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이 1년 동안 목소리를 듣기는커녕 편지조차 주고받지 못하게 한 그 재판이 정당했다는 건가요?"
전화기 넘어 아들의 목에선 쇳소리가 났다. 송철환(52)씨는 '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아버지 송상진(당시 48세ㆍ양봉업)씨를 잃었다.
송씨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38년 전 5월에 머물러 있다. 연행되면서도 아버지는 "잠시 갔다 올게, 걱정말라"며 중학생이던 막내 아들을 안심시켰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1년 뒤인 1975년 4월 10일, 아버지는 유골이 되어 돌아왔다. "국민들한테만 '사형선고'라고 발표한 거고 재판 뒤에 집으로 보낸다더라"는 주위의 헛된 말에 선고가 있었던 전날엔 새벽부터 밤까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 아버지를 기다린 그였다.
"허, 그때는 기가 막혀서…. 아버지가 잡혀계신 1년 동안 가족들은 서신교환도, 전화도, 면회도 못했어요. 아무리 흉악범이라도 어떻게 사형 집행할 때까지 가족이 얼굴 한번 보지 못합니까. 재판정에서도 헌병들이 아버지를 양쪽에서 붙들고 있어서 뒤도 못 돌아봤어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 이후 가족들은 대화도, 웃음도 사라졌다. 아버지가
중앙정보부의 남산조사실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견디다 못해 손목을 그어 자살 시도까지 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고 통곡했다.
한 맺힌 아들의 가슴에 다시 불을 지른 건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인혁당 발언. 송씨는 "구태여 (
유신정권의 잘못을) 2세인 박 후보에게까지 뭘 요구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통령이 되겠다면서 한 가족을 짓밟아 놓은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말을 하는 건 참을 수가 없다. 우리를 한번 더 죽이는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이거 하나 묻고 싶어요. 선고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하고, 그 때까지 뭐가 무서웠는지 가족 면회 한번 안 시키면서 부모 자식간의 연을 끊어놓은 그 재판이 정당했다는 겁니까? 본인도 자식이니까 그 심정을 알 것 아닌가요. 유신정권 때 법치가 있었는지, 인권이 존재하기는 했었는지 듣고 싶어요."
아들은 물음을 안고 12일 대구에서 서울로 향한다. 송씨를 포함한 사법살인의 피해자 가족들은 이날 오전 11시 ***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김지은기자 l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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