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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5 13:29
[대선주자 입체분석] ① 노무현과 함께 한 30년… 문재인의 터닝 포인트
2013년 새 시대를 열게 될 대통령은 누가 될까. 오는 12월 19일 치러지는 19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 대권 잠룡들의 출마 선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동시에 국민들은 이들의 면면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궁금증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 선택이 향후 5년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스포츠서울닷컴>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여야 유력 대선 후보들에 대한 '주변'을 재조명하는 '특별기획-대선주자 릴레이 입체분석'을 시리즈로 다룬다. 네 번째 주자는 민주통합당 문재인 상임고문이다. <편집자주>
[스포츠서울닷컴│손화신 인턴기자]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정치를 하는 건 고통이 따르고 무척 겁나는 일이다. 용기가 필요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지난 1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정치권에 발을 내딛는 심정을 밝혔다. 그는 정치가 너무 두려워 피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정치를 두려워하는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 전, 후를 함께 해오며 국정 운영에 따르는 수많은 고통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과 30년의 세월을 함께 하면서 세 번의 터닝 포인트를 맞았다.
◆ '변호사 노무현'과 첫 만남… 운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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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왼쪽)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던 시절 직원들과 함께 야유회를 가고 있다. / 사진출처=다음카페 '젠틀재인' |
"그를 처음 본 순간 나와 같은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문 고문은 노 전 대통령과 첫 만남을 이렇게 회상했다. 인연은 19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 고문은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다. 하지만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고, 결국 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많은 법률회사에서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하지만 그의 운명은 따로 있었다. 사법시험 동기인 박정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소개로 만난 '변호사 노무현'이 바로 그 운명이었다. 두 사람은 첫 만남 직후 부산에 '변호사 노무현 문재인 합동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노 전 대통령은 문 고문보다 사시합격 5년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이제 막 사법연수를 마친 후배를 동등한 조건으로 대우했다.
노 전 대통령과 만남은 문 고문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터닝 포인트였다. 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문 고문은 정치계에 발을 들여 놓을 일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는 일도 없을지 모른다. 두 사람의 인연은 첫 만남 후 30년 동안 지속됐다.
◆ 노무현 대통령 당선… 변호사 접고 청와대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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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왼쪽)과 문 고문은 30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문 고문의 별명은 '노무현 그림자'다. 그는 이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 스포츠서울닷컴 DB |
두 사람은 부산을 대표하는 노동·인권변호사로 자리 잡았다. 그러던 중 노 전 대통령은 노선을 바꿔 정계에 발을 들였다. 1988년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치인 노무현'으로 변신한 것이다. 반면, 문 고문은 계속 부산에 남아 변호사 일을 이어갔다.
그러나 15년 뒤, 노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대선에 당선되면서 문 고문의 인생도 전환점을 맞았다. 노 전 대통령이 문 고문을 청와대로 불러들인 것이다. 그는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때도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아 노 전 대통령의 당선에 큰 몫을 한 바 있다. 청와대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게 된 그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정무특보 등 요직을 두루 거치며 노 전 대통령을 보좌했다.
'탄핵'이라는 고비가 닥쳤을 때 발벗고 나선 사람도 그였다. 네팔에서 안나푸르나를 산행하던 중 우연히 영자신문을 통해 접한 탄핵소식에 즉시 귀국하여 노 전 대통령을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 후 2007년에는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서 '왕수석'으로 불리며 2인자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 노무현의 서거… 피하고 싶었던 정치의 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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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5월23일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문 고문에게 큰 상실감을 주었다. / 스포츠서울닷컴 DB |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문 고문은 '법무법인 부산'의 변호사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변호사 문재인'으로서 새출발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으로 방향을 틀게 된다. 2009년 5월23일 문 고문은 부산대병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사실을 공식 발표해야 했다. 30년을 함께 해 온 동반자의 죽음은 감당하기 벅찬 혹독한 시련이었다. 하지만 그가 나서야했다.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이외의 모든 일을 도맡았다. 그 후에는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의 이사장으로서 30년 우정을 지켜나갔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또다시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정치를 하겠단 생각이 전혀 없었던 그가 용기를 내어 정치계에 투신한 것이다. 서거한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정치를 바로 세워야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정치인의 길을 '권유'하는 주변인도 많았다. 2010년 부산시장 선거, 2011년 김해을 재보선 당시 수많은 이들이 문 고문에게 출마를 부추겼다. 노 전 대통령의 정신을 이어갈 사람으로 그가 가장 적합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문 고문은 2012년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의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지금 그는 유력 대선 주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