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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4 08:44
낯뜨거운 보수 언론의 ‘박비어천가’ | ||||
[김종철 칼럼] 해고 언론인들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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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가 지난 20일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자 조선·중앙·동아일보를 비롯한 보수신문들은 그날부터 22일까지 그를 미화하고 찬양하는 기사와 논평을 다투어 내보내기에 바빴다. 일일이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그런 글들 가운데 대표적인 보기를 들어보겠다. ·조선일보: ‘대통령의 딸, 대통령 후보 됐다···위기 불안의 시대 준비된 지도자가 필요’, ‘중·고등학교 6년 동안 1등 놓친 적 없어’, ‘본선에서 가장 큰 장애물은 나와의 싸움···불통·고집 이미지는 실체 없는 낙인찍기’, ‘22세 퍼스트 레이디···한 인간으로서의 꿈을 던져야 했다’, “고독의 세월 18년···‘정치와 무관했지만 뉴스 꼭 챙겨봐’” ·중앙일보: ‘민주 허 찌른 박근혜 경선 사흘 전···100% 대한민국 말하려면 봉하마을 가야’, 칼럼 ‘주요국 최초 여성 대통령 될까’(“세계는 지켜보는데 박근혜의 대선가도에는 비바람이 몰아친다. 반대 세력은 총공세를 편다. 민주당이든 안철수든 단일후보를 만들려 한다. 이미 무혐의로 굳어진 두개골까지 이용해 ‘유신의 딸’을 공격하고 있다.”) ·동아일보: “박 경선캠프 해단식 ‘행복을 주는 사람’ 합창하고···건배사는 ‘대박’”, “박근혜 ‘젊은 층 소통하기 위해 찢어진 청바지 입겠다’” 이런 글들 가운데는 박근혜가 ‘문제가 많은 가족관계를 정리하라’고 조언을 하거나 ‘최태민 스캔들은 이미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고 단정을 내리는 내용이 미화나 찬양과 ‘적절하게’ 배합되어 있다. ‘관영화한 상업방송’도 ‘박비어천가’를 합창하는 데 동참했다. KBS는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미화하는 드라마를 제작해서 방영하겠다고 나섰다가 논란이 일어나자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인 내년 1월에 내보내겠다고 ‘정정 발표’를 했다. 야권 후보가 당선되어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일까? 20일 밤 MBC <뉴스데스크>의 앵커는 “박 후보가 첫 여성 대선후보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당의 위기 때마다 선거 전면에 나서서 승부수를 던졌고 그것이 적중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고 말한 뒤 “2007년 경선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패했을 땐 깨끗이 승복해 지지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고 칭찬했다. 음험한 ‘박비어천가’의 압권은 조선일보 22일자 1면 머리에 실린 ‘50% 비박(非朴)을 향한 헌화’라는 기사였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박 후보가 김·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두 전직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50% 진영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박 후보의 측근은 ‘박 후보가 두 전직 대통령의 묘소를 찾음으로써 100% 대한민국을 향한 발걸음을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박 후보는 전날 전당대회 후보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이념을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 ‘보수니 중도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구분보다는 100% 대한민국을 이뤄내겠다’고 했다.” ‘박근혜한테 등을 돌린 비박이 50%’라는 산술의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박근혜를 지지하는 유권자가 50%라는 뜻이니 그는 이미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 아닌가? 세계 그 어디에 보수와 진보와 중도의 차이도 없이 100% 국민통합을 이룬 나라가 있는가? 이렇게 허황한 정치적 수사를 바탕으로 박근혜의 대선 승리를 기정사실화하는 기사야말로 음험한 ‘박비어천가’의 대표작임이 분명하다. 1997년과 2002년의 대선 결과를 보면 승패는 박빙의 차이로 결정이 났다. 김대중은 이회창보다 39만여 표, 노무현은 이회창보다 57만여 표를 더 얻어 가까스로 승리할 수 있었다. 투표자의 2~3% 차이로 승패가 결정났던 것이다. 리얼미터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는 새누리당 경선투표 당일인 20일 안철수의 48.7%보다 3.4%포인트 뒤진 45.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튿날 이른바 ‘컨벤션 효과’에 힘입어 48.4%대 45.8%로 역전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가 아직 출마선언을 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박근혜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4월 19대 총선에서 드러났듯이 박근혜가 이끌던 새누리당은 수도권과 20~40대 연령층에서 야권에 참패했다. 박근혜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유권자들의 주력은 김대중·노무현 진영 사람들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이다. 이승만 정권 시기에는 ‘만송족’이라고 경멸을 당하던 언론인들이 이승만과 그의 후계자로 정해진 이기붕을 향해 ‘이비어천가’를 불렀다. 박정희가 1961년 5월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뒤 18년 동안 신문과 방송에서는 ‘박비어천가’가 그치지 않았다. 전두환· 노태우·김영삼 정권 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일부 언론인들의 아부와 찬양은 계속되었다. ‘용비어천가’는 훈민정음 창제의 주역인 세종이 신하들에게 명령해서 만들게 한 봉건왕조 시대의 시가(詩歌)이다. 그것은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역성혁명’이라고 주장한 그의 할아버지 이성계를 신격화하거나 초인적 영웅으로 떠받드는 노래이다. 조선 개국 과정에서 이성계의 아들들(세종의 아버지를 포함)이 벌인 피비린내 나는 살육을 잘 알고 있던 그는 고려 왕조의 결함과 정치적 무능을 강조하면서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들이 ‘하늘의 명에 따라’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알리려는 목적으로 용비어천가를 짓게 했던 것이다. 그 노래 안에서 이성계는 ‘말 위에 올라 탄 큰 범을 한 손으로 치시고, 싸우는 황소를 두 손으로 잡으신’ 천하장사로 나타난다. 그는 ‘노루 여섯 마리와 까마귀 다섯 마리를 화살로 맞추시며, 비스듬히 기운 나무를 날아 넘으시는’ 초인으로 칭송된다. 용비어천가를 읽은 사람들 가운데 그 내용을 사실이라고 믿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임금 집안의 ‘신화 창조’라고 넘기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선거를 넉 달 가까이 남기고 지금 나타나는 ‘박비어천가’는 보수신문의 독자들이나 텔레비전 시청자들이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찬양과 미화의 색채를 드러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음험하다는 것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난 21일 이명박 정권 4년 반 동안 언론인 444명이 해직과 징계 등을 당했다고 발표했다. MBC가 219명으로 가장 많고, KBS가 133명, YTN이 51명, 국민일보가 20명, 연합뉴스가 13명이다. 그들 가운데 대다수는 자유언론 또는 공정방송을 위해 장기간 파업을 하다가 회사로 복귀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21세기 대명천지에 신문과 방송에서 울려 퍼지는 ‘박비어천가’를 어떤 심정으로 듣고 있을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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