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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1 18:53
강기석( 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박근혜씨가 20일 결국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확정됐다. 그녀가 새누리당의 대선 후보가 될 것임은 아주 오래 전부터 확정적이었다. 그러므로 그녀가 한국 정치사상 최초의 여성 대선 후보라든가, 전직 대통령의 딸이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은 최초라든가 하는 뉴스들이 새삼 새로울 것도, 대단한 감흥을 줄 리도 없다. 이른바 ‘대세론’은 그렇게 오래 전부터 ‘박근혜 후보’에 관한 모든 뉴스를 진부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제 대세론은 수구언론들의 일방적인 옹호 속에 더 큰 날개를 달 것이다. 21일 아침 신문들의 1면 제목만 해도 “대통령의 딸, 대통령 후보 됐다” <조선>, “불안의 시대엔 안정된 지도자 필요” <동아>, “후보 박근혜, 도전은 이제부터” <중앙>이다. 박근혜 후보의 압도적인 득표율(84%)만 강조될 뿐, 사상 최저를 기록한 투표율(41.2%)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다.
대세론의 실제…“득표율은 강조하고 투표율은 감춰라”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의 담쟁이캠프 진선미 대변인이 박근혜 후보의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성명을 내놓았다. 진 대변인의 ‘진심’이 진짜 진심인지 여부를 헤아려 볼 필요조차 없이 내게는 박근혜 씨의 후보선출을 축하해 줄 이유가 추호도 없다. 무엇보다 그녀의 과거사 인식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중성, 기만성 때문이다.
박 후보는 수락연설에서 “이념과 계층, 지역과 세대를 넘어,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의 길을 가겠다”며 ‘국민대통합 시대’를 주창했다. 이어 “새누리당이 당명까지 바꾸면서 새로 출발했듯 비장한 각오로 새롭게 시작하겠다”며 “국민 여러분에게 남아 있는 불신, 그 어떤 것이라도 털어내고 과감하게 개혁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통합과 개혁, 미래 등등 듣기 좋은 것들은 몽땅 독차지했다.
하지만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5.16, 유신문제 등 (과거사문제에 대해) 생각이 달라 ‘100% 대한민국’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대해 “할 일이 산더미같이 있고 힘든 민생이 놓여 있는데 과거를 갖고 (정쟁을) 할 여유가 과연 있는가. 과거로 가려면 한이 없다”고 답했다. 5.16에 대해서도 “(교과서에 혁명, 군사정변, 쿠데타 등) 다양하게 기술돼 있고 국민들 생각이 다양한데… 민생은 제쳐놓고 그걸 갖고 싸우는 것은 정말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말 편리하고도 단순명쾌한, 그녀만의 독특한 어법이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독도는 한국의 영토이기 때문에… 일본이 역사인식을 바르게 갖도록 계속 촉구하고 (일본이) 그렇게 하도록 우리가 계속 노력해야 한다”고 ‘간단하게 해결하는 법’을 제시한다. 자신의 과거인식은 미래를 위해 그대로 덮고, 일본의 역사인식은 바르게 갖도록 촉구해야 한다는 이 이율배반의 역사관이란! ‘미래’를 강조하는 ‘박근혜 대세론’은 역(逆)으로 그렇게 극도의 모순 속에서 과거에 계속 발목 잡힐 것이다.
‘대망론’ 무럭무럭 키우는 민주당 경선 기대
민주통합당의 대선후보 경선이 25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국민의 정부 인사들이 속속 합류하고 있으며 박영선 의원이 곧 문 후보에 대한 지원을 공식선언한다는 이야기도 떠돌고 있다.
하지만 민주당 경선에서 ‘대세론’은 없다. 있다면 오직 ‘대망론’이 있을 뿐이다. 정권교체의 바람, 새 정치의 바람, 그리하여 새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국민의 바람을 누가 가장 잘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가려내는 격전 속에서 ‘대망론’이 활짝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망론’이, 수구언론이 부추기는 허구의 ‘대세론’과 싸울 것이다.
‘대망론’의 주인공은 누구나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당의 경선이야말로 후보들의 미래 비전을 겨루는 각축전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역사인식은 박근혜 후보를 둘러 싸고 있는 5.16과 유신의 정신적, 인적 망령들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때의 경험에 대한 인식 차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경선후보들이 저마다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 소중한 민주정부 10년의 잘잘못을 따져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반대급부로 점수를 챙겨보려는 협량으로는 절대로 ‘대망론’을 키워낼 수 없다.
우리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책임과 성찰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평가는 5.16과 유신, 군사독재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과거인식과 같은 수준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지금 당장 민주당 경선에서 물고 뜯을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