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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 복권은 조선일보의 존재 이유

댓글 9 추천 9 리트윗 1 조회 297 2012.07.27 08:20

 

 

오늘 조선데스크의 사내칼럼 제목은 “도종환의 詩만 흔들렸나”입니다. 흔들린 다른 시인의 시도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칼럼을 쓴 직원은 김태훈 국제부 차장입니다. 국제부 차장이란 분이 이 글을 쓴 것은 아마도 아는 자 드물 노르웨이 소설가 크누트 함순(knut hamsun: 1859~1952) 때문이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함순 아시는 분?

 

함순은 가난한 가정에서 출생하여 방랑 생활을 하다가 24세 때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몸을 다쳐 귀국했다가, 1886년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으며, 1890년 자신의 체험 소설인 <굶주림>을 발표하여 이름을 떨쳤다. 그는 작품에서 “날이 어두워 침대에 누웠다. 피로가 몰려왔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머리털이 수북했다. 그것을 작은 뭉치로 감았다. 마치 안개처럼 무감감한 상태. 배가 너무 고프니까 손가락을 자연스럽게 빨았다. 그러다 갑자기 손가락이 먹고 싶어졌다. 눈을 감고 손가락을 꽉 물었다. 피가 났다. 피를 핥았다. 계속 나오는 피가 허기짐을 좀 멎게 했다.” 체험에서 오는 심각한 심리 묘사는 도스토옙스키와도 비길 정도로 훌륭하다는 칭송을 받았습니다. 이 함순은 말년에는 노르웨이를 침략한 나치 독일을 열렬히 지지하여 자신의 명성에 먹칠을 하였습니다.

 

이런 함순을 두고 ㅈㅅ일보의 국제부차장 김태훈은 한 가지 사실을 알려주면서 독자와 국민을 가르치려 듭니다. “크누트 함순(1859~1952)을 노르웨이가 어떻게 대우했는지 알려주고 싶다. 함순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문학에서 이룬 모든 업적을 부정당하고 쓸쓸히 죽었다. 그러나 2009년 그의 탄생 150주년을 계기로 노르웨이는 그의 초상과 작품을 새긴 기념주화를 발행하고, 그의 생일인 8월 4일에 맞춰 고향에 크누트함순센터를 건립하는 등 함순의 문학을 대대적으로 복권했다. 함순의 작품을 제쳐놓고 노르웨이 문학을 논할 수 없다는 자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를 사장(死藏)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는 대승적 판단도 있었다. 우리라고 다를 게 없다.”

 

세 가지 관점에서 김 차장의 글을 밟아보겠습니다. 하나, 노르웨이 국민이 왜 이런 뻘짓을 했을까요? 노르웨이가 어떤 나라인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북유럽의 구성원인 작은 나라에 불과할건데 그런 나라가 이웃 국가들을 외면하고 공공의 적 나치독일에 부역한 자를 위해 센터 같은 것을 그냥 세워주지는 않았을 것 아닙니까. 그래서 그를 기리는 센터는 계획된 지 15년만에 문학적 담론과 창의성의 장소가 되자는 바람으로 완공되습니다. 함순의 이름을 빌었지만 개인을 위한 게 아니라는 거죠. 박정희 기념관? 피식 ~

 

둘, 함순은 그 자신의 청년시절 체험 때문에 앵글로색슨족의 제국주의와 슬라브족의 스탈린주의를 배격하고, 노르웨이인과 혈통이 유사한 독일 아리안의 나치주의를 스스로 선택했고 그런 자신의 정치적 이념에 충성하다 죽었습니다. 서정주처럼 자기 한 목숨, 자기 혼자의 영화를 위해 일제시대부터 전두환 독재시대까지 조선일보와 손잡고 개처럼 이놈 저놈 잡놈의 독재자와 매국노들을 정신 없이 빨아주지는 않았다는 거죠.

 

셋째, ‘우리라고 다를 게 없다’고요? 있는데요. 댁은 걍 조선일보 월급쟁이. 우리는 반조선일보 국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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