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4
0
조회 147
2012.07.02 21:18
문재인. 그가 연일 화제다. 대선출마를 선언하고부터는 더욱 그렇다. 그가 움직이는 곳엔 카메라가 따르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는 그대로 뉴스의 헤드라인이 된다. 무엇일까? 그의 무엇이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 걸까? 그의 인생, 그의 인품, 그의 철학, 그의 비전에서 희망을 발견한 사람들이 그에게 열광하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그가 제1 야당의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라는 점이 더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저기에서 그를 조명하고 평가하기에 분주하다.
어떤 이는 그의 정치력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분석과 예언을 내놓는다. 어떤 이는 그의 출마선언문에 밑줄을 그으며 그가 내놓은 4대 성장전략과 강한 복지에 관심을 보인다. 또 책과 신문, 방송들은 저마다 다양한 모양의 렌즈가 달린 현미경을 들고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게 쏟아지는 당연한 관심이다. 앞으로도 이 같은 관심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계속 커져갈 것이다. 그리고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그를 조명하려는 노력들이 이어질 것이다. 이를테면 어린이의 눈에 비친 문재인, 프로야구 선수가 만난 문재인, 이민 10년차 애리조나 교민이 경험한 문재인... 이런 다양한 시각이 낱낱이 공개될 것이고 또 국민은 이런 여러 시각들을 공유하면서 자신의 한 표가 갈 곳을 정할 것이다.
그렇다면 카피라이터의 눈에 비친 문재인은 어떤 모습일까? 말과 글 다루는 카피라이터는 문재인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어떤 특징과 장단점을 발견할까? 내 눈에 들어온 문재인을 끄집어내 본다.
입을 열기 전에
문재인에게 질문을 하면 가끔 갑자기 정전이 된 듯 적막이 흐르는 경우가 있다. 대답을 하기 전에 어떤 논리와 어떤 단어를 사용하여 어떤 이야기를 할 것인지 혼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정리하는 시간이다. 그 적막이 상대에겐 지루하거나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내가 지금 말을 준비하는 중입니다, 라는 뜻으로 예... 뭐... 뭡니까... 같은 화두를 자주 사용한다.
주저하거나 머뭇거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는 예... 뭐... 뭡니까... 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당연히 호의적일 리 없다. 답답해 보인다. 어눌해 보인다. 이런 반응들이 주를 이룬다. 그러니까 문재인은 이놈의 예, 뭐, 뭡니까 때문에 답변하기 전부터 실점을 하고 들어간다.
그런데 왜 이런 말 습관이 생겼을까? 왜 습관을 고쳐 실점을 줄이려 하지 않을까? 그건 신중함이다. 그는 인권변호사로 평생을 살아왔다. 때문에 늘 정확한 단어를 사용해야 하고 빈틈없는 논리를 들고 와야 한다. 누가 따라다니며 그의 말 하나하나를 체크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그래야 한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그의 완벽주의가 그에게 그렇게 시킨 것이다.
그는 무조건 첫마디를 꺼내고 보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그때그때 순발력 또는 융통성으로 대처하며 말을 이어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말을 시작하기 전에 빠르게 머릿속을 정리하는 신중한 시간을 갖는 것이다. 그 적막이 지루할 수 있으니 예, 뭐, 뭡니까를 던지며 시간을 버는 것이다. 답답하고 어눌해 보여 손해 보는 실점보다 정확한 단어와 빈틈없는 논리를 찾는 게 중요하다. 적어도 그에게는 그렇다. 당분간 그는 실점을 만회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을 것 같다.
입을 열면
문재인과 한자리에 앉아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듣게 되는 말은 무엇일까?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권교체도 아니다. 복지도 성장도 평화도 아니다. 실망스럽게도 그것은 ‘인제’다. “그러니까 인제 우리 민주통합당도 계파를 초월하여... 막상 인제 선거에 들어가면 수백만이 참여하는... 지금 인제 중국은 미국과 일본을 더한 것보다...” 이렇게 시도 때도 없이 인제를 등장시킨다. 쉽게 고치기 힘든 오래된 말 습관일 것이다.
