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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9 09:14
박근혜의 어지러운 ‘그네 타기’ | ||||
[김종철 칼럼] 5·16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네거티브에 멘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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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의 19대 총선 비례대표 공천 과정에서 수억원 대의 ‘공천헌금’이 오고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 7월 30일이었다. 비례대표로 당선된 현영희 의원이 새누리당 공천위원이던 현기환 전 의원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고 대검찰청에 고발한 주체는 놀랍게도 중앙선관위였다. 한 신문이 그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한 뒤 야권과 시민들의 눈길은 당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으로서 공천위원 인선과 총선을 주도한 박근혜 의원에게 쏠렸다. 이 글의 결론을 미리 말하자면, 새누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후보인 박근혜 의원이 ‘현대판 매관매직’이라는 비난을 듣는 이 사건에 대처하는 자세와 방식에는 설득력과 일관성이 없었다. 자신의 대통령선거 출마에 치명타를 가할 수도 있는 극히 민감한 사안이라서 몸을 사리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기에는 역사와 정치를 비롯한 세상만사에 대한 판단력이 한참 결여되어 있다는 점을 이번에 명확히 드러냈다. 최근 며칠 동안 그가 만들어낸 ‘어록’이 그것을 입증한다. “이번에 제보했다는 사람이 그때 그런 일이 있다고 당에 제보했다면 수사를 의뢰하든지, 확실한 원칙대로 결론 났을 텐데, 그때 제보 안 한 게 유감스럽다. 양쪽이 완전히 상반된 주장을 하는데, 검찰이 명명백백히 수사해 사실관계를 밝히면 어떤 결과가 나오든 법적으로 분명한 처리를 할 것이다.”(8월 3일) “최근 벌어지는 공천 관련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국민과 당원에게 송구하다. 만약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범죄이다. 누구도 성역이 있을 수 없다. 모든 것을 빠른 시일 안에 밝혀 관련된 사람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8월 5일) “저는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서 ‘멘붕’이 올 지경이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많다.”(8월 6일) 이번에 이 사건의 실상을 중앙선관위에 제보했다는 정 아무개 씨(현영희 의원의 전 수행비서)가 상세히 기록한 ‘공천헌금’ 관련 자료를 새누리당에 먼저 알렸다면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이 당 대표를 비롯한 최고위원들에게 ‘진상조사’를 하자고 제의했을까? ‘최근 벌어지는 공천 관련 의혹은 사실 여부를 떠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국민과 당원에게 송구하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범죄’라고 잘라 말하면 그만이지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 자체가 국민과 당원에게 송구하다니···. 박근혜 후보는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서 ‘멘붕’이 올 지경이라는데, 이번에 불거진 ‘공천 헌금’ 의혹도 네거티브인가? 자신과 관련된 네거티브의 전모를 낱낱이 소개하면서 진실을 밝힌 뒤 반론을 제기해야지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많아서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말은 이성적 사고나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7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경선주자 뉴미디어 토론회’에서, 여태까지 ‘구국의 혁명’이자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주장하던 5·16쿠데타에 대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을 바꾸었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 ‘정상적인 쿠데타’가 있단 말인가? 박 후보는 ‘나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던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을 ‘5·16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보는 근거로 들었다. 이것도 역사적 사실과는 한참 동떨어진 주장이다. 박정희 소장이 이끈 이른바 ‘혁명군’은 쿠데타 직후 발표한 ‘혁명공약’을 통해 ‘민정이양’을 약속했다. 그에 따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1961년 8월 12일 민정이양 일정에 관한 성명을 발표했다. 1963년 초에 정당 활동을 허용하고, 3월 이전에 신헌법을 제정·공포하며, 여름에 정권을 민간에 이양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그는 ‘번의(翻意)’에 번의를 거듭한 끝에 그 약속을 깨뜨리고 김종필의 중앙정보부를 통해 민주공화당을 불법으로 만든 뒤 1963년 11월의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그것은 결코 ‘비정상적 상황’에서 그가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 아니었다. 만약 그가 민간정치인들에게 깨끗이 정권을 이양하고 군대로 돌아갔다면 1969년의 ‘3선개헌안 날치기’도, 1972년의 초헌법적 쿠데타인 ‘10월 유신’도 없었을 것이다. 사족 같지만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될 박근혜 후보의 문제점이 ‘경선주자 뉴미디어 토론회’에서 불거져 나왔다. 그는 ‘서민상식’에 관한 퀴즈를 풀던 중 “2012년 기준 아르바이트 최저 시급이 얼마냐”라는 질문에 대해 ‘5000원 조금 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회자가 ‘올해 법정 최저임금은 4580원’이라고 말하자 박 후보는 ‘5000원도 안 됩니까’라고 되물었다. 2007년부터 이듬해까지 국회에서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으로 일했다는 대통령 예비후보가 비정규직 가운데서도 가장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하는 ‘알바’의 수입을 정확히 모르고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박근혜 후보가 가장 강조하는 공약은 ‘경제민주화’이다. 통계청이 2011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비정규직 인구는 6백만 명을 넘어섰다. 취업자의 30%를 웃도는 수자이다. 비정규직의 생존과 직결되는 최저임금을 정확히 모르는 인물이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을까? 박근혜 후보가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는 ‘그네 타기’를 보면 어지럽기 짝이 없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열린 자세와 명확한 정치·역사관을 보이지 않는 한, 그는 ‘내 꿈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만드는 데 앞장설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기환 전 의원이 ‘공천 장사’를 했는지 여부를 중앙선관위의 고발장을 통해 확인하고 나서 사실로 드러나면 ‘내가 임명한 공천위원의 부정은 내 책임’이라고 인정해야 한다. 그런 뒤에도 다수 유권자들이 변함없이 대선 출마를 강하게 원하면 ‘국민들을 위해 할 일이 많아 그 뜻에 따르겠다’고 밝히면 될 것이다. 그리고 5·16 쿠데타에 관한 한, ‘아버지의 역사적 과오’를 선선히 시인하고 다시는 ‘헌정을 유린하는 쿠데타나 군사반란이 일어나지 않는 민주체제를 굳건히 세우겠다’고 공언하는 것만이 그의 어지러운 그네 타기를 끝내는 방법이 아닐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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