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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사당의 누린내와 국회의원들의 꼬락서니

댓글 1 추천 5 리트윗 0 조회 141 2012.07.14 04:53

 

 

“정두언의원의 체포동의안 부결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연일 이 나라 언론들이 앞 다투어 보도하고 있는 정가의 화두다. 과연 그런가. 후폭풍은커녕 찻잔 속의 태풍도 아니다. 국민의 대의기관이라는 새누리 국회의원들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3류 막장 드라마, 아니 불쾌하기 짝이 없는 억지 촌극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부아가 돋는다.

 

원대대표 사퇴, 대국민사과와 설득 등등 지랄쇼를 하는 것 같더니 의원총회를 열어 놓고는 사퇴는 없던 걸로, 성난 국민들에게는 사과하는 척 하는 걸로, 지 문제는 지가 알아서 하는 걸로~ 결론을 낸다. 누구 맘대로? 당근 그네 누님의 의중대로. 이게 이 나라 제일당이라는 새누린지 헌누린지, 누린내 진동하는 정당의 꼬락서니다.

 

민주주의의 근간이라는 정당정치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유신의 공주에서 바로 대왕대비가 된 한 여인의 의중대로 새누리는 굴러간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은 졸지에 당파의 개가 되어 한 목소리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나 외치며 제 감투 보전하기에 급급하다. 정두언 일개인의 구속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섬뜩한 공포가 밀려오는 것은 국회 절반의 의원들이 한 여자의 꼭두각시 혹은 수족처럼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무섭다. 내 눈 앞에서는 반창고만한 콧수염을 기른 한 광인의 얼굴이 어른거린다. 그 미치광이의 전쟁 놀음에 인류는 전쟁의 화마 속에서 처절한 지옥을 경험해야 했다. 그것이 불과 반세기 조금 전의 기억이다. 그런데 내 나라 내 강토에서 그 광증과 흡사한 돌림병이 돌고 있다. 북에서는 겨우 약관을 벗어난 젊은이를 향해서, 남에서는 유신총통의 비참한 죽음이 못내 억울했을 한 여자를 향해서 견마지로를 다하겠노라며 노복들이 짖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당이 언제 총칼을 들이대며 권력을 잡았던가. 아니다. 그들 역시 합법적인 선거로 집권한 정파에 불과하다. 다만 그 정파의 구성원들이 집단적 광기에 사로잡혔던 것이 인류가 처한 최악의 불행이었다. 나치가 히틀러였고 히틀러가 나치였다. 그런 까닭에 나치 독일을 그 누구도 민주공화국이라 말하지 않는다. 하물며 5․16 군사쿠데타가 구국의 결단이었다는 유신의 공주께서 좌지우지하는 사당 새누리를 목도하면서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주권자로서 어찌 소름이 돋지 않을 손가.

 

또 하나 떠오르는 역사의 현장이 있다. 세계제국 로마는 공화국이었다. 비록 귀족계급을 대표하는 원로원에 의한 귀족공화정이었을망정 평민 계급을 대표하는 호민관도 있었고, 시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루비콘강을 건넌 카이사르 이후 공화정은 몰락하고 제정으로 옮겨 간다. 오늘날 황제를 뜻하는 카이저의 어원이 된 카이사르(시저)는 공화정의 마지막 종신독재관(딕다토르)이었다. 그는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그의 등장이 당대의 현실적 여건에 의한 불가피한 상황이었을지는 모르나 그의 정치는 독재정치의 서막이었고 그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대통령병으로 인해 이 나라 민주운동의 유산을 거덜 낸 실옹 영삼 아제께서 말했단다. “근혜는 칠푼이고 자신을 제명하지 않았으면 근혜 아빠도 총 맞아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끔씩은 그래도 총기를 찾으시는 듯……, 아무튼 독재정치가의 말로는 늘 비참하다.

