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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09:06
‘20-50 클럽’, 조선일보가 만든 신조어가 유행어로… | |||||||||||||||||||||||||||||||||||||||||||||
[기자칼럼] 뒤틀린 열등감과 국가주의의 결합, ‘5천만둥이’의 불편한 진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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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야구용어’인 줄 알았다. 야구에는 비슷한 ‘클럽’이 있다. ‘20-20 클럽’은 한 시즌 동안 홈런 20개, 도루 20개를 기록한 선수를 뜻한다. 잘 치고 잘 뛰는 선수라는 이야기다. 1989년 당시 김성한(해태) 선수가 처음 가입한 이래, 90년대에는 모두 21명의 ‘20-20 클러버’가 나왔다. 한 해당 2명꼴이었다. 1996년에는 박재홍(현 SK) 선수가, 이듬해에는 이종범(당시 해태) 선수가 ‘30-30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특별한 상이 주어지는 건 아니지만, 이 같은 ‘호타준족(好打俊足)’이 흔한 건 아니어서 대개 명예로운 별칭으로 꼽힌다. 알고 보니 ‘20-50 클럽’은 야구용어가 아니었다. 조선일보의 ‘작품’이었다. 조선일보는 약 한달 전인 5월28일자 1면 <한국, 세계 7번째 ‘20-50 클럽’ 오른다>에서 “1인당 소득 2만달러(20K), 인구 5000만명(50M)을 동시에 충족하는 나라들”로 ‘20-50 클럽’을 정의했다. “소득 2만달러는 선진국 문턱으로 진입하는 소득 기준, 인구 5000만명은 인구 강국과 소국을 나누는 기준으로 통용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조선은 “세계에서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와 인구 5000만명 이상을 달성한 국가는 지금까지 단 6개국뿐”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런데 OECD나 APEC, G20은 들어 봤어도 ‘20-50 클럽’은 알려지지 않은 개념인 터라, 이쯤 되면 그 ‘실체’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조선일보는 “본지와 LG경제연구원이 공동으로 전 세계 인구와 소득 동향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의 ‘20-50 클럽’ 가입은 1996년 영국 이후 세계에서 처음 나온 사례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소개했다. 고개가 갸우뚱 해지는 대목이다. 굳이 직접 힘을 들여 조사를 했다는 건, 전 세계 어느 누구도 관련 통계를 내지 않고 있다는 뜻 아닌가. ‘우리만 아는 통계’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특파원인 다니엘 튜더(D. Tudor) 기자는 미디어오늘과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20-50 클럽’은 이전까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경제 성장 면에서 훌륭한 성과를 이룬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세계가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리는 만큼, 한국 언론들이 이를 내세우면서 세계의 주목을 끌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점에서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주식 트레이더(Equity trader)와 한 국내 자산운용사의 연구원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전문가’다.
그렇다면 조선일보는 무슨 근거에서 ‘20-50 클럽’에 의미를 부여한 걸까. 이 신문은 앞선 기사에서 “‘20-50 클럽’ 가입은 우리가 확실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했다는 신호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고 전했다. 5월30일자 6면에서는 “‘20-50 클럽’은 서방 선진국 모임인 G7 회원국과 거의 겹친다”고, 같은 면 다른 기사에선 “국내보다 해외의 평가가 후한 것이 특이하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어 ‘20-50 클럽’을 주제로 사흘 동안 모두 10건의 기획 기사를 쏟아냈다. 같은 기간 동아일보가 사설(29일자)에서 이를 언급한 것을 제외하면 유일하다. 조선일보가 만들어 낸 ‘작품’이 널리 퍼지게 된 특별한 계기도 물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파괴됐지만, 60년이 지난 오늘날 인구가 5000만이 넘고 1인당 GDP가 2만달러가 넘는 ‘20-50 클럽’에 가입한 세계 일곱 번째 나라가 됐다”고 언급했다. 이후 김황식 국무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료들의 공식 석상에서, 또 신문지상의 주요 필자들에 의해 ‘20-50 클럽’은 널리 쓰이는 말이 됐다. 대부분의 언론도 결국 인구 5000만명 돌파 시점이던 지난 23일 무렵, 이 신조어를 준용했음은 물론이다.
