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3
0
조회 138
2012.06.26 10:12
금권의 부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SBS드라마다.
나라 경제와 권력을 쥐고 흔드는 장인과 대권에 도전하는 사위의 금권 대결이 법을 우롱하는 내용이다.
평범한 형사의 가정에 찾아 온 비극 부잣집 딸 권력가의 아내가 연예인과 불륜의 드라이브 중 여학생을 치게 된다. 여학생은 아직 죽지 않았다. 이를 알게 된 연예인은 후환을 두려워하며 고의로 여러차례 여학생을 밟고 도망 간다. 겨우 목숨이 붙은 채 병원으로 이송된 여학생 회복이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지만 이 번에는 권력가의 금품 유혹에 넘어간 형사 친구 의사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딸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과정에서 아내는 정신병으로 인해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우여곡절 끝에 범인을 알아 내지만 금권과 권력의 막강한 힘에 조롱 당하는 형사의 모습이 애처롭다. 권력가는 온갖 비겁한 방법을 동원해 사건을 조작하고 오히려 선거에 이용한다.
금권과 권력에게 조롱 당하는 건 형사만이 아니다. 검찰 전직 대법관 세상의 양심을 지켜야 할 권력들이 금과 권력의 싸움에 편승해 조작에 가담하고 있다.
이 드라마를 보는 느낌은 사실을 밝히는 일은 어렵고 고단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확인 되지 않은 사실을 두고 의견을 갖는다. 심증에 의한 판단을 가지며 한 번 가지게 된 판단은 사실의 구체적 실체를 보기 전에 확신으로 작용한다. 사실이 밝혀져도 한 번 가지게 된 판단은 쉽게 떨치지 못하며 의구심이 되어 남는다.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도 이런 일은 경우가 다를 뿐 비일비재하다. 노무현님의 경우도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한명숙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유명한 사람들의 억울함은 비교적 세상에 잘 알려지고 위로받기 쉽다. 물론 유명인의 억울함도 사실을 밝히는 과정은 어렵고 고단한 건 마찬가지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의 억울함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세간의 관심도 받지 못한 사건이 태반이 넘는다. 간혹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되더라도 양분된 의견에 따라 고통을 겪게 되며 "추적자"처럼 거대한 권력 인지도 높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된 사건일 경우 사실 여부와 상관 없는 여론 재판의 고통을 겪는다.
진실을 밝히는 일은 검증이 우선이다. 무죄추정의 원칙 또한 검증에 의해 죄를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서 밝혀진 사실이 아닐 경우 심증에 의한 판단은 위험하다는 것을 경고하는 법 조항이다.
깨어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건 사람의 치부를 조롱하는 삶은 분명 아닐 것이다. 그런데 세상은 치부를 드러내 조롱하기를 좋아하고 사실을 애매하게 알고 있는 친분자의 말에 현혹되어 동조하며 사실화 시키는 장난질을 즐기고 있다.
여론이 모두 옳을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체로 여론을 믿는다. 잘못된 사실을 여론이 확신 할 때 피해자는 두 번의 고충을 겪는다. 진실 위의 여론은 심각한 사회 문제 중 하나다. 조중동을 그토록 미워하는 이유다.
시어머니 보며 배운 매운 시집살이를 며느리에게 하지 않으려면 깨어 있는 건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자면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 사안을 바라보는 심성을 가져야 한다. 한 사람의 억울함쯤 아무렇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게 아니라면 한 사람의 억울함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하고 혹여 나로 인해 한 사람이 억울한 지경에 이르게 되면 사실을 명확하게 밝혀 내는 것이 사람의 도리이고 사실을 밝혀 내지 못했다면 사건을 묻는 것이 아니라 밝히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것이 도리이다.
혹여 오인된 사실이거나 잘못 안 사실이거나 더 나아가 확인 된 사실일 지라도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난 사실이거나 그 사실로 인해 한 사람의 인격이 심각하게 훼손 될 것을 우려하고 조심하고 신중하는 것이 깨어 있는 시민의식이다.
가볍게 툭 뱉은 말에 개구리는 맞았고 중상을 입는다. 재미로 장난으로 홧김에 이러한 행동을 가진 이가 당신의 친구라면 그를 옹호하기에 앞 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 교화하는 것이 깨어 있는 시민의 바른 양심이다.
사건의 경중은 지켜 보는 사람들 판단의 몫이지만 사건 당사자의 입장에 서면 고달픔이 같다. 사람 경중을 따져 사건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거나 인용하는 행위 모두는 사람사는 세상에서 있어서는 안 될 심각한 잘못이다.
더 나아가는 일이 의미가 없어졌다. 내가 바라 본 사람사는 세상의 양심이 이 것이 아니기만을 바랄뿐이다. 추적자처럼 끈질기게 사실을 밝힐 이유도 없다. 그러므로 어느 이의 억울함은 묻혀질 것이고 그로 인해 이 세상은 평화를 찾은 듯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죄를 감춘 것에 지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