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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9 10:35
집에는 신문지가 한 장도 없다.
태풍은 온다고하지 신문지는 없지 급한대로 다이소 가서 테이프를 사 왔다. 더럽게 큰 베란다 유리창 바로 앞에는 뻘건 된장 통이 세 개 퍼런 된장 통이 한 개 있다. 된장이 가득 담겨 있어서 옮기지도 못한다. 우리 집 냄새의 주범... 뚜껑을 덮고 발판으로 삼아 유리창에 테이프를 붙인다. 24층에서 내려다 보는 아찔한 전경 불안한 발판을 밟고 선 아찔함..........
마음이 삐뚤어져서 그런지 테이프는 삐뚤하게 붙었다. 14개의 창문에 엑스자 그리고 가로 질러 테이프를 붙였다. 아내가 강이 친구 집에서 신문지를 얻어 왔다. 베란다 큰 창 두 곳에만 신문지를 붙인다. 한 시간쯤 흘렀을까 붙여 둔 신문지가 떨어진다. 건너 편에 보이는 집도 창에 신문지를 붙이고 있는데 아내와 난 괜한 웃음이 났다. 저 집도 금방 떨어 질 텐데.......
다시 신문지를 붙인다. 테이프로 보강하며 붙였다. 샤시가 덜렁 거리길래 군데군데 종이를 접어 끼웠다. 샤시틈이 크게 벌어진 곳은 신문지를 말아 끼웠다. '아 이젠 정말 완벽하다.'싶은 때에 창에 붙어 있어야 할 신문지가 다시 너덜 거린다. 바람이 세차서인지 30분이면 뿌려둔 물이 다 마른다. 30분 간격으로 물을 뿌렸다.
다리에 알이 베겼다.
아들은 태풍이 온다니까 두려운 모양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꺼내며 조잘 거린다. 애써 아닌척 태풍 오니까 좋다면서도 인상은 찌푸려져 있다. 아들의 용감한 척이 재밌다. 재작년보다 많이 컸다는 생각 그 때 하도 놀라서 이 번엔 애초에 단단하게 방비하자는 아빠의 마음........
다행, 우리 아파트에는 한 집만 유리창이 깨졌다.
구경, 소방서에서 왔다 가고 구경 나온 김에 집 주변을 둘러 본다. 의외로 테이프 신문지를 붙여 둔 집들이 많다.
태풍이 지나 갔다. 그런데 바람은 더 세차다. 아들이 놀란다. 그래서 삼춘들의 뻔한 거짓말 출생의 비밀 이야기를 해 줬다.
'강이 아빠 엄마가 누군지 알아?' 식상한 이야기 재래 시장 가는 길 개천 밑에서 울고 있길래 주워 왔다는 내 말에 눈을 껌뻑 거린다. 믿지 않겠다는 그런 투의 말 돌림 딴청 거기에 울먹임........ 애 엄마가 기겁을 한다.
'강이는 민감해서 놀리면 안되요.'
이제 다섯살 내 이야기를 전부 믿지 않는 아들 재미 없는 아빠의 거짓말 그러는 동안 바람은 줄어 들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셨다. 아들에게 가서 물어 보라고 아빠 말이 맞을 거라고 부추겼다. 왔다 갔다 열심히 물어 본다. 환한 얼굴로 내게 달려와 신나게 말한다.
'엄마 배에서 나왔데'
아닌데 아빠 고추에서 나왔는데 그래서 엄마가 배에서 키운 건데 확실한 성교육을 시켜 주었다. 아들은 자기 고추에도 동생이 들어 있다며 조금만 더 크면 나올 거란다. 한 술 더 뜨는 녀석 때문에 웃었다.
그래 너 때문에 태풍이 온다고해서 신경을 곤두 세우고 개 고생을 했다 이 녀석아!
창문을 연다. 제법 시원한 바람이 불어 든다. 덕지덕지 붙어 있는 신문지를 떼어야 한다. 아직 개 고생이 남았다. 아무 피해 없이 지나간 태풍 이제야 안심이 된다. 아들은 유치원에 갔고 아내는 동네 아줌마와 묙욕탕에 갔다.
나는 알 베긴 다리를 주무르며 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