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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기억 / 개곰

댓글 5 추천 7 리트윗 0 조회 354 2012.10.11 08:54

노무현의 기억

 

글쓴이 : 개곰   2012-10-07 (일) 00:28

 

2006년 1월 헬기를 타고 폭설 피해 현장을 둘러보던 노무현 대통령은 헬기가 장성의 한 마을을 지날 무렵 이병완 비서실장에게 저기가 이 실장의 고향 아니냐며, 퇴임하면 봉하에 내려가서 고향 살리기를 하려고 하니 이 실장도 고향에서 한번 해보시라고 권유했다. 

이병완은 엄두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장성군 남면이 고향이긴 하지만 광주고를 다니고 고려대학교를 나왔으니 30년 전에 떠나온 고향이었다. 퇴임 후 가끔 봉하를 찾았을 때 노공이산이 논두렁을 걷는 모습을 볼 때마다 이병완은 마음이 찔렸다. 

일국 대통령의 비서실장으로 사실상 대통령 다음 가는 권한을 쥐었던 이병완은 노공이산 서거 뒤 지방 총선에서 국회의원도 아니고 시의원도 아니고 일개 구의원에 출마했다. 이병완은 지금 광주 서구 구의회의원이다. 

농촌은 아니고 도시지만 이병완이 선출직 공직자 중에서는 가장 말단인 기초의원이 되기로 마음먹은 것은 노무현과 헬기에서 나누었던 대화의 생생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봉하에 내려간 지 1년 만에 농약으로 도배되었던 죽음의 땅을 철새가 떼지어 날아드는 생명의 땅으로 바꾸어놓은 노공이산처럼, 자신도 귀농까지는 못하더라도 고향 가까이에서 지방자치의 일꾼으로 가장 낮은 곳에서 헌신하면서 고향으로 통하는 민주주의의 실핏줄을 살려내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기억은 힘이 세다. 기억은 죽음을 삶으로 바꾸어놓는다. 

그러나 기억은 삶을 죽음으로 바꾸어놓기도 한다. 노무현에게도 이병완처럼 꼭 지키고 싶었던 약속의 기억이 있었을까. 이제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노무현은 진보 세력이 명예롭게 기억될 수 있도록 죽음을 선택했으리라는 것이다. 수구 언론은 말할 나위도 없으려니와 한겨레, 경향까지도 터무니없는 의혹을 기정사실화하면서 고인을 괴롭혔다. 경향신문의 유인화는 부인에게 혐의를 뒤집어씌우는 비겁한 남편이라며 비아냥거렸고 한겨레신문의 김종구는 생즉사 사즉생이라며 협박했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노무현이 진보를 말아먹었다면서 고인을 욕보였다. 좌우의 악다구니 속에서 노무현은 살아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었으리라. 노무현의 죽음은 자기 일신의 결백을 밝히려는 항변이라기보다는 진보 전체가 명예롭게 기억되기를 바라는 고결한 정신의 마지막 헌신이었다. 노무현은 자신이 명예롭게 기억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진보 세력이 명예롭게 기억되기를 바라서 목숨을 버렸다. 

노무현은 대통령으로 있으면서 한나라당에게 연정을 제의했다는 이유로 진보 언론으로부터 몰매를 맞았고 다수의 지지자들한테서도 뭇매를 맞았지만 노무현이 애당초 연정을 제의한 대상은 민주노동당이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거부했다. 아마 한미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는 정부와 손을 잡으면서 진보의 순결을 더럽힐 수 없다는 생각이 작용했으리라. 진보의 순결을 지키려는 정신까지도 현실 정치 논리를 내세우면서 매도할 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렇다면 진보 세력도 진보의 명예를 지키는 일관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선정 투표 과정이 투명하게 치러지지 않았다는 의혹이 잇따르자 통합진보당의 주축을 이룬 민주노동당 계열의 이른바 당권파에 속한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부실하기는 했으되 부정은 아니었다면서 한사코 사퇴를 거부했다. 선거에서 부실과 부정은 큰 차이가 없다. 부실한 선거도 부정한 선거도 유권자의 뜻을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진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사퇴해야 마땅했다. 