 

우리의 관심은 비참한 최후가 아니다. 관심은 누구도 독재정치를 공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히틀러도 그랬고 카이사르도 그랬고 박정희도 그랬다. 독재는 늘 조국을 살리기 위한 애국충정이었으며 고뇌에 찬 결단이었을 뿐이다. 카이사르의 권력을 이어 받아 제정 로마의 실질적인 초대 황제가 되는 아우구스투스 역시 살아생전에 황제인 적은 없었다. 그저 프린켑스, 시민 중의 제일인자였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권력은 황제의 그것이었고 원수 혹은 총통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독재정치는 언제나 위장된 술수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가면을 쓰고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무섭고 섬뜩하다. 나치의 집권은 1929년 불어 닥친 경제대공황에서 비롯되었고 유신의 명분은 경제개발이었다. 삶이 고단하고 피폐해질 때 효율과 집중이라는 일사불란한 정치체제로의 유혹은 달콤한 환상이자 독이든 성배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이 빵을 던져주며 자신의 목에 사슬을 거는 음흉한 수작인 것을 모른다. 불행은 거기에 있다.

 

이명박정권의 집권은 경제에 있었다. 잘 먹여주겠다고 해서 뽑았고, 뽑고 보니 밥은 없고 사슬만 남았다는 슬픈 푸념이 오늘날 유권자들의 억울함이다. 그럼에도 또 자신을 주인이 던져주는 밥이나 얻어먹으며 짖어대는 애완견의 신세로 밀어 넣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의 유권의식이다. 더 큰 불행이 여기에 있다. 온갖 감언이설과 빌공자 공약을 남발하며 국해의원(國害議員)까지 되신 나리들까지도 여제의 기침 한 번에 서둘러 탕재를 다려대는 꼴이니 어찌 새누리에 누린내가 진동하지 않을 수 있으랴.

 

공산주의 유령이 배회하던 골목에 파시즘의 망령이 서성이고 절차적 정당성을 겨우 갖춘 그 도시의 귀퉁이로 이번에는 다시 친위돌격대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파란 대궐문을 향한 여제의 행진에 시종을 자처한 헌법기관은 제 스스로 쫄병 계급장을 달고 뒤따른다. 스스로 노복이 되어 일사분란 상명하복의 대오를 형성한 저들의 불쌍한 꼬락서니를 보라. 명령하고 따르는, 획일화된 자신의 관계망에서 어떻게 “국가에서 국민으로”라는 거짓부렁을 함부로 입에 담는가 말이다.

 

이미 꿈은 없다. 이미 근혜의 꿈은 당의 색깔처럼 새빨간 거짓말이다. 국민을 말하기 전에 자신이 부리는 노비들을 정리해야 한다. 아무리 자유인이라 주장한들, 누가 보아도 그가 부자유한 관계의 틀에서 부당한 간섭에 놓여 있다면 그는 결코 자유인이 아니다. 지금 새누리에 어디 자유인이 있는가. 그저 채찍 든 여주인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노비들만이 있을 뿐이다.

 

민주주의를 말하기에 앞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다시 배우라. 자신은 군림하는 군주가 아니라 그저 당이며 사회며 국가의 한 구성원임을 깨달으라. 다만 그 구성원들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 좁게는 당의 선택을, 넓게는 국민의 선택을 기다리는 후보자임을 잊지 마시라. 민주사회의 정당은 일개인의 소유물도 한 대표자의 고집을 따르는 닫힌 집단이 아니라, 수많은 공론과 논쟁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에 의해 조정되고 합의되는 정치의 무대임을 명심하시라.

 

적어도 카이사르는 루비콘 도강이라는 일생일대의 도박에 나섰을 때에도 “이 강을 건너면 인간 세계가 비참해지고, 건너지 않으면 내가 파멸한다”는 말로 자신의 결단이 공화정 로마를 얼마나 위태롭게 하는 것인가에 대한 진심을 토로했다. 자고로 위정자는 정직해야 한다. 그랬기에 로마 시민은 종신독재관이라는 비정상적인 정치체제를 허용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독재는 언제고 사람보다 물질과 소유를 앞에 내세운다. 그러나 평등한 인간관계로부터 민주주의는 싹트는 것이다.

 

저 불쌍한 새누리당의 꼭두각시들이여, 제발 출세를 위한 노비 이전에 드높은 인격을 가진 인간이 되실 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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