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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 수습 실패 후회했던 쿠데타의 얼굴마담 "

댓글 3 추천 3 리트윗 0 조회 102 2012.08.06 04:22

5·16 군사 쿠데타 당시 박정희 소장 등 군부에 의해 대표 격으로 옹립됐던 장도영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 3일 밤(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사망했다. 향년 89세.

평안북도 용천 출신인 장 전 장관은 신의주고등보통학교를 마친 뒤 일본 도요대학 사학과를 졸업했다. 일제강점기에 중국에서 일본군 장교로 근무했다.

일제 패망 뒤 모교인 신의주동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월남해 1946년 미군정이 설치한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했다. 한국전에 참전한 뒤 육군참모차장, 제2군 사령관 등을 거쳤으며, 1961년 제2공화국 출범 후 장면 국무총리에 의해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별세한 장도영 12대 국방부 장관(왼쪽)이 육군참모총장이던 1961년 5·16 군사 쿠데타 직후 박정희 소장(오른쪽)과 함께 서있다. | 연합뉴스

 

5·16 쿠데타가 발발한 뒤 그는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으로 지명됐다. 군부 전체가 쿠데타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박정희가 상급자인 그를 앞세운 것이다. 이후 그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방부 장관 등에 추대되는 듯하더니 한 달이 채 못돼 국방장관에서 해임됐고, 반혁명 내란음모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형 집행 면제로 풀려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간 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3년까지 웨스턴미시간대에서 정치학을 강의했다. 은퇴 후 부인과 함께 플로리다에서 살아왔으며 수년 전부터 알츠하이머병을 앓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그는 5·16과 자신의 관계에 대해 함구했다. 그러다 쿠데타 40년만인 2001년 회고록 <망향>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자신은 하루 전에야 쿠데타 움직임을 파악했다며 자신의 쿠데타 지원 또는 방조설은 박정희 세력에 의해 날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에서 “육군을 지휘하는 책임자로서 쿠데타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쿠데타 뒤에도 이유가 어찌됐건 진압하지 않았다. 사태를 수습해 조속히 원상으로 복귀시키려 했던 일마저 실패했다. 즉 나는 참모총장으로서 연달아 세 번이나 실패를 범한 것이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되고 말았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백형숙씨와 아들 효수(재미 개인사업)·경수(의사)·진수(개인사업)·완수(의사)씨와 딸 윤화씨(미 아이오와대 의대 교수) 등 4남1녀가 있다. 장례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02)798-3155, 011-***-2524 (경향신문20면)


 

<단지언니생각>

1)꾼애애비의 권력욕과 인간적인 교활성을 여실히 볼수있는 역사의 한 단면

2)장도영씨가 그 동안 미국에서 살아있었군요.

3)우리사회가 진정한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것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4)장도영씨 같은 사람을 역사의 심판대에 세우고 정의에 대한 교훈을 정립했어야 함.

5)가족들은 (부인, 자식들)모두 도피해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었군요.

6)꾼애애비가 도피자금을 금고에서 두둑히 꺼내 줬겠지요.  세상 돈이 다 지돈인데. ㅋ

7)이런 옛날이 망령으로 새눌당(꾼뇬사당)에 의해 힘차게 되살아나는 것을

8)우리는 한없는 인내심을 발휘하며 겪어내고 있습니다.

9)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이런 인내는 절대 안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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