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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2 08:09
아들 강이가 요즘 한참 까불고 논다.
짱구의 엉덩이 춤, 국적 없는 언어, 가사 틀린 애국가, 군가를 부르고 행동이 격해졌다. 아들은 자신이 모든 걸 다 안다고 믿는다. 틀린 가사를 알려 주면 아니라며 펄쩍펄쩍 뛰며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른다면서 삐치기 일수다.
아들의 변명은 선생님이 코끼리 기사 아저씨가 가르쳐 줬다는 것에 있다. 아빠는 신뢰하지 않고 선생님이나 코끼리 기사를 신뢰하는 아들이 한편 얄밉다. 그 보다 틀린 것을 지적해 주는 아빠를 믿지 않고 자신이 잘못 알아 들은 것을 믿으며 아빠와 척을 지는 아들이 괘씸하다.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아들은 아들대로 소리를 하고 나는 나대로 소리를 한다. 심판이 등장한다. 엄마다.
'엄마 아빠가 이렇게 불러야 하는데 저렇게 불러요. 강이가 맞죠.' 행여 이 순간 엄마가 아빠편을 들면 강이는 삐쳐서 할머니 방으로 숨는다. 엄마는 아들과 아빠의 전쟁에 있어 곤란한 입장이다.
그러나 내게는 아내를 협박할 무기가 있다.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협박을 한다.
'나 바람핀다.'
화들짝 아내는 아빠가 맞다며 내 편으로 돌아선다. 상심한 아들은 결국 할머니 방으로 가고 아빠는 아무 것도 모르면서를 남발한다. 그리고 저 번에도 그러더니 계속 그런다며 아빠도 밉고 엄마도 밉다고 말한다.
아들을 골려 먹는 시간이 끝났다. 엄마가 강아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면 이 녀석 쏜살 같이 달려와 제 존재 가치를 확인한다.
'강이가 최고지' 엄마가 고개를 끄덕 거리며 '응'하고 대답하면 습관처럼 손이 스르르 어미 젖으로 가는 녀석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스르르 엄마에게 안긴다.
그래도 내 아들은 차분히 설명해 주면 알아 듣긴 한다. 똥고집은 없는 편이다. 다만 엄마가 제 편을 들어 주지 않을 때만 전후 살피지 않으며 토라질 뿐이다.
어제였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다른 여아가 마구 땡깡을 부린다. 할머니 엄마 아빠 앞에서 막무가내로 떼 쓰는 애를 보며 강이가 참 고맙게 자라 주었다는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무빙워크를 타고 주차장으로 올라 가는 길에 강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강이는 대화하면 다 이해하지 안 조르지 아까도 요구르트 엄마가 안된다고 하니까 강이가 수긍했지 그래서 강이가 최고야'
'응 아빠 강이는 그렇지 착하지' 특유의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애들은 까분다.
그렇다면 어른들은 까부는 걸까?
어른도 까분다. 그걸 애들이 까부는 것처럼 여겨 준다. 순수하다고하고 진정성을 안다며 사실과 진실 따윈 안중에 없는 맹목주의자들을 본다. 한마디로 그들도 잘 까분다.
그들 안중엔 오프의 만남과 정파성이나 집단성에 기인된 교류가 진정성이다. 사건을 보는 안목이 일제 시대 순사나리의 시선과 같다. 그런 그들이 외치는 정의란? 까부는 정의다.
친일 매국노 짓이 서슴 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빨갱이의 인민재판이 성행하고 있다.
역시 이들은 잘 까불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