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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3 17:50
21일 오후 6시30분경 사저 현관 계단에서 기념 촬영
21일 오후 마지막 날 행진 ~~ 밀양에서 창원으로 넘어오는 길, 낙동강을 건너고 있다!
“오늘 보니 그동안 걸으며서 덜렁덜렁하던 발톱 한개가 결국 빠져 버렸네요~~”
“3일째부터 눈물이 쏟아졌어요. 너무 너무 고통스럽더라구요. 참아야 했어요. 도저히 눈물을 보일 수가 없었어요. 선글라스를 끼었지요. 눈물을 감추려고~~.”
“김천제일병원에서 7명이 진찰을 받았어요. 의사선생님이 걷지 말래요. 그 때가 5일차였어요. 그러나 그냥 걸었지요. 어떻게 이곳 봉하까지 왔는지 알 수 없어요.”
“박홍진 조장요? 행진할 때 ‘힘내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 껑충껑충 뛰어다녔잖아요. 나는 알고 있었어요. 박조장이 많이 아팠거든요. 그런데 이 사실을 단장님에게 보고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사기 떨어뜨린다고~~. 통증이 올 때마다 껑충껑충 뛰면서 더 크게 소리를 지르더군요. 일종의 자기최면? 사실은 우리 모두가 환자였어요.”
8월 20일 저녁 10시 봉하빌라 2
06호실.
걸봉 마지막 날의 파티는 울음바다가 되고 말았다. 봉하막걸리와 족발이 차려졌지만, 음주는 큰 관심사가 될 수 없었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이야기 꽃이 뭉개뭉개 피어올랐다. 이대로 분위기가 업되면 요새 유행하는 싸이의 말춤이라도 등장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그러나~~, 한 여성대원의 발톱빠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말았다. 저마다 가슴 속에 묻어 두었던 고통의 순간들을 털어놓았고, 그 때마다 울음소리가 방안을 꽉 채웠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휴지통의 휴지를 꺼내 옆 동료의 눈물을 훔쳐주기도 했다.
동료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고난의 행군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 여성 대원은 “옆 친구에게 내가 너무 아프다고 호소하자 ‘너 만큼 아픈 대원이 누가 있겠느냐’면서 격려를 해주어 그 힘으로 봉하까지 왔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맞다. 그것은 눈물이었다. 분명한 눈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환희의 눈물’이었고, 뭔가 귀중한 목표를 실현했을 때 흘리는 ‘성취의 눈물’이었다.
20일은 많이 울었다. 걸봉 대원들은 20일 오후 5시경 봉하마을 입구에서 '도착 테이프'를 끊었다. 그 순간, 목표지점에 다 왔다는 안도감이었는지, 아니면 고통이 끝났는 생각이었는지, 마음속에 그리던 노짱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서인지 눈물을 훔치는 대원이 많았다. 그리고 묘역에서 헌화할 때, 너럭바위에서 참배할 때 울었다. 다음 사저에서 권양숙여사님을 뵐 때 또 울었다. 그리고 저녁 뒤풀이에서 눈물이 왈칵왈칵 쏟아졌다.
아마도 이날의 눈물은 평생 못잊을 것이다!!! 걸어서 봉하마을까지, 줄여서 ‘걸봉’!
세종특별자치시에서 봉하마을까지는 256km다. 장장 640리 길이다. 22명의 걸봉 대원들이 도전했다. 걸어서 이 길을 가기로 한 것이다. 왜? 노무현을 가치를 찾고 확인하기 위해!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세종시는 어떤 곳인가? ‘대통령 노무현’이 기획하고 설계한 참여정부 균형정책의 핵심이자 상징이다. 봉하마을은? ‘자연인 노무현’이 태어나 유년기를 보낸 곳이고 대통령 퇴임 후 사람 사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고민했던 곳이다. 그 세종시와 그 봉하마을을 걸음걸음으로 잇는 행시이기에 값이 있다. 자동차로 휙 가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8월11일 토요일 오전 세종시 밀마루전망대에서 발대식을 갖고 대장정을 시작했다. 꼬박 10일을 걸어 20일 오후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노무현대통령 묘소에서 참배를 한 다음, 사저에 들려 권양숙 여사님을 뵜다. 권 여사님은 행군을 막 마친 대원들에게 목이 마를 것이라면서 맛있는 수박을 푸짐하게 주셨다. 권 여사님의 따뜻한 격려가 그 동안의 고통을 모두 씻어 주었다. 주영훈 비서실장도 대원들에게 특별서비스(?)를 해주셨다. 대원들을 인솔하여 사저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건축물의 사연과 의미를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한 대원은 "이런 집은 아방궁 운운했던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였느냐?"고 한숨을 쉬기도 했다.
21일 마지막 날에는 봉화산에 올라 봉하들녁을 둘러봤다. 봉화산은 말 듣던 대로 ‘낮지만 높은 산’이다. 해발 141m에 불과하지만 정상(사자바위)에 올라가면 밀양 창원 창년 김해 등 주변이 훤히 보인다. 그래서 그곳에서 봉화불을 피웠으리라. 자전거를 타고 화포천 나들이를 했고, 방앗간에 들려 봉하 생태농업의 실황을 듣기도 했다.
22일 걸봉 대원들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뻔하다. 부족했던 잠 실컨 자고, 멍든 다리 주무르고,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발바닥에 난 물집 처리하고~~. 저마다 뒷마무리에 정신이 없을 것 같다.
걸봉 대원 여러분!
몸 잘 추스르세요. 그리고 세종에서 봉하 256km를 걸었던 정신으로 알차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