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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5 06:27
풀 잎 강은교
아주 뒷날 부는 바람을
나는 알고 있어요.
아주 뒷날 눈비가
어느 집 창틀을 넘나드는지도.
늦도록 잠이 안 와
살(肉) 밖으로 나가 앉는 날이면
어쩌면 그렇게도 어김없이
울며 떠나는 당신들이 보여요.
누런 베수건 거머쥐고
닦아도 닦아도 지지 않는 피(血)를 닦으며
아, 하루나 이틀
해 저문 하늘을 우러르다 가네요.
알 수 있어요. 우린
땅 속에 다시 눕지 않아도.
주제 : 죽음의 예감과 허무의식
화자는 허무와 직접 대면하고 있지는 않다. 허무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실제로 도래한 것이 아닌데도 허무에 젖어 있는 것은 허무가 존재의 근원이라는 시적 인식에서 말미암은 것이다. 모든 존재는 결국 아주 뒷날 이 되면 어김없이 죽음으로 수렴되거 만다는 것을 미리 체험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와 미래는 돈떨어진 것이 아니고 하나의 흐름 속에 놓인 동일체로 인식된다.
그러나 허무에의 절망은 단순히 절망만으로 그치는 것은 아니다. 허무를 인식하고 안 뒤에 성숙한 삶으로의 지향도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시에서는 삶의 본질이 허무라는 인식에 도달하고 있는 정신적 깊이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