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대통령 공식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

Home LOGIN JOIN
  • 사람세상소식
    • 새소식
    • 뉴스브리핑
    • 사람세상칼럼
    • 추천글
    • 인터뷰
    • 북리뷰
    • 특별기획
  • 노무현광장

home > 노무현광장 > 보기

人生無常

댓글 4 추천 2 리트윗 0 조회 72 2012.10.04 16:31

   

낙옆이 지고 바람이 제법 쌀쌀해서 재킷이라도 챙겨 입어야 하는 가을의 문턱에 들라치면, 으레 남정네들의 가슴은 휑하니 뚫리고 가을을 타기 마련이다. 왠지 세월은 가는데 뒤돌아보면 이룬 것은 별로 없어 보이니, 갑자기 허무해지고 세상사가 덧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누군들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 인생이 무상하구나!’하는 시덥잖은 탄식이 나오기 마련이다. ‘人生無常’이라는 말은 인생이 덧없고 허무하다는 뜻으로 흔히들 쓰는 말이지만, 원래 허무하다는 뜻하고는 상관이 없는 불교의 ‘諸行無常’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론된다.

 

   그런데 ‘諸行無常’이란 말은 ‘이 세상 만물은 끊임없이 변하므로 어떤 것도 고정된 것은 없다’는 뜻으로서 ‘諸法無我’와 연계되는 말이다. ‘諸法無我’란 또한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하는 것, 즉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말로서, 조금 어렵긴 하지만 모든 만물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因緣에 의해서 생겨난다는 緣起 또는 空思想에 바탕을 둔 말로 생각된다.

 

   이렇게 諸行이 無常하니 이 세상의 만물이 내일이면 또 다르게 변할 것이고, 우리의 존재 또한 변하여 언젠가는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이다. 서글픈 일이지만 사랑하는 내 아내가, 내 가족이, 내 친구들이 언제까지나 내 곁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며, 나 또한 그들의 곁에 항상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에픽테투스를 비롯한 스토아 철학자들도 이러한 제행무상의 이치를 일찍이 터득했었던지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는 달리 더 깊고 충만한 인간관계를 이룰 수 있었다고 한다. 두 남자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한 남자는 당연히 아내가 늘 자기 곁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 아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나 해줄 말을 내일로 미루는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 그러다가 만일 아내가 죽게 되면 그 남편은 그 많던 기회를 그냥 헛되이 버린 것에 대해서 후회하게 된다. ‘만일 내가 그때……했더라면……’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반면에 스토아 철학적 성향의 남자는 아내가 영원히 자기 곁에 있으리라고 가정하지 않는다. 어느 한순간 운명에 의해서 아내가 자기 곁을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그 남편은 오늘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따라서 아내가 곁을 떠난다고 해도 자신이 아내와 함께, 아내를 위해서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슬퍼할지언정 그렇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스토아 철학자들은 이런 깨달음 때문에 그들이 주변의 것들에 정서적인 거리감을 두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들은 ‘그 순간을’ 살고 있다는 의미에서 늘 현존의 삶을 산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諸行無常 諸法無我가 아니라 ‘제행항상 제법유아 (諸行恒常 諸法有我)’가 된다면, 즉 ‘만물이 변하지 않고 항상 그대로를 유지하며 또한 이 세상 모든 것이 홀로 독립해서 존재한다’면 이 세상과 우리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아마도 축복이 아닌 대재앙이 되기 십상일 것이다.

 

   우선 이 우주가 생성된 최초의 변화 ‘빅뱅’도 없었을 것이므로 영원히 어둡고 끝없는 침묵의 우주만이 존재해왔을 것이며, 더 갑갑한 것은 그 침묵이 깨질 일말의 희망조차 전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천번 만번 양보해서 2009년 6월의 시점에서 諸行恒常이 적용되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노무현 대통령의 뜻밖의 서거에  충격을 받아 슬픔의 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며, 앞으로 영원히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諸行이 恒常하지 않고 諸行無常이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諸行無常의 이치에 따라 여름의 그렇게 무성하던 나무들이 붉고 노랗게 단풍지는 계절로 변하는 것과 같이, 만물이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지금 이 세상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모습과 사람사는 세상의 정다운 회원들과의 인연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마음껏 즐길 일이다.

 

 

목록

twitter facebook 소셜 계정을 연동하시면 활성화된 SNS에 글이 동시 등록됩니다.

0/140 등록
소셜댓글
정관 suli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