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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1:39
'향수를 불러 일으킬 추억'
고향에 대한 기억은 삶의 여정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좋은 기억 나쁜 기억 떠나야만 했던 이유들 다양하고 복잡한 삶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저마다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다시는 되돌아보고 싶지 않은 아픈 기억이 있어도 나이가 들수록 고향에 대한 향수가 생긴다.
고향은 가족, 친구, 이웃이다. 태어나 걸음마 말 생존을 배우고 관계를 가지는 곳이다. 기억은 사람과의 관계를 유지해 준 환경을 본능처럼 저장해 둔다. 그 것을 꺼내 보며 그리워 하는 것이 향수다.
정서에 대한 말을 하고 싶다.
정서가 가지는 강한 힘이 필요해 보여서다. 낭만이 사라지는 시대 배려와 감사가 잇속에 국한되는 세상, 관계의 획일화에 따라서만 친분을 결정하는 세상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같다. 계획된 관계 속에서만 배려와 감사가 존재한다.
열어 둔 문에 정교한 검색기가 있어서 솎아 내고 혹 들어 온 손님이라도 수시로 감시하는 체계가 있어 솎아 낸다. 쌀에 겨를 고르고 돌을 고르고 물을 맞춰 밥을 지으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의 관계는 밥을 짓는 것과 다르다.
노무현의 상생과 문재인의 상생은 함께 어울리자는 것이다.
사람사는 세상의 상생은 무엇일까?
몇 놈만 사라지면 밝아지는 세상이다. 몇 놈은 소수이므로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들만 퇴출되면 이 세상은 토론과 다정이 넘쳐 나는 세상이 될 것을 믿는 자들이 있다. 내가 왜 저들에 의해 몇 놈 속에 끼워져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 놈은 어느 놈과 자폭을 하려는 건지는 알 수 있다.
몇 놈을 정해 죽도록 패고 시비를 걸고 음해를 하고 그렇게 제거를 목적 하며 스스로 몇 놈 속에 끼인 자의 열정은 이 세상을 변화 시키지 못했다. 정의를 자처한 한 놈이 도태를 말하고 도태를 수긍하는 자들에게서 쉰 냄새가 난다.
미친짓 안달을 보면서 양심을 속여 온 정의를 나무라면 진정성을 알고 있다는 수 많은 동지들의 반발이 창칼이 되어 찔러 온다. 이 세상의 정의가 사실이나 도덕이 아니라는 반증을 보여 온 사람들 작태를 보며 그런 작태를 눈 감고 흘려 넘겨 두길 바라는 사람들 교양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낀다.
작은 제 문제들은 크게 눈덩이처럼 부풀리고 큰 남의 문제는 슬쩍 감추 두자는 속내가 검다. 몇 놈 사라지면 이 세상이 정말 밝아 지는가?
당신만 반듯한 마음으로 고쳐 먹으면 이 세상이 밝아진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나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킬 추억들 속에서 당신은 미친 망나니쯤에 머물러 있고 망나니의 진정성을 믿는 사람들에게 나는 미친 망나니다. 공평하지 않은가?
당신과 당신들과 나의 양심이 달랐다. 그래 그 것도 공평하다.
하여 불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타인에게 어떤 향수가 되어 있어야 할 지 그 것을 말해 온 것이다.
회귀 그 것을 믿는다면 더 조심해야 맞는 것이다. 마구잡이로 사람을 꺼내어 도륙하는 것이 이 세상의 정서로 남아 있는한 이 곳은 고향의 지위를 갖지 못하게 된다. 두렵고 무서워해야 맞다. 사람들이 이 세상을 고향으로 여길 정서가 지금 없다는 사실이 비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