그런데 그가 이렇게 사랑해마지 않는 인제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것이 강원도에 있는 작은 도시가 아니라면, 소속정당이 탈당인 한 정치인을 칭하는 게 아니라면, 인제는 이제라는 말과 같은 뜻일 것이다. 국어사전은 인제를 지금부터, 지금에 이르러, 라고 풀고 있다. 하지만 그 뜻과 무관하게 위에서 예를 든 그의 인제들은 다 걷어내도 된다. 아니, 다 걷어내야 말이 훨씬 더 매끄럽다.
여러 곳에서 지적을 받았을 법한데 왜 대통령 후보씩이나 되면서 이를 고치지 않는 걸까? 어쩌면 이런 모습이 문재인의 매력인지 모른다. 그는 자신을 바꾸는 것을 싫어한다. 말 습관뿐 아니라 옷차림도 헤어스타일도 바꾸기 싫어한다. 얼굴에 뭔가를 찍어 바르는 것도 질색한다.
코디네이터나 메이크업아티스트가 그의 오랜 스타일을 조금이라도 바꾸려면 한참을 그와 싸워야 한다. 그 싸움의 과정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의 고집이 은근히 귀엽기까지 하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바꾸거나 꾸미려 하지 않는 사람. 그가 문재인이다. 인제 문재인! 그의 이름 앞에 인제라는 호를 붙여주고 싶다.
연필을 들면
“국민들에게 사실을 알려야 했다. 의료진들과 협의해, 내가 대통령의 서거 사실과 서거 원인을 발표하기로 했다. 이어서 의료진이 의학적 설명을 하기로 했다. 짧은 문안을 만들어 기자들 앞에 섰다. 수백 개의 플래시가 터지는 듯 번쩍번쩍했지만, 아무 느낌이 없었다. 회견장에 가득 찬 기자들의 웅성거림조차 무서운 정적처럼 느껴졌다. 마치 정지화면 같았다.”
그가 쓴 <문재인의 운명>이라는 책의 일부이다. 그의 문장은 담백하고 소박하다. 화려한 수식어를 찾기 어렵다. 미사여구도 등장하지 않는다. 문장 하나하나에 그의 성격이 그대로 나타난다. 이런 글은 자칫 재미없고 지루할 수 있지만, 그의 글은 그렇지 않다. 글이 아니라 마음이기 때문이다. 진심이 전하는 무게감 때문이다.
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그와 차 한 잔 앞에 놓고 마주앉아 있다는 착각이 든다.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감정을 과장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생각과 인생을 풀어놓는다. 글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다. 얼마나 잘 다듬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얼마나 진심인가, 그것이 모든 기술과 기교와 기법을 이긴다. 문재인의 활자에는 그 진심이 보인다.
연필을 놓으며
카피라이터는 상품 파는 일을 한다.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살피고, 그것이 우리 제품과 만나는 지점을 찾아 소비자와 상품을 연결시켜주는 일을 한다. 소비자의 요구와 멀리 떨어진 제품을 만나는 순간 카피라이터의 얼굴은 찌푸려지고 고민은 깊어진다. 그러나 소비자의 요구에 딱 들어맞는 제품을 만나면 카피라이터는 연필 드는 일이 그냥 즐겁다.
선거도 하나의 마케팅이다. 문재인이 상품이고 우리 국민이 소비자다. 그런데 문재인이라는 상품을 국민이라는 소비자에게 소개하는 카피라이터가 나라면 나는 참으로 운 좋은 카피라이터다. 문재인은 머리 쥐어짜며 억지로 아이디어를 생산할 필요가 없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소비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꾸미고 포장할 필요가 없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그것만으로 쉽게 소비자의 요구와 만난다. 사람들은 이를 시대정신이라 한다. 만약 문재인이라는 상품에 단점이나 하자가 있다면 그것 역시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 사람들은 그의 부족함에서 오히려 사람 냄새를 맡을 것이다.
문재인. 그는 훌륭한 웅변가도 아니고 뛰어난 문장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색하고 어눌하고 소박한 말과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가장 먼저 움직일 것이다.
정 철 / 카피라이터
사진출처/문사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