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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1 12:05
노무현은 준비 된 대통령이 아니었다. 대통령 출마 결심을 보더라도 충동에 가까웠고 조직 기반이 열악했었다. 어쩌면 흥행에 성공해서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인물만으로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있을까?
노무현은 인물만으로 대통령을 지내는 것이 얼마나 참담한지를 절실히 보여 주었다. 바른 생각, 앞 선 제시 등이 하나 같이 벽에 막혀 출구로 향하지 못했던 노무현식 정치를 지켜 보면서 "사람다운"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현재의 야권은 노무현의 성공 신화였던 '흥행 정치'를 여전히 꿈꾸고 있다. 그런데 노무현과는 차이가 있다. 신선함, 사람 됨, 리더쉽 어느 것 하나 노무현과 닮지 않았는데 방식만 흉내 내는 모양이다.
대권주자들이 제시하는 미래가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는가?
감동이란 것을 알고나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 좁은 세상의 사람들은 각기 지지의 끈을 따라 감동을 느끼겠지만 저 바깥 사람들은 웬만한 미래로서는 쉽게 감동하지 못한다. 그럴 "연"이다. 때 되면 하는 소리 정작 할 수 있을까?의 의구심 시끄럽다는 일침 등 불신은 여전하고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 좋은 것만 가지고 정치를 할 수 있어?' 아마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고 여권 또한 이런 논리를 내 세워 야권의 대권 주자들을 은근히 폄하하고 있다. 꼬인 타래의 실마리가 이 것이다.
야권은 주구장창 청렴을 내 세우고 모두가 다 잘 사는 세상을 천명한다. 그런데 그런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확연히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실체가 없는 허구의 가치가 얼마나 주목 받을 수 있는지 이 것에 대한 생각이 짧다.
뜬 구름을 보며 미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현재 야권의 행보다. 이에 부화뇌동하는 야권의 지지자들을 본다. 찬양 같은 맹목적 지지가 가져 올 파장은 종교의 광신도의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어쩌면 종교보다 못할지 모른다. 종교는 최소한 선교를 목적하고 있다. 그런데 정치 종교는 선교는 눈 밖의 일이고 찬양 일색의 결집을 최고의 전략으로 삼는다.
박근혜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본다. 엄밀히 말하면 부러우니까 씹는 거다. 박근혜의 리더쉽을 익히 보았고 그로 인해 새누리당은 새 전기를 마련한 것이 분명하다. 가시적 성과 그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박근혜의 리더쉽이다. 그런 리더쉽을 가진 인물이 야권에 존재하는가?를 판단해 볼 때 참 암울한 일이지만 없다.
무엇 때문인지를 알고 있을까?
이 것이 바로 준비 된과 준비 중의 차이다. 야권은 준비 된을 주장하지 못한다. 혹여 말을 꺼내도 말 그대로 인물만 준비 되어 있을 뿐이다. 대권 주자로서 준비 된이 인물에 머물러 있는 건 노무현 정치의 답습에 지나지 않는다. 한 발 더 앞서지 못한 '흥행 정치' 이 것일 뿐인데 세상을 바꾸는 건 어렵다.
준비 된이란?
기반을 뜻한다. 박근혜의 리더쉽은 기반에 의존 된 것이다. 이 기반을 단순히 지지층으로만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그 전의 기반이다. 여권의 기반이다. 조직을 장악하고 다스릴 수 있는 기반이 있다는 것이 박근혜 리더쉽이 먹히는 이유다.
우리나라가 운영되고 운영 되어 온 기반 이 것이 잘못 되었고 반드시 개혁을 필요로 하는 것일지라도 그 기반을 무시하고 대권에 도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야권이 우리나라 운영 기반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놓고 살필 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야권은 국가기반을 백성으로 보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딱히 옳은 소리도 아니다. 대립의 정치로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기반이 없다면 노무현의 실패를 한 번 더 경험하게 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일이다.
한 번 먹혔던 "흥행"이 두 번째 똑 같이 성공할 것이란 기대는 버리는 게 좋다. 야권을 다스릴 기반도 없는 사람들이 흥행에 기대 정치를 논하는 행위는 요행을 바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소통이 곧 관리다.
준비 중인 것으로 다시 한 번 신화를 만들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준비 된을 가지고 나와 사람들을 감동 시키거나 흥분 시켜야 한다. 여전히 야권은 준비 중이다. 정치의 완성도가 낮다. 뜬 구름을 보이며 이 것이 미래라는 제시는 할 수 있어도 동전 하나를 집어 넣어 눈으로 볼 수 있는 미래를 뽑아 내는 가시적인 것에 미숙하다.
사람을 품는 것도 능숙하지 못하다. 늘 소외층을 위한 정치를 표방하면서 정작 소외 받고 있는 자들을 소외하고 있는 현실을 숱하게 본다. 부지런하지 못한 그들의 행보를 보면서 진심이 묻어 나지 못한 허울의 말들을 보면서 눈에 보여 주기 쉬운 이목의 장소에만 툭툭 얼굴을 디미는 모습을 보면서 여전히 야권이 집결만 하면 이길 수 있다는 망상을 보면서 사람을 중히 여기지 못하는 제 지지자들의 헛된 망종을 방치하는 양심을 보면서 그러면서도 여전히 노무현은 자신들의 이정표라는 뻔한 술수를 보면서 한탄한다.
준비 된 이 것이 도대체 있기는 한 것인가?
야권의 실패는 준비 된 것이 너무도 없기 때문임을 알고는 있는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