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는 사람이 될 수 없지만 사람은 개가 될 수 있다. 곰이 쑥과 마늘을 먹고 웅녀가 되었다면, 사람은 술이란 묘약으로 개가 된다. 때론 귀여운 강아지처럼 앙증맞아질 때도 있지만 어떤 경우엔 광견이 되어 심한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경찰이 '주폭(酒暴)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회의 안녕을 위해서 대대적인 단속을 한다 하고, 여당 국회의원들은 주취 폭력 행위자를 엄벌할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내놓고 있단다. 한국 사회의 의제를 설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되는 한 신문은 연일 많은 지면을 할애해 주폭의 위험성과 단속 강화를 부르짖고 있다.그 신문은 '주폭(酒暴) 개그하던 박성광, 이번엔 주폭 척결 나선다'(<조선일보> 인터넷판 7월 19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몇 해 전 '개그콘서트'에서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을 외치던 박성광이 "예전 개그 코너에서 상습적으로 술에 취해 파출소를 찾는 '주폭' 역할로 출연했던 것이 홍보대사 선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경찰의 설명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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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지방경찰청 경찰들이 지난 15일 술을 마시고 행패를 부리는 '주폭' 현황이 표기된 '주폭지도'를 상황판에 띄워 놓고 서류를 보고 있다. 광주경찰은 주폭으로 분류된 103명의 개인정보를 관리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그런데, 이 신문의 의도와는 다르게 기사는 주폭 문제의 본질을 담고 있다. 주폭은 공범이 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99%가 배제된 사회 시스템이다.서울지방경찰청이 지난 5월 '주폭 척결 종합수사대책'을 수립·추진한 이후의 결과를 밝힌 7월17일 자료에 의하면 단속이 진행된 70여 일 동안 검거·구속된 200여 명 중 160명(80%)이 일정한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피해자들은 음식점과 주점을 운영하는 영세상인이 543명(55.1%)으로 가장 많았다. 한마디로 '없는 사람들끼리' 피를 본 것이다.정부나 주류 언론 대부분은 주폭 시리즈 기사 제목인 <술에 너그러운 문화, 범죄 키우는 한국>에서 말하는 것처럼 술 문화와 가벼운 처벌이 주폭의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주폭 단속, 주폭의 진짜 원인을 회피하는 방법
그러나, '술에 너그러운 문화' 뒤에는 '술이 너무 그리운 팍팍한 세상'이 드리워져 있다. 많은 연구들이 가난할수록 술에 의지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경찰이 대표적인 주폭이라며 발표한 전과 94범인 어아무개 씨의 경우 돈이 없어 알콜 중독 치료를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고 그의 가족은 전한다.특히 빈곤층에 속한 이들에게 유일한 낙은 술이다. 이들에게 다른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지 못하고 단속 대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없다. 전문가들도 단속·처벌 강화가 재범률을 낮출 수 없기에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중요한 것은, 주취자들은 단속의 대상이기 이전에 복지의 대상이다. 복지가 휘청거리는 사회에서 폭주는 서민들의 일상이 된다. 그래서 주폭을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게 만들고 시스템의 문제로 보지 않으려는 정부의 태도가 진짜 위험요소이다.정부는 왜 주폭을 처벌의 대상으로만 보고 있을까? '주폭'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낸 김용판 서울경찰청장은 "주폭은 구속돼서 나오면 재활치료 효과도 빠를 것"이라며 재활치료보다 대안으로 미흡한 처벌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일까?7월 25일자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주폭'에 대한 기사에서 "취객들은 지구대를 분풀이 하는 장소로 여긴다. 경찰을 아주 우습게 안다"는 한 경찰 간부의 말을 전하며 과거 일제 식민시대나 군부 독재시대에 정권의 하수인으로 일하던 경찰의 이미지를 털어버리는 것이 주폭 사범 강력 단속의 취지 중 하나라고 설명했는데 여기에도 일말의 진실이 있다.가카는 그러실 리 없지만, 소설 하나 쓰자.소설 <우리 경찰이 달라졌어요>
부패와 불법의 '끝판왕'인 정치·경제 권력자들 대신 힘 없는 서민들에게 주로 방망이를 휘두르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경찰의 품격'은 땅에 떨어진 지 오래다.이런 상황에서 지금의 경제 위기로 인한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불만을 효과적으로 제어하려면 앞으로 '강한 경찰'을 떠올리고 싶어질 것이다.MB 정부의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이었던 강만수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현재 위기는 대공황 때보다 더 크고 오래갈 것"이라며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말할 정도로 경제위기는 심각하다. 그가 설계한 경제정책인 '747' 정책은 '칠 수 있는 사기는 다 치고 있다'는 비아냥을 듣고 있다.그 와중에 이미 무너지고 있는 남유럽 경제를 보면서 이명박 대통령은 6월 12일자 프랑스 <르 피가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리스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며 "최악의 상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 조정을 추진하는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가장 손쉬운 구조조정은 복지 예산 축소와 노동자 계급에 대한 대규모 해고와 임금 삭감 같은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일 것이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진행 중이다) 이에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유럽 대중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전투력 있는 정부의 필요를 학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찰 재무장'이 간절할 것이다.김 청장이 "엄정함이 무너지면 법질서가 무너진다"며 소위 '질서' 회복을 위한 경찰력 강화를 역설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닐까? 그리하여 '권찰'(권력을 위한 경찰)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 근거들을 마련하기 위한 사전작업은 아닐까?다시 말하지만, 소설이다.덧붙여, 오해를 좀 해 보자. '인기 없는 남자' 겸 '사과하는 남자'로 전락하며 최근 10%대로 다시 떨어진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는 데는, 잡기 부담스러운 '거물' 보다는 눈에 띄는 실적을 보여 주기 쉬운 '잔범죄자'들을 소탕하는 방법으로 재미를 볼 수 있다. 이는 '서민 코스프레'에 이어 사회 안전을 위한 정부의 노력을 과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이를 통해 '새로 누리'려는 다음 정권으로의 깔끔한 권력 토스도 가능해 질 것이다.이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각종 특권 비리 등 '권력에 취한 폭력'부터 근절하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김영동 건강세상네트워크 활동가 
출처: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_print.asp?article_num=*************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