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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11 10:05
지난 4월 27일, '프레임(frame)' 이론의 권위자인 조지 레이코프 UC 버클리대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를
만나기 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질문을 떠올렸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한국에서는 야권이 총선에 패배했고, 또 하나의 거대한
분기점인 대선이 올해에 있기에 그에게서 가져올 지혜는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프레임을
말한다. 선거 전에도, 그 후에도 프레임은 자신의 날선 비판을 객관화하는 도구가 되었다. 투쟁 현장에 있는 이들은 그래서, 그만
'프레임'을 잊자고도 말한다. 프레임이란 단어로 현실을 옴짝 달싹 못하게 옥죄는 압력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과연
프레임은 무엇인가? 레이코프 교수와의 인터뷰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했다. 선거 전술 평가라는 감각적 소재들이 무수함에도 원론에서
출발했다. 그래야 우리가 스스로의 현실을 타개하는 프레임을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 '프레임'이란 단어를 매일 보고 듣게 됩니다. 그래서, 혹 각자 자신들이 정의하는 프레임을 말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프레임이 뭡니까?
"
(프레임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습니다. 프레임은 생각의 구조입니다. 우리 두뇌 속에 있는 물질적인 것으로, 뇌 속 신경회로가
프레임의 구조이며, 거기에는 프레임을 규정하는 다양한 언어 의미적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당에 가면, 음식, 서비스,
웨이터, 계산서 등 한 묶음으로 짜여진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 구조가 프레임을 이룹니다. 야자수나 버스 등은 그 식당 프레임에
들어올 수 없죠. 프레임 속에는 특정한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모든 언어 속에 있는 단어는 어떤
프레임의 범위 속에서 의미가 규정됩니다. 두뇌 속에는 물리적으로 경험이 만들어낸 수만 가지 프레임들이 있습니다. 당신이 이해한다는
것은 뇌 속에 있는 어떤 프레임 속으로 맞춰 들어가는 겁니다. 그래서 프레임은 각각의 단어가 아니라, 단어가 활성화시키는
사고입니다."
- 그렇다면,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 사람들의 사고 패턴을 바꿔낼 수 있다는 건데요. 정치에 있어서 효과적으로 대중을 설득하는 프레임 활용은 어떤 방식입니까?
"
정치에서 가장 상위의 프레임은 도덕성입니다.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의견들은 모두 '무엇인가 옳다'라는 자신의 도덕적 생각 속에서
나오죠. 그래서 모든 정치는 도덕적입니다. 정책은 그들의 도덕적 프레임에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대중을 자신의 입장으로 끌어
오려면 가장 상위 프레임인 그 도덕적 프레임을 만들어야 합니다. 미국의 보수 정치리더들은 이를 잘 활용해요. 늘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가 옳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하지만, 민주당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은 항상 정책을 설명하는데 집중합니다."
-
영어로 도덕성(Morality)이라고 표현하였는데, 한국에서는 자칫 정치인 개인의 도덕성을 연상하게 됩니다. 지난 선거에도
개인에 대한 자질 평가가 주요 이슈로 떠올랐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지금 이야기 되는 도덕성은 정당성을 포함하는 일종의 가치
프레임이라고 보면 좋을 듯합니다.
"네. 사람들이 생각을 받아 들이는 근거는 98%가 무의식입니다. 의식적으로
논리를 따지고 취하는 경우는 오직 2%뿐입니다. 그런데, 소위 진보적인 사람들의 경우 사회 정의에 관심을 두면서 대학에서 정치나
사회과학 경제에 대한 강의를 들었습니다. 거기서 이성적으로 타당할 때 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다고 배웁니다. 이는 잘못된 낡은
이론입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인간은 만들어진 프레임에 기반해서 생각한다고 설명합니다. 상징, 비유에 기반을 둔 인지적 기초요소의
작용으로 반응하죠. 그리고 공감을 이뤄내야만 상대와 결속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 신경세포 체계 연구를 통해 증명되었습니다. 우리
몸이 그렇게 프로그램되어 있습니다."
