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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용과 박정희와 이명박의 한일협정에 대한 단상 / Arthur Jung

댓글 2 추천 5 리트윗 1 조회 92 2012.06.30 11:31

이완용과 박정희와 이명박의 한일협정에 대한 단상

 Arthur Jung 2012/06/29 08:17

이완용의 1910년, 박정희의 1965년, 이명박의 2012년, 비밀 한일협정의 반복.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 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이 6월 26일 대한민국의 국무회의에 비공개 안건으로 상정돼 처리되었다고 한다. 수많은 신문기사에서 한결같이 지적하듯, 국회에서의 제대로 된 논의 과정도 전혀 없었고 언론도 정부당국자들의 거짓말에 놀아나다 뒤늦게 알았으며, 심지어는 청와대까지 몰랐다고 발뺌하고 있다. 하지만 벌써, 이 협정의 주무부처가 국방부에서 외교통상부로 바뀌며 국무회의에서 밀실처리되는 전과정을 청와대가 주도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있고, 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 역시 중남미 순방을 떠나기 전 한일군사협정 체결 계획을 미리 보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쯤되면 무책임한 MB정권은 거의 멘붕 상태라고밖에 볼 수 없으며, 자포자기와 먹튀 사이에서 자신들이 온갖 무리수를 다 동원해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음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도대체 이토록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을 어떻게 하면 이렇게 막무가내로 처리할 수가 있을까? 일본 오사카 출신인 이명박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서 정녕 친일의 길을 걷겠다는 건가? 일제 식민지를 겪은 우리가 저들을 감시하지는 못할 망정 일본의 야욕에 들러리를 선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비밀리에 처리한다는 건 정상적인 국가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완용이 1910년에 총리대신으로서 비밀리에 한일강제병합 안건을 내각회의에 상정하고, 의장 자격으로 합병안을 통과시킨 경술국치 때의 대한제국이 아니라면 말이다.

 

 

철저한 출세지향 기회주의자 이완용과 박정희의 한일협정

 

역사가 말해주는 이완용은 철저한 기회주의자였다. 원래는 미국에서 외교관 생활을 한 친미파였지만, 조선에 대한 러시아의 적극성을 알게 되자 친러파가 되었고, 결국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친일파가 되었다. 그는 언제나 역학관계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눈치보기를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 어떤 패륜적인 행위도 마다하지 않았다. 언뜻 보기에 그는 처세술의 달인이었으며 능력있는 남성의 전형이었고, 내각 대신들을 동원해 한일강제병합을 밀실에서 처리할 정도로 자신의 힘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종하는 데에도 탁월했다. 과연 2012년 6월에 열린 비공개 국무회의에 참석한 대한민국의 현재 국무위원들이, 1910년 8월에 열린 이완용의 비밀 내각회의에 참석했다면 뭔가 우리의 아픈 역사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슬프게도, 별로 그럴 것 같진 않다.

 

그리고 동시에, 이완용만큼이나 대단한 기회주의자였던 박정희도 생각난다. 역사가 말해주는 박정희도 이완용처럼 항상 권력의 이동에 민감했고, 자신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세상에 없는 삶을 살았다. 일제시대에는 출세를 위해서 일본군 장교가 되었고, 광복 직후에 좌익세력이 맹위를 떨치자 요즘 말하는 종북 빨갱이인 남로당 프락치가 되었으며, 한국전쟁 이후에는 냉전시대를 맞아 미국의 시선을 의식하며 남다른 반공주의자로 변모했다.

[박정희는 자신의 남로당 활동이 문제가 되자 원래 알고 있던 남로당원들을 밀고하며 위기를 모면했고, 동료들을 배신한 그는 군대 내 좌익 색출작업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한편, 당시 한국군에 암약하던 일본 만주군 시절 선배들의 도움으로 계속 군생활을 하며 진급할 수 있었다고 한다]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문(상), 1965년 박정희의 한일기본조약 서명(하) - 사진 자료: 시사인]

 

이런 박정희도 1960년대 초에 한일협정을 밀실에서 추진했고, 결국 1965년 6월 22일에 한일기본조약을 정식으로 조인했다. 수많은 국민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일협정을 밀어붙였고, 박정희 정권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까지 했다. 이 조약은 기본조약과 4개의 부속협정, 25개의 관련 문서로 구성됐는데, 부속협정에는 한일어업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 협정, 경제협력협정, 문화재협정이 있다. 박정희가 체결한 한일협정에는 일본의 강제침탈에 대한 사죄나 배상, 독도의 한국 영유권에 대한 표현이 없으며, 무려 4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독도 문제는 계속 반복되고 있으며, 어업협정 역시 해결되지 않았고, 문화재도 극히 일부 환수에 그치고 있으며, 일본의 배상과 관련된 재판은 끝날 줄을 모른다. 도대체 어떻게 이걸 제대로 된 한일협정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1965년 6월 박정희의 굴욕적인 한일협정이 바로 2012년 6월 이명박의 한일군사협정 졸속처리로 똑같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한일기본조약 날치기와 이명박 정권의 한미FTA 날치기

 

반복되는 역사는 한일협정 자체의 밀실 처리뿐만 아니다. 박정희는 한일협정을 통해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 청구권을 포기하고, 일본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협상 진행과정에서 전국민적인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박정희 정권은 여당 단독으로 국회를 열어 한일협정을 날치기 통과시켰다. 이는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전무후무한, 조약의 날치기 처리였다. 그런데, 이 기록을 지금의 이명박 정권이 깨뜨렸다. 한일협정 날치기 통과 이후 처음으로 2011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국회에서 새누리당(한나라당)이 날치기로 통과시킨 것이다. 오직 박정희와 이명박 집권기의 여당만이 조약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처리했고, 치욕적인 친일(親日)과 종미(從美)의 역사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현장 주변에는 현재 가장 유력한 여권의 대통령 후보인 박근혜가 있었다.

