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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4 05:13
>>당내 '인혁당 사과 기류에도 박근혜 눈치보며 알아서 침묵
ㆍ참모진, 언급 자제… 친박도 비박도 ‘절레절레’
“지금 ‘묘지 안의 침묵’ 분위기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이 현재 당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과거사 문제 등 여러 현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지만 박근혜 대선 후보 주장에 깔려 무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 결과 당 인사들은 물론 친박근혜(친박) 참모들도 의견 개진을 통한 소통보다는 후보 뜻만 따라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렇다 보니 “대선에서 열심히 뛰어야 하는 이유가 없다”는 냉소도 있다.
>>박근혜 '유족엔 죄송, 사건은 친북활동' 이중시각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는 13일 인혁당 유족들과의 만남에 대해 “그 유가족분들이 동의하시면 뵙겠다”고 말했다. 강원 홍천에서 열린 당원협의회 사무국장 연수에 참석하기에 앞서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조건을 걸었지만 인혁당 유족 면담 의사를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인혁당 사건을 두고 “두 개의 판결”이라고 발언하고, 재심 무죄 결정과는 “다른 증언”이 있다고 해온 점을 감안하면 한발 물러서서 유화의 손을 내민 것이다. 박 후보 측은 “사실상 사과한 것”이고, 논란은 일단락됐다는 입장이다. 유족들은 박 후보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 같은 갈등의 밑바닥에는 박 후보의 이중적 태도가 존재한다. 피해자 가족·유족에겐 유감을 전하면서도 공식적 판결이나 역사 기록으로 규정되는 문제에는 여전히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경향신문5면 이하생략)
(참고사항)
박정희(朴正熙, 1917년 11월 14일(음력 9월 30일)[2] ~ 1979년 10월 26일, 경상북도 선산군 출생)는 대한민국의 군인·교사·정치가이며 제 5·6·7·8·9대 대통령이다. 대구사범학교 출신으로 3년간 교사로 근무했고, 만주군관학교 졸업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3학년 과정에 편입하여 졸업, 만주 보병제8사단에서 일본이 제2차 세계 대전에서 패망할 때까지 만주국의 장교로 근무했다. 해방 직후 장교가 부족하였던 광복군이 당시 장교 경험자들을 장교로 기용하는 정책에 의해 북경으로 건너가 광복군 제3 지대에 편입하였다.[3] 해방 이후에는 남로당에 입당했다.[4] 호(號)는 중수(中樹), 본관은 고령(高靈)이다.
5·16 군사정변을 주도하였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부의장과 의장, 그리고 1963년 12월부터 1979년 10월 26일까지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을 역임하였다. 집권기간동안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등을 수립하며 산업화를 일궈냈으며 국방력 증강 및 자주국방을 시도하였다. 3선 개헌 및 유신헌법 등의 독재 장기집권을 반대하던 야당 및 학생운동 세력과 끊임없이 충돌하였고 1979년 10월에는 김영삼 의원제명 파동 등을 사주하여 부마항쟁을 야기하였다. 1979년 10월 26일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하였다.(위키백과)
<단지언니생각>
1)"지금 '묘지 안의 침묵, 분위기다" 위 인용
2)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새누리당 150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죽은 사람 모습이군요
3)그런 사람들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슨 정치를 올바로 하겠습니까?
4)박근혜 라는 한 사람으로 인해 이 나라 제1당이라는 집권여당이 이 모양이니
5)과연 그 아버지의 그 딸임에 틀림없습니다.
6)북한의 전체주의 권력과 하등 다를게 없군요. 무서운 현실에 볼모로 억류된 국가와
7)국민들의 꼴이 말이 아닌 형국입니다.
8)아버지때 자행한 인혁당 재판 자체는 정당하다고 주장하면서 그로 인해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은 만나겠다?
9)허~ 꾼애의 이중성은 하늘을 찌르는군요!
10)위에 참고사항에서 보여 주듯이 자기 아버지 과거전력은 전혀 모르는 일인가?
11)일제치하에서 일국에 충성하다가 광복후엔 남로당 당원으로 간첩활동을 한 그 음흉한 인간성을!
12)단지언니가 가장 억울하고 분통 터지는 것은 그릇된 꾼애 한 사람 때문에 만천하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