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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24 13:24
오리야, 수고해!
<우리 노짱님>
어미 품에서 갓 깨어 난 듯한 앙증스런 녀석들의 모습이다. 아직 잠에서 들깬 어슬픈 눈빛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내 손안에서 꼼지락 그리는 자태는 그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세상을 향해 발을 내 딛기가 아무래도 아니라는 듯 자꾸 뒷걸음질이다. 포근한 어미손길에서 겨우 벗어난 녀석에게는 들판이 아마 끝없는 광야처럼 느껴지겠지. 내 손바닥에서 빠져나가지 않으려는 태도가 가히 필사적 힘에 가깝기까지 하다.
덩치를 보나 논바닥을 터전으로 삼기는 무서울 것은 사실일 게다. 실은 훈련이 된 무리들도 새로운 세상은 두렵기 마련이다. 미지의 시간들에 대한 궁금함은 호기심을 주기도 하지만 그 호기심은 때에 따라 불안과 공포를 낳기도 한다. 또한 실행과정엔 실수를 낳는 경우도 흔히 있다. 그런 점을 현재 녀석들은 다 알고 있는 듯 왠지 나의 품을 자꾸 그리워하는 눈치이다. 저 모 포기 속엔 어떤 먹이가 있는지 바람 따라 갖은 무늬를 그리는 물결 속엔 어떤 천적이 있는지, 아직 그것을 알기에는 너무 미숙함을 자신도 아는 듯 주저하는 모습이다. 광야처럼 아득하기 만한 터전이 자꾸 자꾸 걱정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허지만 이제는 그곳으로 나아가야한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자신의 삶은 자신이 스스로 개척해 나아가야한다. 어느 길이던 첫길은 항상 낯설고 두려움이 들기 마련이다. 탐험가들이 미지의 땅을 개척할 때는 생명을 걸고 자신을 던지지 않았겠는가. 수많은 암벽과 천적들과의 전쟁은 물론 굶주림과 헐벗음 속에서도 도전정신을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자신 한 몸 살기위해 험한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동포애, 나아가서는 인류애가 가득한 사랑이 넘쳐 스스로 거친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게다.
그렇듯이 이제 오리가 이런 기로에 놓여있다. 사람들에게 건강한 먹을거리를 위해 아프리카 대륙을 탐험한 콜럼버스가 되어야한다. 모를 향해 달려드는 적들과 싸움도 해야 하고 그로 인한 생채기도 잘 감수를 해야 한다. 또한 동지들과의 시기 질투며 경쟁도 배재할 수 없는 일이라는 점도 잘 알아야한다. 대륙 탐험에 나서는 콜럼버스를 위험한 항해라며 동지들의 거센 반발을 쌌던 일들도 우리 오리들은 잘 알고 있으리라 나는 믿는다. 여리 디 여린 오리를 풀어주면서 ‘오리야, 수고해!’ 여름내 충직한 농군역할을 잘 하라며 응원을 보냈다. 그러나 안스러운 마음은 좀처럼 떠나질 않았다.
바로 우리 노무현대통령이 남기고 간 사업이다. 2만여 평에서 50만평을 오리농군에게 봉하들녘을 맡겼던 것이다. 이렇게 넓은 터전을 확대할 수 있었던 것은 오리들의 탐험 정신이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적들과 대적하였으며 튼튼한 쌀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달리고 달린 열성 때문이었다. 혹여 몹쓸 잡초가 흙을 비집고 올라오지 않나 나쁜 놈의 해충들이 벼를 시들게 하지 않나 철저한 경호원이 되어 벼들을 지켰다.
탐험가들이 인류의 삶의 터전을 위해 모험을 했듯 오리 농군 또한 땅을 살리고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일찍 어미 품을 떠나 생존의 가치를 스스로 익혀나가는 것이다. 이러니 녀석들의 수고가 어찌 대견스럽지 않겠는가. 한 없이 연약한 몸짓들이 아직은 걱정스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녀석들은 결코 약하지 않다. 사람 손에서 풀려나자마자 빠르게 물길을 가르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상을 개척하듯 왕성한 호기심을 보여주었다. 마치 갑갑함에서 해방이라도 된 듯 일사천리의 기쁨을 누리는가 싶었다. 두려움. 연약함, 은 단순 나의 기우일 뿐이었다. 넓은 천지를 구하겠다는 뜻이 담긴 듯 누구보다 바빠 보였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지의 세계를 꿈꾸는 모습이었다. 돌진하듯 온 세상을 자신들이 점령한 것처럼 보였다. ‘오리야! 진정한 탐험가가 되어보렴. 천적들 앞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는 정신도 가지고 말이야. 그러면 우리는 너의 노고를 건강한 정신으로 이어받아 충실히 우리 농촌을 계승해나가겠지. 너희들이 천적들과 싸워 깨끗한 터전을 물려준다면 그게 바로 새로운 세상을 찾아준 게나 다름없단다.’ 이런 속삭임을 전하면서 조용히 녀석 곁을 떠나왔다.
그렇다 우리 노짱님이 퇴임 후 하고자했던 일이 바로 이런 삶이었다. 어떤 약품으로 천적을 이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천적을 이길 수 있는 대상을 찾았던 게다. 오리농군이 바로 그 대상이었으니 저 먼 나라에서도 얼마나 녀석들의 역할을 갸륵하게 여기겠는가. 생전에 품에 안고 사랑스럽게 어루만지던 그 모습은 누구에게나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퇴임 후 이루겠다던 대통령의 꿈을 오리 녀석에게 기대를 모으고 있었으니 그 희망은 무엇에 비할 바 없이 컸을 것이다.
오리 녀석 앞에서니 대통령의 그 원대한 꿈이 겹쳐져 저들의 노고가 정말 값지게 느껴진다. 밀려올 수입쌀에 대비해 질 높은 쌀 생산에 목표를, 대통령은 바로 오리농군들에게 맡기기로 하였던 것이다. 결국 질과 양으로 경쟁에서 이겨나가야 하는 시점이기에 건강한 쌀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와 있다는 점을 대통령은 누누이 강조하였다. 결국 이런 농법이 종국에 가서는 생산량도 늘리고 농민을 살리는 일이라는 점도 인식시켜 주었다. 어찌 저들의 임무가 중요하지 않겠는가. 또한 저들이 사랑스럽지 않겠는가. 내가 오리 녀석을 탐험가라고 지칭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내역이 있어서이다.
그러고 보면 오리를 미물이니 동물이니 부르기가 왠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세상을 구원하는 존재이기도한데 말이다. 사람이 개발한 물질은 오염이라는 문제를 낳지만 말 못하는 오리는 새로운 에너지원을 생산해내는 기술을 갖고 있지 않는가. 풀과 해충을 먹고 그 배설물은 또다시 땅의 지기를 높여주는 거름으로 재 탄생시켜주니 어찌 영물이지 미물이겠는가. 정말이지 가만히 그 역할들을 짚어보면 예사로이 느껴지지 않는다.
감히 우리들의 일생을 오리들만큼 누구를 위해 온전히 바치겠는가? 물론 그런 사람도 있다 만은 우리는 이성을 지녔기에 가능하지만 감정만으로 살아가는 녀석들에게는 참으로 놀라운 재능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오리 녀석의 역할을 알고 나서는 사람으로서 지녀야할 덕목이 다시금 새겨진다. 비록 표현은 못하지만 저들의 침묵 속에 때로는 사람보다 나은 금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금언이 어쩌면 이 세상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다는 것을, 녀석들을 통해 우리는 그만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리야! 수고해, 정말 수고해줘, 돌아오는 길 내내 녀석들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