[박근혜는 작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국회에서 날치기 처리될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박정희: '한목숨 다바쳐 충성함 박정희(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 - 박정희가 일본 만주군에 지원하면서 쓴 혈서의 내용.

 

 이명박: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 - 일본 총리가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교과서 명시를 언급하자 이명박이 한 말.

 

 

박정희의 한일협정이 우리나라와 일본과의 관계에서 두고두고 심각한 문제가 되듯이, 이명박의 한미FTA는 앞으로도 계속 미국과의 관계에서 큰 문제가 될 것이다. 박정희가 일본 만주군에 지원하면서 혈서까지 썼다는 게 나중에 드러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명박은 뼛속까지 친일이고 종미라는 걸 미국 외교전문은 고스란히 밝히고 있다. 이완용이나 박정희처럼 철저한 출세지향 기회주의자인 1941년생 이명박은, 박정희의 집권기인 1960년대와 70년대에 대표적으로 출세한 사람이다(그는 현대건설에 1965년 입사하여 1977년 사장이 되었다). 당시 대통령인 박정희의 개발독재 마인드를 뼛속까지 추종한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그 때의 성공을 기반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까지 한 것이다. 한마디로 이명박은 박정희 시대의 대한민국 사회가 낳은 자랑스런 아들인 셈이다. 박정희와 이명박, 너무나 통하는 게 많지 않은가? 박근혜가 박정희의 현신(現身)이라고 한다면, 이명박은 박정희의 분신(分身)인 것이다.

 

[사진 자료: 연합뉴스(좌), 2007년 대통령 선거 공보물(우)]

 

현재 시점에서 보면 박정희와 이명박 사이에는 박근혜가 있고, 박정희의 한일협정 날치기와 이명박의 한미FTA 날치기가 반복되듯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데자뷰가 일어나는 지점도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07년에 BBK 실소유주 논란이 있었고, 또다시 이번에 정수장학회(박정희의 '正'과 육영수의 '修'를 따서 지은 이름) 실소유주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2007년에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올해 12월 19일에도 18대 대선이 있다. 5년 전에도 한 사람만 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BBK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알고 있었고, 2012년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수장학회의 실소유주가 누군지 알고 있지만 단 한 사람만 그것을 부인하고 있다. BBK나 정수장학회는 둘 다 엄청난 금액의 돈과 연루된 사안이고, 이것들의 실소유주는 둘 다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며, 그들은 끝까지 이 문제를 외면한다. 5년의 시차를 두고 대상의 이름과 실소유주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비슷한 사건이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하는 짓이 이렇게 다 비슷할까? 아마도 이완용이 다시 살아와도 기본적인 행태는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다. 대한민국에서 이와 같은 문제들은 절대로 과거완료형이 아니라 명백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이완용과 박정희와 이명박, 역사는 반복된다

 

익히 알고 있다시피, 대표적인 친일파들의 후손은 대한민국 사회 각계에 포진해 대를 이어 기득권을 이어가고 있는데 반해,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의 후손은 대부분 극심한 가난 속에서 비참하게 살아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일제로부터 귀족 작위와 은사금, 은사 토지를 하사받은 매국 친일파와 중추원 참의를 지낸 친일파의 후손들은 교육재단 이사장, 대학 총장, 대법원 판사, 고위 공무원, 대기업 회장 등 학계, 경제계, 관료, 문화예술 분야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가능성이 많다. 매국노의 상징인 이완용의 친척 역시 서울대학교 총장을 맡기도 했으며, 친일파의 후손들은 선대가 남겨준 (일제로부터 받은) 엄청난 유산과 근대적 교육 등을 발판으로 사회 각계의 유리한 지점을 차지했고, 탄압 속에서 가난이 되물림된 독립운동가들의 후손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산 것이다. 결국, 친일파의 후손은 3대 이상 떵떵거리며 현재까지도 상류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3대 이상 절망적으로 살아가게 됐다.

 

잘못된 역사가 반복되는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하고 그 후손들이 친일의 혜택을 아무 거리낌없이 누리는 것을 본 인간들 중에 분명히 엉터리 한일협정의 기여자들이 있을 것이다. 국익을 위한 게 아니라 단지 정권을 위해 마련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아직도 여전히 유효한 것을 본 이들 중에 분명히 이번에 한일군사협정을 추진하는 데에 참여한 인간들이 있을 것이다. 이기적인 출세지향 기회주의자인 이완용의 성공은 그 아류들을 이 땅에 무수히 만들어냈을 테고, 어쩌면 박정희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이명박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리고 이 시점에서 당장 떠오르는 인물이 하나 있다. 전두환. 반란군의 수괴가 2012년 6월 8일에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사열을 했다는 사실이 다시금 떠오른다. 살인마이자 군사독재의 우두머리를 보고, 과연 사관생도들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렇게, 역사는 반복된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에 이어서, 아버지 박정희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박근혜가 이 나라의 차기 대통령이 되고자 하고 있다.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답은 이미 나와있다. 최소한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우리들에게 있다면 말이다. 부디 역사로부터 전혀 배울 줄을 모르는 구제불능이 아니길..

 

출처 :http://v.daum.net/link/31069920?&CT=MY_REC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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