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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 14:01
강토는 일전에도 소개한 적 있는 전에 기르던 애완견이다.
미니핀 털이 짧아서 안 빠지는 줄 알았더니 다른 개보다 털이 더 잘 빠진다. 개는 이쁘고 말 잘 듣는데 세 가지 단점이 있었다. 하나는 털이 잘 빠진다는 것 다른 하나는 똥 오줌을 못 가린다는 것 나머지 하나는 주인이 없으면 하루 종일 짖는다는 것
누나네 조카들이 개를 키우고 싶다며 덜컹 분양을 받은 강아지 자기 집에서 못 기른다며 우리 집에 던져 놓고 가 버렸다. 잘 키워보고 싶어서 나름 애를 썼는데 부모님이 영 싫어 하신다.
그래도 지 챙겨 주는 사람은 알아서 부모님만 등장하면 내게 달려 들어 숨는다. 개가 지금 내 아들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생명을 가진 친분은 안기고 안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하는건가 보다.
난 강토를 끝까지 키우지 못했다. 나 모르는 때 아버지께서 다른 사람에게 줬다. 그렇게 강토를 떠나 보내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
같이 살아 보려는 마음에 때리기도하고 가두기도하고 몹쓸 짓 참 많이 했는데 특히 매번 베란다 샤시틈에 오줌을 누는 일로는 엄청 심하게 맞기도 했는데 강토는 끝까지 일관성 있게 그 곳에 오줌을 눴다. 똥은 아무데나 싸고 다녔지만 그 건 그래도 봐줄만 했다. 창틈에 싼 오줌은 제거하는 게 쉽지가 않아서 화가 머리 끝까지 뻗치는 일이었으니까.
어차피 헤어질 사이였다면 때리지 말고 잘 해 줄껄.... 못내 그게 아쉬웠다.
'아버지 누구 집에 갔다 주셨는데요. 한 번 가 보고 사료랑 병원비랑 좀 주고 오게요.'
미친놈 대번에 내게 던진 아버지의 일침이다.
어딜가서 살든 강토가 매맞지 않고 못 된 버릇 고쳐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꽤 오래해 왔다. 오늘 문뜩 강토 생각이 난다. 지금은 아마 많이 늙어 있거나 죽었을지 모른다.
책임지지 못한 한 생명에 대한 미안함 어쩔 수 없었다는 내 위로는 비겁했고 그런 비겁함을 버리지 못하며 살도록 되어 있는 게 세상이다.
개도 맞아서 못 고치는 버릇이 있는데 사람이 맞는다고 제 버릇 개 줄 수 있을까?
옛말은 옳다. 개 버릇은 남 못 준다. 주류의 오류는 응원하는 이가 많으니 지가 옳다고 믿는 것에 있다. 허구인 것을 깨달을 땐 자신들이 얼마나 값싼 신의에 몸부림치고 있는지를 알아 낼 때 겨우 주류에서 벗어나 관계에 들어 설 수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이 참 많다.
껄껄껄 웃고 말아야 할 일 그쯤이다.
주류의 과시는 그들의 동조는 제 살의 값을 떨어뜨리는 오만방자함이다. 나는 재밌게 그들을 즐긴다. 나를 알리려는 게 아니라 당신들을 즐기는 거라는 사실을 몰라 찌르고 괴롭혀 오지만 나는 그런 것들이 즐겁다.
1Vs 20만의 싸움 해 볼만 하지 않은가?
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