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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댓글 4 추천 2 리트윗 0 조회 127 2012.07.03 21:40

 

고려 말에는 세력가들이 불법으로 논밭을 다 빼앗았다. 한 조각의 땅도 임자가 여럿이어서 농사짓는 백성들의 고통이 여간 아니었다. 도조(賭租)도 2중 3중이요, 그 운반비용이며, 오고가는 지주 쪽 심부름꾼들의 접대비용이 녹록하지 않았다. ‘이대로는 못살겠다!’ 사방에서 백성들이 아우성쳤다.

정도전이 해결책을 마련했다. ‘모든 논밭을 몰수하여 일단 국가 소유로 전환한다. 그런 다음 인구비례에 따라 백성들에게 재분배한다.’ 까마득한 중국의 옛 현왕(賢王)들이 실시했다는 정전제도를 그는 현실에 옮기고자 하였다.(<삼봉집>) 정도전은 조정의 막후실력자 이성계를 설득하여 자신의 개혁안을 재상회의에 상정했다.(1389년)

구 귀족들의 반대가 거셌다. 특히 시중 이색이 반대여론을 선도하였다. ‘옛 법은 함부로 고칠 수 없다.’ 이 한마디로 그는 기득권층의 이익을 적극 방어하였다. 이임, 우현보, 변안열, 권근 및 유백유 등도 이색을 따랐다. 조준과 윤소종만이 정도전을 편들었다. 정몽주는 중립을 선언하였다. 해당 관청의 실무관리들은 대부분 개혁에 찬성했지만 허사였다. 개혁안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정도전은 출신이 미천하였다. 그는 자신의 본바탕을 잊지 않아, 매사를 백성들 위주로 판단하였다. 부자들은 판판이 놀고 지내면서도 수확량의 절반을 가져갔다. 하건마는 국가는 팔짱만 끼고 앉아 구경하는 세상이다!(<조선경국전>) 살림살이에 어느 정도 차이가 생기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그러나 그 차이가 차별로 변해 고질적 사회악이 되고 말았다. 이것을 뜯어고쳐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새 사회를 건설하는 것. 이것이 정도전의 소망이었다. 그는 앞장서 고려를 타도하고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일으켰다.

‘왕자의 난’으로 인해 그가 쓰러지고 만 것은 역사의 불행이었다. 자신의 본바탕을 기억한다면 지금 떵떵거리는 이 나라의 재벌과 권력자들도 달라져야 한다. 전쟁 없이 함께 살길을 꼭 찾아야 옳다.

백승종 마을공동체문화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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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의 난’에 무산된 요동정벌이 남긴 유산은…

 

 

 

정도전의 죽음, 태조의 하야와 함께 요동 정벌의 꿈도 사라졌다. 동시에 정도전은 ‘역적’이자 ‘간신’, ‘목숨을 구걸한 비겁한 인물’로 매도되었다. 곧이어 조선에게 강압을 일삼았던 주원장도 세상을 떠난다. 양국 관계를 긴장시켰던 두 장본인이 잇따라 사라진 것이다. 조명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정도전을 과연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고토 수복을 열망했던 ‘민족주의자’였을까? 아니면 현실을 무시한 ‘모험주의자’였을까? 그런데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 원명교체를 겪고 조선의 개창을 주도하면서 그가 중국에 대해 외교적으로 확고한 원칙을 지녔다는 사실이다. 정도전은 ‘대국’에 대해 공순히 사대할 것을 강조했지만, ‘대국’이 ‘소국’을 함부로 능멸하려 할 때는 당당히 맞서려 했고 또 맞설 수 있는 능력을 키우려 노력했던 ‘원칙주의자’였다.

명지대 사학과 교수  한명기/한겨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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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후에.. joon2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