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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8 08:59
박근혜에 묻는다, 위안부 문제도 역사에 맡길 건가 | ||||||||||||||||||
[김주언 칼럼] 인혁당 유가족이 왜 오열하는지 모르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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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공주’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후보의 유신독재 및 인혁당 사법살인 관련 발언이 또 다시 물의를 일으켰다. 5.16쿠데타는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자 “구국의 혁명”이라는 박 후보의 선언에 이어 “인혁당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두 개”라는 발언이 알려지면서 분노가 치솟고 있다. ‘사법살인’으로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유족의 “두 번 죽이는 행위”라는 오열이 하늘을 찌른다. 정치권은 물론, 대다수의 언론과 사회관계망 서비스(SNS)에서도 박 후보의 퇴행적 역사관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은 한결같이 박 후보의 뒤틀린 과거사 인식을 비판한다. 그러나 ‘왜곡된 과거사 인식’이라는 비판은 자칫하면 ‘과거에 묻혀 살고 미래를 보지 못하는 부류’라는 박 후보의 프레임에 갇힐 우려도 있다. 박 후보의 말은 틀렸다. 과거사는 과거에 머물지 않고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가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후보의 말대로 유신독재와 인혁당 사법살인은 ‘역사의 평가’에 맡길 과거사만은 아니다. 불과 40~50년 전 암울했던 시기의 민주헌정질서 파괴와 인권침해를 과거의 일로 치부해서는 안된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이 버젓이 살아 있고, 당시 숨죽이며 살았던 사람들이 유신독재의 악몽에 시달리며 힘겹게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아픔을 달래고 눈물을 닦아줘도 모자랄 판에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니. 박 후보의 이러한 역사인식은 일제 식민시대의 위안부 강제동원이나 징용 등 과거사에 대해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한국정부의 태도와 배치된다.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대로라면, 이러한 사안들도 유신독재나 인혁당사건 보다도 훨씬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그저 역사의 판단에 맡기면 될 뿐이다. 한국정부가 나서서 일본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 될 것이다. 만에 하나 박 후보가 정권을 잡은 뒤 위안부 문제 등을 역사의 판단에 맡기자고 강변할까 보아 두렵기조차 하다. 우리가 일본 정부에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것은 그 사건이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E. H. 카는 저서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말했다. 1961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강연을 통해 소개된 것을 한데 묶어 1964년 출간한 책이다. 카는 이 책에서 두 가지 의미의 역사, 즉 ‘사건으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모두 끊임없는 변화를 전제로 하며, 역사가에 의해 현재적 해석을 거치고 재구성되었을 때 진정한 역사로서의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카는 특히 역사는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며,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를 통해 더 나은 미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가 자행했던 인종말살에 대한 독일정부의 진정한 사과와 ‘네오 나치’의 부활을 법으로 엄격하게 규제하는 조치는 나치의 학살을 단순한 과거사로 치부하지 않는 데 있다. 이러한 과오가 현재에도 존속될 수 있고 미래에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철저하게 예방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다.
‘현재를 거울삼아 과거를 통찰하고,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바라보는’ 것이 역사라는 카의 정의를 박근혜 후보의 발언에 대입해보자. 5.16군사쿠데타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은,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언제든지 ‘불가피하다면 최선의 선택으로’ 군사반란이 일어날 수 있고, 이를 용인할 수 있다는 인식에 다름 아니다. 더 나아가 “공산당의 밥이 되지 않으려면” 군사반란이 불가피하며 최선의 선택이라는 의미와도 일맥상통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군사반란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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