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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7 07:11
이상경(미디어콘텐츠 팀)
드디어 오늘이다. 지난 8월 25에 시작된 민주당 경선이 오늘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예비경선을 포함, 전국을 두 바퀴나 돌며 강행군을 해 온 후보들이나 지지자들, 그리고 각 캠프의 일꾼들, 다들 참말로 수고 많으셨다. 고개 숙여 진심에서 우러난 경의를 보낸다.
무릇 어떤 경쟁이든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 있을 땐 경쟁 그 자체에 몰입한 나머지 더러 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하고 심판을 향해 삿대질을 날리기도 하는 거지만, 이렇게 그 결말을 앞에 두게 되면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과정에 대한 감회와 결과 발표 뒤의 엄연한 승패 때문에 어조는 달라지게 되고, 후보를 도와 핏대를 올리던 지지자들의 마음에도 문득 한줄기 가을바람 같은, 이 때까지와는 확연히 다르고 한결 유순해진 느낌의 소회가 자리 잡게 되는 법이다.
다들 나름의 열정과 의지로 치러낸 그 과정의 핍진함에 저마다의 진실이 숨 쉬고 있는 것이리라. 승패의 결과야 ‘민심’과 ‘모바일심’, ‘당심’ 등등 우리가 끝내 받들어야 할 저 국민의 뜻에 따른 것이므로 겸허히 승복하는 모습만이 그 진실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는 최소한의 도리일 터. 세상의 상식이 이러할진대 거기다 대고 뭐라 말을 보태는 것은 이번 경선의 의미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자들의 한낱 투정에 불과할 것이다.
다른 지역 경선과는 달리 한 시간 먼저 시작된 서울 경선은 마지막 승부처답게, 그리고 그 선거인단의 큰 규모답게 고양 실내체육관 일대를 온통 뒤덮은 인파만으로도 예사롭지가 않다. 체육관 앞마당은 간단한 주전부리를 파는 좌판이 들어섰고 각 캠프에서 설치한 부스 마다 피켓, 깃발, 플랭카드에 많은 인파가 뒤섞여 커다란 난장이 섰다.
개회가 선언되고 내빈 소개를 하는데 박원순 서울 시장의 순서에서 청중의 함성소리는, 그러자고 미리 약속한 것도 아닐 텐데 그 데시벨을 확연히 높인다. 이건 잘 하고 있는 우리 편에 대한 이신전심의 응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확연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않더라도 묵묵히 맡은 바 임무를 잘 해내고 있는 우리 선수들을 분간해 내는 관중의 눈썰미는 전문가 수준을 넘어선 지 이미 오래라, 매서운 그 눈길을 진정으로 두려워 할 줄 알아야 뭔가 앞을 내다보는 눈이 조금이라도 밝아질 것이다.
손학규, 김두관, 정세균 세 후보는 어제까지와는 다른 연설 내용을 들고 나왔다. 문재인 후보와 당 지도부에 대한 공세 대신 자신의 한없는 민주당 사랑을, 민주당에 대한 자신의 헌신과 기여를,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할 민주당의 미래에 대한 발언이 길게 이어졌다.
“…(전략)… 우리 민주당의 4.11 총선 승리의 기운이 고조되었습니다. (땡!하고 시간이 2분 남았다는 타종소리가 들림) 그러나 여기까지였습니다. 오늘 저의 이야기도 여기까지입니다. 사랑하는 당원 동지 여러분, 민주당을 구해주십시오! 민주당을 사랑합니다~!”
이런 손학규 후보의 마무리는 그 간의 과정이 어떠했든지 간에 듣는 이의 심금을 울리는 바가 없지 않았다.
김두관 후보의 발언도 비슷한 분위기였다. 힘이 부쳤던 것을 고백한다며,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께 단 한 번도 승리의 기쁨을 선사해 드리지 못한 미안함을 토로했다. 그 심정에 공감할 수 없다면 경선을 완주하며 끝까지 최선을 다한 장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리라.
정견 발표가 끝나고 투개표가 진행되는 동안 행사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투표를 하기 위해 길게 늘어선 사람들, 체육관 바깥에 마련된 포장마차에서 막걸리 잔을 기울이거나 간단한 요기를 하는 사람들, 삼삼오오 몰려서서 담배를 나눠 피며 얘기를 나누는 사람들…지지하는 후보를 따라 여기까지 온 감회가 제각각일 것인데, 한 사람을 붙들고 잠시 얘기를 나누었다. 손학규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50대 중반의 남자 분.
“문재인 씨가 되는 건 좋다 이거지. 그런데 당원들 대접을 이렇게 하는 경우는 첨 본다니까. 모바일, 모바일 하는데 그게 젊은 애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아니 걔들이 뭘 알기나 해요? 정치가 뭔지도 모르는 애들한테 후보 결정을 맡기는 게 말이나 돼요?”