노무현이라면 아마 진작에 사퇴했을 것이다. 회의 도중 당권파들로부터 얻어맞기까지 한 유시민이라도 당연히 그렇게 했을 것이다. 당권파들은 유시민이 마치 당권파를 몰아내고 당권을 쥐려고 일부러 흠집을 내는 것으로 몰아갔지만 유시민은 비례대표 후보에서도 당선권과는 거리가 먼 12번을 자원한 사람이다. 노무현은 승리하려고 정치에 뛰어든 것이 아니라 정치의 틀 자체를 바꾸려고 시궁창 같은 정치판에 발을 담근 사람이다. 유시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노무현과다. 

노무현은 입으로는 진보를 모색했지만 사실 그가 몸으로 추구한 것은 정의였다. 극단적 보수와 극단적 진보는 어떻게 보면 큰 차이가 없다. 보수파와 진보파 모두 역사는 자기네 편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네오콘은 사회주의는 반드시 망하고 자본주의의 승리는 필연이라고 주장했고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반드시 망하고 사회주의가 도래한다고 확신했다. 

자기확신에 찬 사람은 눈치를 보지 않는다. 역사는 언젠가 민중이 승리할 수밖에 없으므로 고난과 시련이 닥치더라도 꾹 참고 이겨내기만 하면 된다. 역사에 대한 확신은 현실의 변화를 섬세하게 가려내는 촉수도 퇴화시킨다. 무딘 현실 인식으로 신뢰를 잃어도 그들은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는 반드시 이기기 때문이다. 교조적 원리 아래 자기들끼리 똘똘 뭉쳐 시련을 이겨내기만 하면 된다. 

정의파는 다르다. 정의파는 역사가 발전한다는 믿음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최종적이고 항구적인 승리를 장담하지는 못한다. 정의파는 실존파다. 나의 처신 하나로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실존 감각이 있기에 눈길 하나도 조심스럽게 걸으려고 한다. 

노무현이 한국에서 진보파에게 밉보인 것은 노무현이 정의파였기 때문이었다. 노무현은 나의 잘못된 판단 하나로 공동체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기에 눈을 부릅뜨고 현실 변화를 살피고 달라진 현실에 맞추어 궤도를 수정하려고 했다. 그가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한 것도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자본주의 체제라는 망망대해에서 자원도 적고 시장도 작은 일엽편주 한국호의 무사 항해를 갈망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진보 세력이 진보라는 이름에 집착하는 한 한국 진보의 미래는 어둡다. 역사에서 이긴다고 확신하는 이들은 절대로 역사에서 이기지 못한다. 역사에서 이기고 싶다는 희망을 품은 이들만이 역사에서 이길 수 있다. 확신과 희망은 다르다. 진보파에게 희망은 필요없다. 이기도록 예정되어 있는 이들에게 희망 따위는 거추장스럽다. 정의를 갈구하는 이들에게는 희망이 필요하다. 간절한 희망은 현실을 간절히 살피게 만들고 필요하다면 자신을 낮추고 버리면서라도 희망을 공유하는 사람을 모으려고 한다. 

희망은 미래를 겨누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는 힘은 좋았던 과거의 기억에서 나온다. 좋았던 과거의 기억을 갖지 못한 사람은 암울한 현실 앞에서 변절하기 쉽지만 좋았던 과거의 기억을 가진 사람은 쉽게 변절하지 않는다. 

노무현은 정의를 갈구하던 이들에게 아름다운 현실을 생생한 기억으로 남겨주었다. 노무현에게는 그런 기억을 준 사람이 별로 없었지만 노무현은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내리찍는 정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정의를 추구했다. 노무현은 두려움의 악순환을 끊었다. 노무현은 온 몸으로 우리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었다. 

노무현이 우리에게 기억을 남긴 것은 우리가 그 시절을 추억이나 향수로만 간직하기를 바라서는 아닐 것이다. 향수는 되돌아가지 못하는 낙원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노무현이 남긴 기억은 향수가 아니다. 노무현의 기억은 재현되어야 할 현실이다. 부인과 함께 텃밭을 가꾸고 감나무를 어루만지고 산을 타면서 자유인으로 여생을 살고 싶었던 문재인이 다시 정치라는 가시밭길로 나선 것도 그런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만 정치를 맡겨두어도 웬만큼 굴러가는 그런 나라를 후손에게 물려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고마울 뿐이다. 그저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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