일례로 이른바 ‘5천만둥이’가 태어나던 지난 23일, KBS <뉴스9>는 톱뉴스로 <인구 5천만↑…세계 7번째 ‘20-50 클럽’ 가입>을 내보내며 “세계에서 7번째”라고 보도했다. “피식민지 경험국 가운데는 최초의 일”이라는 ‘선전’도 잊지 않았다. SBS도 같은 날 <8시뉴스> 다섯 번째 리포트에서 ‘20-50 클럽’ 가입을 알렸다. MBC는 KBS와 마찬가지로 이 소식을 <뉴스데스크> 톱뉴스로 보도했다. <인구 5천만명 돌파‥생산인구 감소 대비책 시급>이라는 제목에서 보듯, 관점은 조금 달랐지만 ‘20-50 클럽’을 언급한 건 마찬가지였다. ‘20-50 클럽’이라는 신조어가 이처럼 널리 퍼지는 광경은 ‘국격’이라는 단어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이 단어는 ‘국익’과 한 묶음을 이루며 이명박 정부에서 난데없는 홍수를 이뤘다. 그런데 용례를 보면, 국격은 대개 ‘외부의 시선’을 전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G20정상회의를 유치해 국격이 올라갔다거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로 국격의 상승을 해외에 널리 알렸다는 식이다. 때때로 국격은 ‘국격에 맞는 노사문화’나 ‘국격에 걸맞은 시민의식’ 등의 예에서 보듯, 바깥(전 세계)의 시선을 빌어 내부를 단속하는 목적으로 쓰이기도 했다. 언어의 배반이다.
이는 곧 ‘강요된 자부심’에 다름 아니다. 올해 G20 정상회의가 어디에서 열리는지, 또 우리가 이를 개최한 나라의 ‘국격’을 한 단계 높게 평가하는지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부러 자부심을 갖도록 강요 또는 고취하는 건, 오히려 뿌리 깊은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 이미 충분히 높이 평가받고 있는 ‘과거의 열등생’이 주위에 “나 이만큼 잘 하고 있다”고 애써 핏대를 세우는 꼴이랄까. 각종 국제 행사나 이벤트 유치, 한국 스포츠 스타들의 해외무대 활약상, 온갖 ‘한국계’라는 수식어가 붙은 인물들에 대한 과장된 보도도 비슷한 맥락이다. 다니엘 기자는 “추측하건데, 누군가 ‘국가적 자부심(national pride)’을 고취하기 위해 이 개념(‘20-50 클럽’)을 불쑥 꺼내든 것 같다”면서 “한국 언론이 G20정상회의나 ‘K-Pop’의 의미를 과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짚었다. 한 일본인 트위터 이용자(@wingstrans)는 조선일보의 기사를 링크하면서 “한국 언론은 자국의 성공을 ‘선망·질투’라는 말없이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라고 꼬집었다. 23일자 12면에 실린 해당 기사의 제목은 <아시아 국가들, 한국 20-50클럽 가입에 부러운 시선>이었다. 국가주의의 ‘혐의’마저 묻어나는 대목이다.
시간이 지나면 ‘20-50 클럽’을 둘러싼 과장된 언어들은 조용히 잊혀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 바탕에 깔린 ‘뒤틀린 자화상’은 언제든 다른 형태로 발현될 수 있다. 자부심은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다니엘 기자는 “한국의 정치인들과 언론은 이제 눈에 보이는 ‘숫자’보다는 ‘(삶의) 질’에 신경을 써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내실을 다지라는 이야기다. 비정규직·해고노동자들이 거리로 쫓겨나고 중소상공인·중소기업·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이 때, 정부와 유력 보수 언론의 ‘이심전심’이 내내 불편한 이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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