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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11:44
속담을 두고 생각을 가져 본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
이 말이 가지는 일반적 의미는 어른이 잘해야 아랫 사람도 잘한다는 뜻일 게다. '어른'에 대한 해석은 각 분야별로 다르다. 하여 나는 '어른'은 모범, 본보기를 뜻하고 '아랫 사람'은 본 받을 대상을 뜻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위에서 흘러 온 물은 전통이나 관습이고 바른 생각이다. 아래로 계속해서 흐를 수 있도록 새로 물에 합류하는 아랫물들은 마음과 몸가짐을 조심해야 한다.
위에서 흘려 보낸 물 그대로 보존하며 흘려 보낼 수 있을까?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인위적, 자연적을 떠나 불순물이 섞이게 되어 있다. 다만 최대한 원상태를 보존한다는 개념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시작이 순수했던 강이다. 세상 잡물들이 꼬여들어 노무현을 부르짖는다. 그런데 이 강의 시작은 온화하며 장난끼 넘치고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던 곳이다. 겸손하고 낮은 자세로서 사람을 대하던 강이 못된 사람들 핍박을 못 이겨 스스로 흐르는 것을 멈췄다.
그러나 계속해서 강은 흐른다. 줄기가 나뉘어 다시 바다로 향하고 있다. 강이 바다로 가려면 하류가 넓어져야 무난하다. 강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지금 이 강의 강폭은 어떤지를 살펴 보자. 좁다 좁아도 너무 좁다.
시작이 같은 물만 고집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본인들 또한 시작이 같은 물이 아니다. 변질의 변질을 거쳐 온 물들이 오염을 일으키고 원류의 다정과 겸손 낮은 자세를 희석 시켰다. 오로지 적이 있고 제거가 있을 뿐 맹종과 반목이 있을 뿐 원류의 말고 깨끗한 순수는 찾아 보기 힘들어 졌다.
급류로 들어 선 제 모습을 잊는다. 새로이 껴 드는 물들의 탓이라며 저 위에서부터 함께 흘러 온 치적만 내 세워 물들을 갈라 놓고 나중에 껴든 물들이 이 강을 오염했다며 악을 쓰고 있다.
오염을 보다 못한 개입이 인위적 정수다.
강물의 오염은 자갈과 흙과 수초와 같은 것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오염이 심한 것만 골라 낸다며 정수기를 심었다. 소통은 어디에 있고 자연스럽게 해결 될 화해는 어디에 있는 걸까?
나의 답답함은 이 것에 있다.
오래된 물들이 가진 오염은 정수기로 떨어 낼 수 없는 고질적인 것들이다. 물 자체가 썩어 생긴 오염을 두고 새로 합류한 물들이 썩어 있다는 발상을 가지는 것이 천추의 한이 될지도 모르는데 이 강은 여전히 새로 들어 오려는 물들만 골라 내려 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아직 이 물에 섞이지 않았다.
이 강이 바다로 가면 이젠 바다가 오염될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이 강의 오염을 정화할 자연을 가지고 있다. 강은 이 사실을 모른다. 마치 자신들이 바다에만 닿으면 모든 게 끝인 줄 믿지만 바다가 자신들에게 염분을 나눠 주지 않는 이상 바닷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바닥의 흙을 갈고 수초를 심고 흐르는 강 줄기에 깊게 박힌 오물을 걷는 일 그 것이 먼저다. 백날 정수기로 갈아 보려 해 봤자 이 많은 물을 다 정화 할 수 있을까?
수원 아래 오산이다.
이 세상을 지탱하고 있는 잘못된 지지의 바닥을 엎지 않는 한 죽었어도 살아 있는 노무현은 결코 만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