정책에 앞서 '가치 프레임'으로 대응하라
![]() | |
▲ 자신의 연구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조지 레이코프 교수. | |
ⓒ 안희경 |
- 일단 그 정책에 관심을 준 다음에 반대할 것인지 의사를 결정하기에, 그들의 내용을 받아들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는 거군요.
"
그래서 긍정적인 것, 우리의 언어로 말해야 하는 것이고, 그럼 암암리에 무의식이 활성화되어 원래 지적하고 싶었던 부정성을 지적하게
됩니다. '우리 당은 정직합니다'라고 말하면, 상대는 정직하지 않다는 의미에요. 우리는 가장 긍정적인 관점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저들이 말하는 것을 부정적으로 되받아 치면서 이룰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 지난해 한국에서는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촉발한 주민투표가 있습니다. 이슈는 무상급식 문제였습니다.
"이런! 그건 우파의 프레임이에요. 무상급식을 이야기하자마자 바로 우파를 돕게 됩니다."
-
복지의 관점을 차별적으로 접근한 것인데요. 우파의 선별급식 대신 좌파는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했습니다. 학생들의 자존심을 지키며
나눔의 평등을 제시하는 보편복지입니다. 이번 선거에 앞서 이와같이 가치를 흔드는 정치적 논쟁을 다시 부각시키자는 의견들이
나옵니다.
"그래도 잘못된 접근입니다. 무상급식이란 말을 쓰자 마자 사람들은 자식의 급식비는 부모가 내야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거기에는 무상급식이 없는 거에요. 이 사안의 핵심은 진보의 시각과 보수의 시각입니다. 두 개의 다른 도덕적
시스템이죠. 민주주의에 대한 진보의 시각은 '서로 보살피며, 책임있게 행동하고 사회적으로 함께하는 노력이 훌륭하다'는 윤리
시스템입니다. 정부는 모두를 평등하게 보호하고, 평등하게 권한을 주는 도덕적 과제를 갖게 되죠. 바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개념입니다
이 원칙 아래서 도로, 공립학교, 공중보건, 음식 공급의 안전을 살피는 시스템 등이 제공되고 산업의
기초가 됩니다. 그 위에서 개인들이 사업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구요. 공적 시스템 없이 사적인 소유는 기능할 수가 없습니다.
이는 자유주의 진보들이 놓치는 중대한 사안이에요. 만약에 그대 스스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봐요. 하수 처리장을 세우겠어요? 길을
닦겠습니까? 공군 조종사를 훈련시킵니까? 우리는 다 공공시설을 이용했습니다. 혼자 돈을 벌어낸 것이 아니고 공익 시스템을
유지하는 책임이 있어요. 이것이 진보적인 생각이고 이 가치 안에서 이야기를 풀어야 합니다.
보수들은 이것을
거부하죠.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책임지는 것이다. 개인의 활동은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을 자유가
있다. 그래서 우리에겐 개인적 책임만 있지 사회적인 책임은 없다'고 합니다. 보수의 이런 사고를 저는 '엄격한 아버지
도덕'이라고 부릅니다. 가부장적 아버지는 선악을 구별하는 절대 권력입니다. 개인의 관심사를 추구하는 합법적 권리를 부여받아 부자가
되길 바라고 만약에 실패한다면, 이는 스스로 단련하지 못한 것이기에 가난해도 마땅하다고 하죠. 무상급식이 활성화되는 우파의
논리입니다.
여기에 대응하는 답은 공공성을 살려 말하는 거죠. '모든 학생의 적절한 학습효과를 위해서 학교는 충분한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라고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모든 이들이 민주주의 속에서 평등하게 된다는 정당한 도덕적 가치가 생기는
겁니다. 바로 공익 추구의 정당성을 어떻게 이야기 하느냐가 좌파의 과제입니다."
'영양 급식, 성장 급식'이라고 했다면,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할 건강권이 떠올려 졌을 테고, 그에 대한 차별적 접근이 시장논리에서 벗어나는 도덕적 가치 평가로 될 수 있었겠다고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