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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가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을 참배하지 않은 이유

댓글 9 추천 11 리트윗 0 조회 269 2012.09.19 13:33

신자유주의의 핵심인 월가에는 유명한 일화가 많은데, 그중에서 이번 18대 대선의 역사적 의미에 가장 가까운 것이 있습니다.

 

 

 

“대공황을 경험한 우리 세대가 사라지면 그 기억마저 사라진다.”

 

 

 

이는 지금의 40대 초반까지 유신 헌법과 인혁당 사건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현재의 월가에도 월가의 역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염려한 선배들이 했던 말입니다.

 

 

 

문재인 후보처럼 유신 시대를 살아온 국민들 중에 그 실상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유신 시대의 엄혹함이 제도권 정치에서 고개를 들 때마다 극도의 두려움과 분노를 느낍니다.

 

 

 

5.16군사쿠데타로 시작된 18년간의 박정희의 독재시대는 그 뿌리가 일본 군국주의라는 극우적 파시즘에 기반했기 때문에 유럽에서 나치의 유령이 고개를 들 때마다 극도의 경기를 일으키는 것과 같습니다.

 

 

 

유럽이 독일의 반성과 사죄, 막대한 피해보상으로 파시즘의 악령을 상당 부분 치유했다면, 일본의 아시아 식민지국가들은 소련에 대항하는 미국의 정책과 일본의 우파들의 뻔뻔함 때문에 전범은 고사하고 식민지 통치에 협력한 부역자들도 단죄하지 못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이승만이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고, 4.19혁명을 통해 이를 바로잡으려 했으나 일본 천황에게 충성의 혈서를 썼고 해방 전후로는 남로당 활동도 했던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이마저 좌절됐습니다.

 

 

 

지금의 30대까지는 잘 모를 수도 있는 국민교육헌장은 일본 군국주의의 교육칙어를 그대로 도입한 것이고, 유신 헌법은 일본 군국주의의 헌법을 도입한 것입니다.

요정 정치는 일본 사무라이의 전형이었고, 유신 헌법의 부국강병이란 일본 군국주의의 이념이었습니다.

 

 

 

장면 시대에 그 원형이 만들어진 경제개발5개년 계획은 남로당 출신 경력 때문에 미국의 의심을 받았던 박정희가 자신의 정치적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과의 면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급조된 것이기도 합니다.

 

 

 

특히 유신 헌법은, 김대중과 장준하 등의 저항과 투쟁에 의해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자 영구집권을 위해서 만든 최악의 헌법이자 민주주의 파괴의 전형입니다.

입법권과 사법권을 박정희 1인의 수중에 장악한 상태에서 선포한 긴급조치 1~9호에 이르는 독재의 망령은 국민들의 말과 행동, 의식까지 지배하려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민청학련과 민혁당 사건입니다.

고문과 조작으로 만들어진 가짜 증거와 증언들로 그들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거나 평생을 빨갱이로 살아야 했습니다.

그들의 가족들은 취직도 못했고 이민을 떠난 사람도 있습니다.

 

 

 

헌데, 산업화 이외에는 5.16군사쿠데타와 유신 헌법의 정치적 정당성을 만회할 수 없었던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의 오른팔인 김재규 중앙정보부 부장의 총에 맞아 사망한 다음에 그의 공과에 대해 따져보기도 전에 전두환 군정이 들어서는 바람에 유신의 잔당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습니다.

성공한 변호사였던 노무현 대통령이 노동사건을 맡으면서 민주화투쟁으로 감옥까지 다녀왔고 사법연수원을 2등으로 나온 문재인 변호사와 동업한 것이지요.

 

 

 

지금은 많은 욕을 먹지만 386세대와 그 앞 세대들은 이 땅의 산업화가 이루어진 현장의 실질적인 주역이었지만, 유신 독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과 제대로 이루지 못한 민주화에 대해 죄책감과 부채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는 386세대와 그 앞의 세대들은 유신의 잔재가 제도권 정치의 전면에 부상하면 그때의 참혹한 기억들이 떠올라 두려움과 분노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명박 정권이 유신 시절의 구태를 답습하자 회사에서 현장에서 집에서 자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 촛불을 드는데 참여한 것이고 아직도 유신이라면 치를 떱니다.

 

 

 

유신의 잔재에 대한 반응이 그러할 진데, 유신의 적자인 박정희 대통령의 딸인 박근혜가 이명박 정권을 창출한 여당의 대통령 후보에 오르고, 역사인식에서도 결코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들의 가슴 속으로 참을 수 없는 두려움과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온몸 곳곳에 각인돼 있어서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흐른다 해도 그 시절의 엄혹한 기억이란 영원히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화염처럼 타오르게 된 것입니다.

 

 

 

살아온 시간이 이들과 상당 부분 겹치는 문재인 후보가, 이 정부 들어 박정희 시절의 검찰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 정치검찰에 의해 평생의 친구이자 동지였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먼저 보낼 수밖에 없게 된 상황에서, 박근혜 후보의 역사인식에 의심을 품고 박정희 대통령의 무덤을 참배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과거의 역사인식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박정희 대통령의 공적을 고스란히 승계한 박근혜 후보가 유독 유신 헌법과 그 시절에 저질러졌던 각종 탄압과 사법 살인에 대해서는 한 발도 물러서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선진국이 된 나라들의 역사적 발전단계를 보면 보통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산업화가 일어나고 참여민주주의로 가기 과정에서 복지국가의 체계를 갖추는데, 우리나라 국민들은 유신 잔당들의 주장 때문에 산업화 다음에 민주화가 일어나고 그 다음에 복지국가가 도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역사 발전의 단계를 박근혜 후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민주화가 이루어진 현재에 산업화를 이룬 아버지의 업적에 자신이 복지국가의 초속을 쌓으면 민주화 논쟁으로부터 아버지와 자신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보니 아버지의 공은 이미 승계한 상태에서 그 과오에 대해서는 애매모호한 방식으로 피해가기에만 급급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재인 후보는 물론 386세대와 그 앞의 세대들 중 민주화 투쟁에 나선 사람들은 그녀의 진심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당한 세월만 장장 18년입니다.

박정희의 양아들로 인정받았던 전두환의 군사독재까지 더한다면 무려 23년에 이릅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2년 안에 권력을 민정에 이양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것이 무려 23년에 이른 것이니, 그의 딸이자 유신 시대의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 후보에게 의심을 품는 것은 당연합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고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는 말도 있듯이, 박근혜 후보가 역사 인식이 불분명한 채로 대통령에 오른다면 어떤 일을 할지 의심하고 물어보고 사전에 체크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특히 문재인 후보처럼 그 시대의 최전선에서 고군분투했던 분이라면 그 정도 의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에게 주어진 이 시대의 정의이고 정신이기 때문이며, 18대선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후보가 유신 시절에 대한 역사인식에 진정한 변화가 없다면 하늘이 무너져도 막아야 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자 역할입니다.

현재는 과거에, 미래는 현재에 기반하기에 과거를 바로 정의하는 것이 우선이며, 국민 통합과 미래를 얘기하는 것은 그 다음에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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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바보 jiree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