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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13 20:28
이명박 정권에 장악된 언론에 의해 국민의 여론은 항상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현실은 사회적으로 구성되지 못해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 작금의 대한민국이다.
왜 새누리당과 제도권 대중매체들은 안철수 교수를 띄울까? 라는 글에서 언급했듯, 21세기는 대중매체에 의해 여론이 만들어지고 현실을 비틀어서 시대정신을 변질시킨다.
이렇게 시대정신이 변질되면 개인과 집단, 사회와 정부가 추구해야 할 미래의 가치와 모습이 현실과 동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위대한 언론인이었던 월터 리프먼이 1920년대에 이미 대중매체에 의해 여론 조작이 얼마나 쉽게, 얼마나 빈번하게 이루어지는 지에 대해 자세히 밝혔다.
노엄 촘스키까지 더하면 더 이상 설명할 필요도 없으리라.
몇 가지 질문의 배열순서와 몇 개의 단어만으로도 여론의 향배를 얼마든지 특정 정치 세력에게 유리하도록 만들 수 있는지, 이제는 상식의 수준에 이른 얘기라 할 수 있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정부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여론 조작이란 가히 신화적 얘기가 아닌가.
이런 여론을 만들어낸 대중매체가, 사회에 속한 다양한 계급과 그들 간에서 벌어지는 이해의 충돌을 담아낼 때 비로소 드러나기 마련인 현실의 실체마저도 얼마든지 비틀어버릴 수 있다.
미디어 시대의 본질을 파헤친 포스트만이 우리는 TV에 보이는 화면이 어떤 카메라가 어떤 각도에서 어떤 의도로 찍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을 말한다.
대중매체는 이런 비틀어진 현실을 가지고 모든 국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시대정신마저 변질시켜버릴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의 압축성장의 공(이것도 토론의 여지가 너무나 많다. 박정희는 정말 운이 좋았다. 부하의 총에 죽었으니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됐다)을 고스란히 받은 박근혜 후보가 역사 인식 면에서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도 이런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그녀는 유신 시절에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했던 존재였으니 일방적 보고와 편향된 보고만을 받았을 테니, 그 시대의 정신과 국민들이 처한 사회적 현실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부풀려진 아버지의 경제 성장 실적에 더해, 자신이 국민의 세금을 가지고 마치 자신의 돈인냥 복지의 확충이라도 더하면 아버지와 가족의 명예가 되살아날 것만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대통령 선출의 기준이 되는 작금의 사회적 현실은 무엇이며, 거기에서 발생한 진정한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시대정신을 가장 잘 담아내 최대한 실현해낼 수 있는 대통령 후보가 누구알 것인가?
먼저 갈수록 불평등의 수치가 높아지기만 하는 사회적 현실을 통해 이 시대가 추구해야 할 정신과 가치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대다수 국민들은 대중매체가 신화로 만들어놓은 이명박 후보의 ‘747공약’ 같은 실현 불가능한 거짓말에 속아 그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지난 4년9개월 동안 민주주의의 후퇴와 유신의 망령이 되살아난 것에 대해 분노해마지 않고 있다.
또한 박정희 시절에 공고화된 정경유착이 만들어놓은 소득불평등의 근원이, IMF체제 이후 신자유주의에 의해 더욱 심화되는 바람에 온갖 불평등이 만연하는 사회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며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의 확대, 의식주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 보다 공정한 경제민주화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분출하는 것이 이를 증거하고 있다.
지나치게 커진 세대 간 갈등을 최대한 줄이고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고 만족할 수 있는 국민적 통합과, 지나치게 정치화되고 비대해진 검찰 조직을 개혁하는 일과, 상시적 전쟁 위협에서 벗어나 북한과의 평화적 체제를 확고히 구축하고 장기적으로는 민주적 방식의 통일 등에 대한 사회적 열망이 또 다른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자, 이번에는 이런 시대정신을 기준으로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를 살펴보자.
이명박 정권 동안 한없이 후퇴한 민주주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리고 유신의 망령을 역사의 박물관 속에 집어넣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박근혜 대항마로서의 첫 번째 조건이 된다.
안철수 교수와 문재인 호부 중에서 누가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평생을 싸워왔고, 그래서 부활한 유신의 망령을 효율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다.
두 번째 시대정신인 각종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완화와 민주적 재편성에 대해 누가 더 잘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자.
성공 가능성의 핵심은 박정희 시절의 정경유착과 IMF체제 이후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에 있다.
먼저 안철수 교수는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사람이다.
