 빠뜨렸다.
아무튼 각종 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에는 여러 가지 있지만 더 큰 평등을 달성한 국가들의 역사적 사실들을 살펴볼 때, 우리가 알 수 있는 분명한 진실은 “어느 국가에서든 소득 분포 상에 발생한 주요한 변화는 단순히 시장의 힘이 임금률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발생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불평등이 심한 국가들이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책을 세울 때는 크루그먼이 미국의 불평등 요인들을 설명할 때 제시한 “제도, 규범, 정치적 힘의 변화 같은 요인들”과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해야만 한다.
“세전 수입 차이의 증가, 보수적인 세율 정책, 사회보장 축소, 노동조합의 힘을 약화시키는 법률 제정 등”을 원상복귀시키는 정책을 집행하고, 최저임금을 생활임금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비정규직 노조의 활성화를 보장해야만 심화된 불평등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여러 학자들이 밝힌 것처럼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급격하게 늘어난 시기는 레이건과 대처 정부가 “자유시장의 혜택을 찬미하는 신우파의 승리와 통화주의 경제학(신자유주의)의 우세를 공식화”한 때부터였다.
게다가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 이후로는 자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자본주의를 위협할 요소가 사라졌기 때문에 각국은 정부 소유의 공기업과 공공시설 및 사회안전망 관련 일들을 민간에 이양하거나 싸게 팔았다.
동시에 각국 정부는 기업의 활동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를 풀고 자본가와 노동자 간에 유지됐던 아슬아슬한 힘의 균형을 깨기 위해 노동조합의 힘을 철저하게 약화시키나 조합원 수를 최대한 줄이는데 전력했고, 그 결과 부의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됐다.
영미의 금융세력들과 미국의 재무부를 중심으로 하는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각종 국제기구(IMF, 세계은행, WTO)와 다자간 또는 양자 간 협약들을 동원해 이런 추세를 강화시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결과 대체적으로 평등한 사회를 창출해낸 “EU의 경우 피고용인의 소득 중 약 70퍼센트가 단체 협약에 의해 보장” 받는데 비해,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산이었던 “미국은 단지 15퍼센트, 영국은 35퍼센트로 EU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여줄 정도로 노동자들의 권리는 철저하게 무너졌다.
결국 각국 정부에게 부족했던 것은 불평등을 해소해 보다 평등하고 건강한 사회로 가는 정책적 의지의 부족이었고, 각종 이해를 조절하는 국정 경험의 부재였으며, 그것이 현재의 각종 불평등을 최대로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다.
분노한 사람들의 외침인 ‘1% 대 99%의 사회’라는 것도, 네그리와 하트가 말한 전지구적 유일 권력으로써의 ‘제국’의 탄생이라는 것도 결국은 초국적기업과 거대 자본들과 손잡은 정치 세력의 정치적 의지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신생 제국의 일원으로 세를 불리고 있던 재벌과 대기업들에게 상생의 경제를 요청하는 자리에서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한 것도 사실은 더 큰 평등을 이루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기득권의 저항에 막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대통령의 힘만으로는 구조적인 불평등을 넘는 것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말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어느 나라보다 만연돼 있는 대한민국의 불평등을 완화시키려면 정책을 집행하는 정치적 의지와 함께 거대 재벌이나 대기업들의 자발적인 도움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고 노무현 대통령은 기득권들의 전방위적 저항 때문에 정책 수행에 대한 정치적 의지가 취임 초보다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런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문재인 후보는 각종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정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를 실천하는 정치적 의지와 힘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제성장이 더 이상 국민의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시대를 맞아 성장에 앞서는 분배의 중요성과 그를 정책적으로 실현시키는 정치적 의지가 가장 강하고 누구보다도 저항 세력의 행태를 많이 경험한 문재인 후보만이 더 큰 평등을 구현할 수 있는 적임자임에 분명해 보인다.
성공과 좌절을 모두 경험한 사람 만큼 문제의 핵심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는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그들의 역할과 인원의 다운사이징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득권의 잘못을 바로 잡고 모든 정치인이 국민을 위해 제대로 일하는 정치 활성화를 요구하는 것이라면, 18대 대선의 승자는 당연히 문재인 후보여야 한다.
지금은 더 큰 평등을 이루기 위해 분배를 우선해야 하는 강력한 정치적 의지와 국정 경험이 간절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왜 문제인 후보인가(2) - 조세정의와 기본소득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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