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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논평..무동, 머야, 3人의 글!

댓글 0 추천 5 리트윗 0 조회 125 2012.06.21 07:51

정리는 해야지. 글색도 다르고 내용도 부분이 다른 글. 그나마 시간을 내어서 읽었다. 글에는 절대 지울수 없는 치명적 지문이 있다. 아는 사람은 안다. 조선과 한계레의 사설은 서두만 읽어도 결론을 유추할 수 있는 이유다. 일관성과 가치와 신념이 담겨있다. 그것은 그의 정신이 발현된 것이다. 그의 몸과 마음이 녹아있는 것이 글이다. 순간적 변덕의 표현과 글은 다르다. 

 

어떤 사안이 벌어지고 난 후, 진행되는 과정을 잘 관찰하면 성향과 평상시의 철학을 확인할 수 있다. 다수가 진행되는 일련의 방향성을 가진다. 그리고 기득권자가 승리하고, 권력자가 항상 승리한다. 승리한 자와 기득권자의 언어는 어렵고 난해하다. 약자의 주장은 단순명료하다. 단순명료한 주장에 대한 해명도 못한다. 이것은 지금까지 쭉 진행된 사건의 여지없는 결과였다. 우유부단함도 있고, 편승하여 용기를 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내가 비판할 내용은 아니다.


 

무동님과 머야님의 글은 관점이 다르다. 맥락을 보면 그들의 내면을 관찰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였다. 무동님의 기본적 인식은 고민하고 고뇌한 흔적이 보인다. 노무현 광장의 취지도 잘 설명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니다. 그의 기본적 철학이다. 굳이 제목을 붙인다면 인간적 관심이 증폭되어 있다. 앞으로 반복될 여지에 대한 전망도 훌륭했다.

머야님의 글은 법치적 경향이 강하다. 원칙을 지키라는 것이다. 그 누구도 법적 잣대로 재단했다면 앞으로도 지켜야 한다는 뜻이다. 그의 일관성으로 볼 때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규칙은 뭔가? 누군가는 재량권이라고 한다. 규칙에 대한 재량권은 법적 용어가 아니다. 범죄자에게 대한 재량은 정상참작의 상황만 존재한다. 규칙은 명확한 기준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오차범위 이내다. 16일부터 벌어진 사안에 명확한 기준은 무엇인가 묻고있다. 법적 용어는 한자로 쓰고, 철학적 용어는 독일어가 유력한 이유다. 언어의 선택에도 이런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3人님 글도 읽었다. 그나마 다른 시선의 글도 읽어줄 필요가 있었다. 글쎄다. 추천수에 비하면 감동이 없었다. 단순한 공학적 보여주기 위한 글이란 것을 느꼈다. 음주운전 많이하니까 음주운전 처벌하자는 것이다. 음주운전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고민과 노무현의 철학이 전혀 없었다. 오세훈의 노숙자는 격리하는 정책처럼 보였다. 인종편견처럼 느껴졌다. 그들에게 관심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불편하니까 정리하자. 산자의 자리에 죽은자의 말은 소용도 없고 영혼도 없었다. 노무현의 정신은 고사하고 이명박을 봤다.

위의 세 사람의 글을 읽었지만 내용은 천양지차다.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또, 정파적으로 왜곡된 칼질이라 하지 않을까. 아니면 "개방, 공유, 참여"의 어느 부분일까. 글의 내용과 철학이 담긴 글이 이러할진데. 그 정신까지 점검하는 것은 무의미하고 희망도 없다고 생각했다. 조회수와 추천수를 비교해도 내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의문이 들었다. 완벽한 이기심의 공동정범이다. 언어의 성찬이었다. 누가 생각났을까. 노무현은 없었고, 이명박이 떠오르고 박근혜도 떠오른다. 인간의 이기심은 절대 고칠수 없는 불치병이었다.

대신문관..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이야기야. 중세에 스페인의 세비야에 예수가 재림하였지.부활이야. 마녀사냥과 이단에 대한 종교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 예수가 재림하여 나타났어. 목자들의 왕이자 죽음으로 인간의 죄를 사한 예수가 세비야에서 어떤 경우를 당했을까.세비야의 대신문관이자 종교재판의 책임자는 예수의 천오백년 후의 제자인 토르케마다였어. 기독교의 원본인 예수와 원본을 팔고 사는 대신문관이 맞붙었어. 인간에게 자유를 설파한 예수는 체포되었지. 그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넘어간 죄목과 같았어. 예수는 그의 제자에게 이단으로 몰리는 상황이야.


이젠 교회를 위하여 예수는 필요하지도 않는 존재가 된거야. 자유를 설파한 예수를 두려워한거야. 대신문관은 장작으로 장식된 화형주에 예수를 올린다고 협박을 하지. 예수는 단지 빙그레 웃기만하고. 예수의 제자가 예수를 추방해. 차마 양심이 있었던지 화형주에는 못 올리고, 예수를 추방해버리지. 돌아오지 말라고하며.. 예수는 그렇게 우리들 눈에서 사라진거야. 그의 제자들에게, 그의 교회에서 사라져버리지. 예수의 정신도 그때 함께 사라졌어. 그 자리엔 화려한 교회의 첨탑과 아름다운 예수의 그림만 남았어. 제자들이 예수를 죽인 것이야.

노무현 대통령이 6월 16일 그날 부활했다고 하자고. 그럼 노무현은 어떻게 했을까. 당신들은 생각이나 해봤어.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야. 그의 제자들에게 죽음이나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야. 여기에 어디에 노무현 정신이 있어. 그가 이젠 필요도 없을 것이야. 그도 예수처럼 당하지 않았을까. 박제된 노무현으로 만족하는 상황에서 그의 부활은 그들에게는 오히려 죽음이 된다는 상황이지. 노무현으로 가는 길을 장악하고 그 길에서 통행료로 연명하는 그들은 부활을 절대 바라지 않을거야. 비약이 지나치다고..다들 그렇겠지. 그럼 당신들에게 묻지? 당신들의 노무현은 어디에 있지..


굿바이 노무현,당신은 살아서는 이 세상에 절대 오지 못합니다. 당신은 그대로 그들의 뜻대로 영원하게 박제된 채 남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뜻에 맞게 훌륭하게 복무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더, 굿바이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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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디푸스의눈 k8129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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