박정희 시절의 압축성장의 덕을 상당히 본 부류 측에 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수만 가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중 컴퓨터 백신에서 탁월한 성공을 거둔 경영인이었지만 제조업에 대한 이해는 부족하다.포스코 등의 사외이사를 했다고 하지만 재벌이나 대기업에 대한 이해는 사외이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에 비해 문재인 후보는 기업 경영인 출신은 아니다.
허나 노무현 대통령 시절의 국정 경험을 통해 재벌이나 대기업들의 로비와 관행, 그 압도적인 힘의 우위에 대해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으로 하여금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시장이란 권력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뼈저린 경험과 깊은 성찰이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주류 대중매체들이 어떻게 노무현 정부를 공격하고 흔들고 무력하게 만들었는지 생생하게 경험했다.
한미FTA의 체결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고, 경제 관료와 토건 관료들의 행태도 수없이 경험했으며, 신자유주의의 최고 득세기와 그것을 뒤에서 조정한 미국의 이중성과 법적 체제의 복잡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공부와 경험을 갖추게 됐다.
경제민주화는 시대정신 중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재벌과 대기업, 신자유주의를 이끌어가는 국제기구들, 국회의원과 경제 관료들을 쥐고 흔드는 이익집단과 로비스트 등의 행태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것은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획득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리고 결자해지라 했다.
노무현 정부의 실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문재인 후보가 뼈 속까지 꿰뚫고 있지 않은가?
유신의 망령 못지않게 각종 경제 현안에 대해서도 문재인 후보만큼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세대 간 갈등과 화합의 해결에서도 문재인 후보의 경험이 안철수 교수의 경험보다 편중되지 않는다고 보는 게 옳다.
국정 경험이란 보수도 진보도, 모든 세대도, 정규직과 비정규직도, 자본과 노동자도 다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분출하는 갈등을 조정해서 화합으로 이끄는 해결능력 면에서 커다란 자산이다.
언론의 독립성 확보만큼 중요한 대한민국의 가장 큰 과제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와 그들의 기소독점권과 무소불위의 권력에 대한 견제와 분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떠올려 보라.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문재인 후보는 정치적으로 바닥을 경험해 본 사람이고 엘리트 코스만 밟아온 사람도 아니다.
필자는 문재인 후보와 비교할 수 없지만 두 가지 경험과 유사한 삶을 살았다.
유망 벤처사업가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살만 생각하면서 생존선 이하의 사람들의 삶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
그 전에는 상상만 했지 그들의 삶이 이 정도까지 비참할지는 몰랐다.
장애인으로 연세대와 대학원까지 졸업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와 학벌의 막강함을 동시에 경험했다.
하지만 주의 사람들은 필자를 보면 한결같이 장애인 같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내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안철수 교수는 약값을 10원이라도 받자 환자들이 약을 잘 먹고 좋아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환자들이 약을 반드시 복용하도록 만들지 못한 자신의 진료의 부족함은 생각하지 않았다.
또한 필자처럼 죽을 때까지 몇 가지 종류의 약을 먹어야 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약을 먹지 않고 사는 나을 꿈꾼다.그것도 안 되면 한 알이라도 약을 줄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안철수 교수는 이런 것들도 생각했어야 했다.
삶의 상당 부분은 경험이다.
깊은 성찰이란 이런 경험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것도 실패의 경험일수록 더욱 뛰어난 성찰이 나온다.
현 자본주의는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고,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현상이 어느 나라보다 지독하고 잔인하다.
안철수 교수는 경영인으로써도 멘토로써도 좀처럼 나오기 힘든 대단한 사람이다.
그의 심성과 지혜, 신중함과 결단력, 일관성과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등도 놀라울 정도다.
하지만 한 나라를 이끌어가 갈 경험 면에서, 그 간절한 권력의지와 필요성 면에서 문재인 후보에게 모자란다.
물론 5년 후라면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준비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
때를 아는 자가 세상을 얻는다 했고.
이번의 대선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분명한 두 대척점의 대결이자 최후의 결전이다.
대한민국은 박정희의 유령을 거둬내지 않으면 사회적 대타협을 이끌어내는 것도, 역사가 국민들에게 강제한 온갖 상처들을 치유하는 것도, 보편적 복지와 경제민주화, 조세 정의를 통해 상향평준화도 이룰 수 없다.
그래서 현 시대정신이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교수보다 박정희와 박근혜 부녀의 대항마로 가장 적절하다 하는 것이다.
늙은도령의 세상보기 http://blog.daum.net/do-just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