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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7 15:13
민초들은 복잡한 건 싫어 한다. 내 삶의 질이 현저히 향상 된다는 제시를 믿는 민심이 몇이나 될까? 사람 하나 바껴서 세상이 달라질 것을 믿는 민심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다수 민심의 향방에 주목한 전략 수립은 진영적 논리가 배제 된 상태에서 발견해야 한다. 현 정권 하에서 사람들 삶이 궁핍해 졌다는 논리나 정권 심판론에 의지된 정권 창출은 국민적 반응을 얻기 어렵다.
공통의 지향점이 무엇인가?
새로운 정치란 또 무엇인가?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제시가 필요하다. 정책은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고 국민 생활을 풍요롭게 해 주는 것이어야 하지만 사회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내의 것이어야 한다.
지금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은 기득권이고 이 기득권은 수십년 이상 유지 되어 온 것이어서 뿌리가 깊다. 빈부의 격차나 불공정 사회를 바로 잡는 게 중요하지만 세상을 건축물로 비유할 때 기초가 부실한 건물의 기둥을 뽑는 일은 와해를 초래할 뿐이다.
첫 삽으로 건축을 완성할 수 없다. 이 논리에 근거한 접근에서 해법을 찾아 가길 바란다. 사람들의 속내는 마찰보다 수용과 포용의 리드를 원한다. 민심의 향방은 시끄러운 것에 있지 않고 안정에 있다. 시끄러운 풍요보다는 부족한 안정을 원한다는 거다.
사회를 세분화해 그룹으로 묶어 보면 노동자, 농민, 자영업, 회사원 몇 갈래의 구분이 가능할 것이다. 그들을 대변할 이익도모에 사회와 나라 발전에 부합할 정책은 결코 쉽지 않다. 정의와 원칙이 나의 삶과 어떤 연관을 가질 것인가 판단해 볼 때 정말이지 아무런 상관이 없다. 공평한 사회에서 성공하는 건 정말 어렵고 어려운 일일 뿐이다.
분배의 헛점 그 것이 존재해야만 벼락부자도 생기고 신분상승도 용이해 진다. 그렇지 않고 모든 것이 공평하고 평등하다면 쥐뿔 개뿔도 아닌 보편적 복지에 의존한 삶의 질이 보장될 뿐이다. 풍요나 남보다 월등한 부의 보장은 어렵다.
깨끗하게 사업해서 부자 된 사람미 몇이나 되고 승진에 목메고 아부 안 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체적인 사회정서를 두고 구태니 잘못이니 운운해야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약간 나쁘게 살아 본 사람이 더 많다. 그 정도쯤은 생존의 당연한 행위로 여기며 산다. 깨끗한척 아무리 해 봐야 제 몸에 똥 한 두 번은 묻히고 살아야 할 인생이었다.
그런 사회를 살고 있는 국민들이다. 그들에게 청렴이나 도덕이나 정의나 평등을 부르짖어 봤자 소귀에 읽어 준 경이다.
야권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떠 받듬에 있다.
있지도 되지도 않을 청렴이나 결백을 내 세워 신인양 떠 받든 정치인의 순백 이미지가 반감의 가장 큰 이유다. 청렴을 가진자의 공통점은 거만이다. 겸손이 드물다. 존중만 받아 봤지 존중하는 걸 모르는 어설픈 정치력으로 겸손하지 못한 정치인을 무수히 보아 왔다.
노무현의 겸손 그 절반만 제대로 알아도 야권은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겸손하지 못한 노무현의 후예들이 정권을 찾지 못한 건 너무도 당연하다. 노무현처럼 행하지 못할 바에 노무현을 등에 업지 않았어야 했다. 노무현만 등에 업고 정작 자신은 노무현처럼 행하지 못한 자들의 실패 그 이면에는 떠받듬이 있었다.
노무현의 후예들은 민심을 모른다. 그들만의 리그가 있을 뿐이고 그로 인해 세상이 온통 자신들을 추앙하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다. 당장 자신들이 달래 줄 당신들을 지지하지 않는 더 많은 국민이 있음을 깨닫고 우리에 갇혀 왕 노릇해 오던 교만을 버릴 때 겨우 방향 하나 건져 낼 수 있을 것이다.
지들끼리면 다 되는 세상 그게 야권이 주구장창 패하는 이유다. 겨우 한 번 먹힌 이벤트 단일화에 여전히 목메며 때 되면 그 짓거리나 구상하는 것이 야권의 전략이다.
이들은 감동은 모르고 투쟁만 안다. 그리고 제 편의 수장은 떠받듬도 모자라 신격화하고 있다. 이를 지켜 보는 자들은 이 모습에 질려 있슴을 명심해야 당신들 이 번 선거에 희망 나부랑이나 가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