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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0 11:10
박정희정권앞에서, 전두환정권앞에서,
김영삼과 김대중은 국민에게 누구였나?
당시에,
김영삼과 김대중의 차이를 국민은 무었이라 인식했을까?
영남과 호남?
어찌됐든, 둘은 갈라섰다.
전두환정권의 기만에 둘은 나뉘었고,
역사는 그로부터 꼬이기 시작했다.
삼당합당이란 야합도 이로부터 기인했다.
왜 이리 됐을까?
그 서슬퍼런 독재앞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동지들이 국민의 요구를 배신하고 역사를 이리 만들었을까?
독재정권의 기만책, 그것도 전두환역도의 기만에 넘어갔을까?
양자간의 정책이 달라서?
소위 진보와 보수적 약간의 색채의 차이때문에?
따르는 세력때문에?
아니다. 답은 권력의지이다.
눈을 흐리게 하고, 국민의 소망을 거스르게 하는 것의 근본은 권력의지이다.
헤어짐도, 김영삼의 삼당합당도 권력의지때문이다.
이 권력의지에 국민은 열광하고,슬퍼하고,증오하고 찢어지고,환호하는 꼭두각시가 되버렸다.
안철수가 출마를 선언했다.
안철수와 민주당의 문재인의 정책적차이는 있다.
세상을 바꾸는 수단을 보는 시각의 차이도 있다.
아주 쉽게 재벌에 대한 접근에 생각과 방법의 차이가 일견해도 보여진다.
노태우 앞에 김대중과 김영삼이 있었듯이,
박근혜앞에 안철수와 문재인이있다.
정치지형과 정책, 양자에서 그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다.
허면 어찌될건가?
당시에도 운동세력과 시민세력은 나뉘었다.
김영삼을 지지하는 단일화구룹과
김대중을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세력.
벌써 판이 달구어지고 있다.
그 당시와 매우 유사하게 정치세력의 지형과
시민세력의 움직임이 보여진다.
정권교체라는 것이 옳은 명제인지는 모르나,
또 정치변화가 답인지는 모르나,
현 정권을 반대하는, 혹,현 정치를 부정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이루는 힘은 없어보인다.
국민도, 시민세력도 이미 종속변수가 되버렸다.
전두환이 김대중에게 정치참여를 허가하였을때
전두환은 김대중의 정치권력의지를 믿었던것이다.
지금이라고 다를게 있겠는가?
국민이 나뉘고, 시민세력이 나뉘는 근원에는
정치인의 권력의지가 있다.
안철수를 보며,
선언을 보며,
난 그 불안한 권력의지를 보았다.
안철수에게 양보하라라는 것은 쉬워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문재인이 양보하는게 쉬워보인다.
헌데 그 권력의지를 충돌질하고,
정치인을 물리적, 정치적, 정신적으로 옥죄이는 세력이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문재인은 양보할 수도 있는 인물로 본다.
허나 민주당은 양보하지 못한다.
통합진보당의 예를 보면 아주 쉽다.
명분은 뭐라 떠들어대도,
핵심은 정치인의 권력의지가 모든 것을 그 모양으로 만든거다.
열광적 지지자들을 거느린 권력의지가 주범이다.
서로 상충되는 권력의지.
이를 어찌 해결할겐가?
제3지대론?,
공동정부로 권력을 나누는 방식?
모두 쉽지않다.
문제는 안철수와 민주당의 권력의지와
현실적 권력분배에 대한 신뢰의 문제일게다.
단일화와 비지의 목소리가 더욱 더,
큰소리로 외쳐질게다.
그 때,그 당시처럼,
나뉨이 시간이 온 것은 아닌지 불안하다.
어찌보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를 정책의 차이를 국민은 보지않는다.
소위 열혈 민주인사로 자임하는 이 방의 모두도 애써 보지않으려 할게다.
보이는 건 박근혜뿐일게다.
이제 불안의 나뉨의 시간에
우리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국민에게는 아무것도 줄 수 없는
정치인들의 권력의지를 대변하는 어리석음이 보여지면 좋겠다.
우리의 그 어리석음을 내려놓을 때,
정치인은 비로소 그들의 의지를 내려놓을 수 있을게다.
그 때만이 국민이 상수가 되고 정치인은 변수가 되는거다.
이리저리 떠들어봐도 속은 답답하다.
여전히,
우리는, 그들의 권력의지 앞에 종속변수일 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