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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0 11:50
최근 현대사에 정치 개혁을 이루었던, 두 갈래 길이 있다.
하나는 위로 부터의 개혁이였고, 이는 군사 구테타 였다
또 하나는 민중 항쟁으로 이루었던 개혁이였다.
그 결과는 정도의 차이가 많이 있다.
군사 구테타는 정권을 잡는데는 성공을 했으나,
민중 항쟁은 정권을 잡는데에도 성공을 했고
민심을 아우르고 정치/사회적 민주화에도 성공을 했다.
국민 개혁 정당, 비록 아쉬움이 많은 당이긴 하나 열린 우리당,
그리고 참여당. 정당은 아니지만 사람 사는 세상...노무현 재단.
공통점이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했다.
하지만 처음의 시작은 풀뿌리 민주주의 였으나, 이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너무도 급하지 않았을까?
풀뿌리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지도 지역을 제대로 파고들지도
못했는데,
감투랄까......권력이라 할까....명예라 할까....사명이라 할까...운명이라 표현을 해야 할까..
아니면 나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 때문이였을까...아니면 가신 님에 대한 뜨거운 마음이 급하게 했을까....
어쨋든 너무 급했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천호선이 조금만 더 참고 견디었었다면, 봉하에서 목적을 이루지 않았을까?
김두관 후보가 그 긴 세월을 견디며 이제 도지사로서 시작을 했는데, 조금만 더
참고 견디었다면.....
경기도 도지사, 봉하 재보궐 선거, 411 총선 .....
왜 지지를 안 보냈느냐고 하기 전에 왜 내가 지지를 못 받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반면의 교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사업을 하던, 전문직을 하던 최소 일정 기간은 유지를 해야 그에 대한 전문성을
인정 받는다.... 그 숙성기간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재보궐 선거, 지방 선거, 411 총선을 거치며 또 다시드는 아쉬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