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3
0
조회 175
2012.06.28 20:51
싸움 안 하며 사는 건 힘들다. 그리고 싸움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싸우고 난 후 친해진 경우도 종종 있는 걸 보면 싸우지 말라는 말만 하기 어렵다. 홧김에 싸울 수 있고 감정을 도저히 절제하지 못할 경우 살인까지 갈 수도 있다. 개인 역량의 문제다.
싸움의 정석 하니까 영화 생각이 난다. 유선에서 수십번은 틀어 준 것 같은 영화인데 한 고등학생이 싸움의 전설을 만나 비법을 전수 받고 학교 내 1진들을 제압하는 영화다. 현실과 맞지 않는 허구다. 치고 받는 싸움에서 이기는 법 그 걸 말하려는 게 아니란 소리다.
싸울 수도 있다는 전제하에 싸우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싸움의 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영화는 싸움에는 정석이 없다고 한다. 무조건 이기는 방식이 싸움의 정석이라며 비겁한 것이 무슨 상관이냐는 대사가 있다.
그럴까?
맞는 말이다. 막 싸움에는 정석 같은 건 없다. 비겁이고 뭐고를 따질 겨를도 없고 안 맞아야 때릴 수 있는 것이다. 한눈 팔면 상처를 당한다. 하여 급소든 무기든 닥치는 대로 휘둘러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정석이라면 정석이다.
그런데 친분을 가진 사이의 싸움이라면 어떨까?
가령 아내라든지 친구라든지 부모형제라든지 친구의 친구라든지 어떤 끈이든 연결되어 있는 사이의 싸움도 마찬가지로 비겁이고 뭐고를 따질 필요 없이 생존적 승부에 연연해야 맞을까?
아니다. 사소한 친분의 고리라도 있는 사이의 싸움에 비겁은 금기다. 정정당당한 싸움은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지만 비겁한 싸움은 이별과 원한 복수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사소한 친분의 고리를 가진 사이의 금기는 지난일을 들추는 것과 신체적 또는 정신적 치부 등을 들추는 것과 누군가와 상대를 비교하는 것과 공을 내 세워 상대를 비하하는 것과 모욕하는 것이다.
사실 관계만 따지면 된다. 그 이상을 넘어 선 싸움은 비겁 그 자체다. 더더욱 해선 안되는 짓 중 하나는 이별을 목적한 싸움이다. 어차피 서로가 생각의 벽을 넘지 못하면 이별은 예고된 수순이다. 그런데 굳이 원한 복수를 담을 필요가 있을까?
싸움은 고쳐서 담으려는 마음으로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러므로 버리자가 아니라 피 터지게 부딪혀도 같이 가자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거다.
당신 그래 왔는가?
늘 그 주둥아리들로 사라져라를 외치는 꼴을 가만 보고 있을 수 없었다. 그게 이유다. 최소한 고쳐서 변화 시켜서 같이 가자는 마음의 싸움이라면 참견도 안한다.
제거 대상을 정하고 제거를 목적하는 비겁한 싸움질은 하지 않길 바랐다. 손가락이 향한 그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나아질 것을 확신하는가?
그런 마음이 곧 우물에 갇혀 개굴 거리는 꼴과 다르지 않다. 버리고자 하는 싸움 그 것을 멈추란 소리다. 끌어 안기 위해 싸움을 택한다면 당신의 싸움이 곧 정의가 된다.
헤어질 마음이면 내 입 내 손을 더럽힐 필요가 없다. 헤어지지 않기 위해 싸우는 것이 이 세상이 반드시 가져야 할 싸움의 정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