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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 18:06
처신을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마찬가지로 처세를 잘 하는 사람이 있다.
별 차이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차이는 뭘까?
난 모른다. 처신과 처세의 차이를 그렇지만 뭔가 다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암울한 세상을 말하고 있다. 빛을 잃은 어둠의 세상 모든 것이 망가졌고 회복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것처럼 말하며 수선을 떤다. 반드시 내 세워야 할 사람이 있고 반드시 이겨야 할 집단이 있다. 준비된 것이 없는데 승리를 목적하는 건 이율배반이다.
그들이 말해 온 희망은 나에게 절망이다. 그가 세상의 온갖 비리를 말하는데 그 비리들은 내 삶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그들의 절망이 어쩌면 나의 희망일지 모른다. 역행 어쩌면 그 운명인 것 같다. 거슬러야하고 부대껴야하고 망가뜨려야만 하는 운명을 느끼며 나는 스스로 잘난체를 떨어 댈 것이다. 지금 이 생각은 앞으로 내가 가져야 할 처신에 대한 것이다.
나의 태도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 동물적 본능은 그의 심보를 감지하고 그들은 나의 우회전을 기대하며 쨈을 던진다. 그럼 이전의 나는 무조건 좌회전이었을까?
현상을 보는 눈이 저마다 다 다르다지만 양심 또한 입장에 따라 다르다지만 정말 아닌 걸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 세상이 텃다. 사정을 아는가? 나는 늘 이 질문을 던졌다. 그 것이 옳은가? 정말 무엇이 원칙이라는 것인지 천길 물속으로 숨어 드는 원칙을 보며 오열도 아까워졌다.
히히덕 노닥거리고 맞장구를 치지 않으면 당신과 나는 친구가 아니다.
아니지 히히덕 노닥거리고 맞장구 치지 않았어도 은연 중 생겨 난 친구들은 있다. 그들도 주류와 친하다. 주류가 올바라서 친한 것이 아니고 껴 안고 나아가야 할 관계의 덫 때문에 친한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처세로 본다.
속으로 욕을 하면서 겉으로 만날 때 웃으며 아무 일 아닌듯 만나 어울리는 사이 난 그런 걸 못한다. 내 얼굴은 좋은 사람에겐 웃음을 짓고 내 입은 좋은 사람에게 조잘 거리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앞에 설 때 처음이고 낯선 사람 앞에 설 때 표정도 굳고 말도 없다.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아무런 말 한마디 하지 않는 게 첫 만남의 나다.
그런 내 모습을 이해해 준 사람들이 제법있다. 3년 동안 아무도 사귀지 않은 건 아닌 걸 보면 그 사람들이 희망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해 본다. 드러내지 않는 부딪히지 않는 사람들의 성실한 수고 그 건 분명 존중하고 깊게 사야 할 본보기가 맞다.
요란한 사람들이 세상 앞에 설 때 요란하지 않은 사람들은 수줍음이 아니라 거센 그들의 횡포가 두려워 숨을 멈춘다. 그러나 본다. 그들이 참는 건 정의나 사람의 도리를 몰라서가 아니다. 목적이 있어서다.
그런데 한가지 아쉽다. 좋은 본보기가 아니면 사람들은 절대로 감동하지 않는다는 걸 아직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노무현이기 때문에 될 수 있었던 건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이어서 하지 못했던 건 권력을 이용한 개혁이었다.
이 것만큼은 노무현이 꼭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가 끝까지 버티며 살아 주는 것.
이 요란한 사람들의 비틀어진 행보를 보며 '그건 아니지요.' 나즈막한 한마디로 방향을 일러 주지 못하는 그가 야속하다. 누구 누구 누구인데 누구는 거렁뱅이요. 한량이다. 태양을 향한 이치들의 해바라기가 곧 파멸임이 드러 날 때 땅을 치며 이런 말들이 다시 오갈 것이다.
요란하게 드러 낸 자신들의 치부가 파멸을 이끈 것이 아니라 속물의 국민들이 또 속았다는 탓질과 낮은 투표율이 패배의 원인이라는 변명으로 자신들이 파멸을 이끈 원흉임을 묻으려 할 것이다.
오히려 구걸을 해라 그러면 겨우라도 이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