얘기는 어영부영 끝나고 말았다. 그 분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인식의 차이를 몇 마디의 짧은 대화로 해소할 엄두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누가 옳고 그른지는 차치하고라도 동일한 사안을 두고 이렇게 건널 수 없는 시각 차이를 보이는 것이 다반사인 게 현실인데 과연 소통은 말처럼 쉬운 것일까. 소통의 정치를 얘기하는 우리 후보의 어깨가 더욱 무거워 보였다.
주로 사모님을 동행 취재해 온 김휘 씨가 급하게 원고를 만들어 왔다.
“선배님, 사모님 얘기도 함께 실어야죠?”
“당연히 그래야죠. 재미있는 거 많아요? 내가 쓸 얘기는 좀 무거운데.”
# 녹색 원피스를 입고 경선장을 찾은 김정숙 여사
녹색원피스에 단아한 헤어스타일. 오늘따라 유난히 김정숙 씨의 옷차림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마지막 경선자리이니만큼 오늘을 위해서 옷차림에 신경을 썼어요. 제가 직접 고른 옷이에요. 결선에 올랐으면 하는 소망과 염원을 담았습니다. 게다가 녹색은 우리 당을 대표하는 색이잖아요. 남편의 넥타이 색과 맞췄어요.” 김정숙 여사는 언제 어디서나 늘 자신을 내세우기 보다는 남편 문 후보를 먼저 생각했다. 그 마음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아침, 집을 나오기 전 두 사람은 대화할 시간조차 없었다고 한다.
일정과, 연설문을 챙기는 남편을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아침식사를 준비했지만, 국을 수차례 데우고 또 데웠지만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 대통령 후보 결과 발표 20분 전
4명의 후보연설이 끝나고, 이제 남은 건 투표뿐.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이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 순간, 가장 마음이 초조한 또 한 사람. 바로 문 후보의 아내 김정숙 씨다. 사람들의 웅성거림 속에서도 김정숙 씨의 밝은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잠시 쉬라는 주변사람들의 권유에도 “오늘 같은 날은 쉬지 않아도 된다.”며 많은 사람들의 인사에 답하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이 김정숙 씨를 응원 온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부산에서 온 박다효 씨(51세)다. 박다효 씨는 문 후보 부부와 30년을 넘게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후보가 부산에서 변호사 일을 할 때 함께 일했던 직원이었다. 30년 전 처음 문 후보 부부를 봤을 때 인상이 어땠을까. 그녀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두 사람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문 후보님을 처음 봤을 때 잘 생겼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하시더라구요. 상하 관계는 찾을 수 없었죠. 김 여사님은 그때도 오늘처럼 천진난만하셨어요. 문 후보님을 쳐다보실 때 반짝거리는 눈빛은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그렇다면 30년을 넘게 알아온 문재인 후보. 박다효 씨에게 문 후보는 어떤 사람일까?
“문 후보님은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을 분이세요. 믿을 수 있는 분이죠. 딱딱하고 응어리진 가슴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고 희망을 심어줄 분입니다.”
그녀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강렬하고 단호했다. 함께 일했던 동료이기 이전에 그녀 역시 국민의 한 사람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문 후보에 대한 믿음이자, 신뢰였다.
개표 결과 발표. 문재인 총 347,180표, 누적 득표율 56.52%. 경기장 안은 일순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그리고 이어진 후보 수락연설. 동영상과 연설문 전문이 있으니 참고 하시길. 다만 “…저 문재인, 대통령 후보직을 수락합니다.”라는 대목을 듣는 순간, 그간 미뤄왔던 감격에 목이 꽉 막히는 느낌이었다.
행사장 로비는 각 캠프 지지자들이 뒤섞여 행사장을 빠져나오는 후보들을 맞이하느라 소란스럽다. 손학규 후보가 먼저 모습을 드러내자 지지자들의 연호가 이어진다. 손 후보는 일일이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더러 포옹도 하며 아쉬움을 달래는 모습이다. 힘들게 경선을 완주하신 손 후보께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김두관 후보도 비슷한 상황. 민주당은 하나라며 “대선 승리, 정권교체를 위해 이 한 몸 다 바칠 것을 이 김두관, 당원 동지 여러분 앞에 약속드립니다!”라고 사자후를 토한 김 후보께도 깊은 경의의 박수를 드린다.
정세균 후보의 마무리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정세균 후보 선대위는 행사장과 조금 떨어진 곳의 계단에서 질서정연한 마무리 집회를 가졌다. 정 후보는 그들 속에 섞여 앉았고 사회자는 캠프를 운영하며 혼신의 힘을 다한 실무자들을 앞으로 불러내 인사를 시키고, 함께한 의원들을 일일이 소개했다. 그들을 바라보는 정 후보의 표정은 온화한 미소가 가득했다. 유세단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행사의 배경처럼 줄맞춰 늘어서서 구호가 적힌 수건을 번쩍 치켜든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 중 한 젊은이의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손을 든 채, 눈물을 닦을 생각도 잊은 듯 서 있는 그 앳된 얼굴이 가슴에 남았다.
경선은 끝났다. 내일이면 대선 D-92일이다. 간다. 흔들림 없이, 어깨 겯고 하나 되어 간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 대통령이 하늘에서 보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