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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3 12:34
사람과 짐승의 사이는 얼마나 멀까?
(서프라이즈 / 이기명
/ 2012-06-13)
짐승을 욕하지 말라.
짐승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있었단다. 처음에는 짐승들의 대화가 재미도 있고 신기도 해서 열심히 들었는데 얼마 후 그는 대화를 듣지 않기로 했다. 이유는 하나다. 개들이 하는 소리를 들은 후다. 개가 무슨 소리를 했을까.
개가 분명히 말했다. ‘네 놈들이 개다’ 개들이 인간에게 한 소리다. 개들의 소리를 구체적으로 옮길 수는 없다. 다만 동물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을 포기했다면 충격을 대충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새겨들을만한 소리다. 짐승의 소리를 듣는 초능력이 인간에게 없는 게 얼마나 다행일까.
인간들이 가장 입에 많이 올리는 동물의 이름이 무엇일까. 조사해 봤더니 개라고 했다. 그것도 아주 좋지 않은 감정을 들어낼 때 개를 들먹인다고 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개자식’ ‘개새끼’ ‘개 같은 놈’ ‘개만도 못한 새끼’ ‘개아들’ 등등. 한이 없고 끝이 없다.
개가 이 말을 듣는다면 덤벼들어 물어뜯을 것이다. 혹시 이런 욕설에 자신이 해당되는지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천만에 말씀이다. 자신은 전혀 상관도 없고 해당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기야 자기를 개로 생각하다니 말이 되는가.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고 이것이 인간과 짐승을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믿는다. 때문에 양심을 져버린 인간을 짐승에 비유된다.
이 글을 읽는 분은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길 것이다. 넌 뭐냐 하고 질타하는 분도 계실 것이다. 고백한다. 나도 짐승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자랑스러운 과거도 부끄러운 과거도 있다. 다만 많은 고통을 겪고 극복해 나왔다. 짐승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자부한다.
사람의 길을 걷게 해 준 안내자가 바로 노무현이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사고의 접근은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다. 바로 거기에 출발점을 두게 한 사람이 노무현이다. 그 후부터 행동은 양심의 승리를 위한 노력이었고 살아 있는 날까지 그렇게 살 것이라고 다짐하고 두려움 없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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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파업은 135일이 넘어갔다. 김재철이 다시 34명에 대한 대기발령을 내렸다. 합쳐서 69명이다. 새삼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임기인 2014년까지를 채울 것이라고 장담했다. MBC의 한 기자는 말한다. MBC에 들어서면 피비린내가 진동을 한다고. KBS도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요즘의 방송사는 피의 향연이다. 흡혈귀의 만찬장이다.
마치 정글에서 힘없는 얼룩말을 잡아 날카로운 이빨로 뜯으며 입에 시뻘건 피를 무친 하이에나를 연상시킨다. 수개월 간에 걸친 파업으로 겪을 가족들의 어려움, 그걸 뻔히 알면서도 무릎 꿇지 않는 것은 바로 노조의 양심과 정의다.
22명이 자기 손으로 목숨의 끊은 쌍용차 해고노동자, 아직도 살아남은 자들의 절규는 하늘을 울리지만 응답이 없다. 제주 강정마을에선 오늘도 경찰의 방패에 신부가 몸을 찍히고 80고령의 성직자가 경찰에 잡혀간다.
무엇이 인간을 짐승으로 만드는가.
누군가 정치는 최고의 예술이라고 했다. 예술을 정의하기가 힘들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쉬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보통 상식으로 예술은 아름다움의 추구다. 추한 것까지도 아름답게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이라고 했다.
진 선 미. 참되고 착하고 선량하고 아름다운 것. 이것이 예술이라면 우리의 정치는 이 3가지 중 어느 항목에 해당이 될까. 마치 이 땅에서는 천형과도 같은 빨갱이. 멀쩡한 사람을 빨갱이로 몰아 진흙탕에 쑤셔 박는 인간학대는 변태자들이 추구하는 가학성 아름다움인가.
권력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선량한 국민을 감시하고 괴롭히고 급기야 패가망신을 시키는 것이 착한 정치인가. 성직자들을 사찰하고 예능인들을 사찰해 밥줄을 끊어버리고 방송에서 추방하는 것이 아름다운 정치인가.
정치가 지향하는 최고의 가치는 국민을 행복하고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어떤가. 편안들 하신가. 먹었다 하면 단위가 억이다. 탁 치니까 억 하고 죽었다지만 이제 그냥 탁 하지 않아도 억 하고 죽어야 할 판이다. 22조원의 국민혈세가 들었다는 4대강 공사는 담합을 해서 빼 먹은 돈이 1조2천인데 과징금은 1천억이란다. 많이 남는 장사다.
대통령의 측근 실세들은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이 감옥을 찾는다. 멘토라는 사람은 재판장 허락도 없이 맘대로 병원으로 가 수술을 받는다. 먹지 못해 기운을 차릴 수 없다는데 뇌물을 못 받아먹어 그러느냐고 국민들이 비아냥댄다. 시장 아주머니들의 눈물 젖은 저축을 말아먹은 저축은행 비리는 누가 얼마를 해 먹었는지 불랙홀 같아서 알 도리가 없다.
가장 깨끗한 정부라고 큰 소리 친 사람이 있는데 지금은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정부가 됐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대통령의 아들은 퇴임한 아버지가 살 사저와 관련해서 6억을 챙겼다고 난리다. 검찰은 불러 조사 한 번 안 하고 불기소 처분을 한다. 살아 있는 권력은 더 없이 좋으나 종말이 어떻게 될는지 국민은 몹시 궁금하다.
전직 대통령은 비명에 가고 국민들은 대통령의 죽음을 억울해 한다. 복수가 최선은 아니나 반드시 죄의 값은 치러야만 후세들에게 교훈이 된다. 짐승이 인간대접을 받고 산다면 양심은 왜 필요한가.
사람답게 살아보자.
자살률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노인 자살률 역시 최고라 한다. 대학생 고등학생 초등학생들의 자살률도 최고일 것이다. 꼴찌를 해도 하나도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살률이 최고라니 하도 자랑할 것이 없는 나라라서 그거라도 자랑이라고 해 보라는 신의 배려인가. 하늘을 보고 고개를 쳐들 수가 없다.
747을 타고 하늘을 나르는 꿈은 벌써 접었지만 이젠 비록 곤궁한 삶이라 해도 마음만이라도 편안하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꿈이다. 마음이 편안하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상대적 박탈감의 해소다. 29만원 밖에 저축이 없는 전직 대통령, 반란 내란의 수괴, 사형을 선고를 받은 전직 대통령이 손녀 딸 결혼식은 1억을 쳐 바른다. 이것이 박탈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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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간성을 양성한다는 육군사관학교 사열대에 서서 사열을 받는다. 죄 없는 국민을 수 없이 죽인 5.18 광주학살 사건,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가 누구인가. 그런 인물이 호의호식 떵떵거리고 사는데 대한 박탈감이다.
또 다른 한 명의 반란 내란 수괴인 전직 대통령은 사돈에게 맡겼던 400억의 비자금을 검찰에게 찾아 달라고 했다. 어디서 굴러 들어온 눈먼 비자금인가. 물어보는 것이 바보지만 이런 꼴을 보면서 분노하는 것이 바로 착한 국민들의 박탈감이다.
과부가 된 제수를 범하려고 추행을 시도한 국회의원 당선자. 논문을 몽땅 표절 복사해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교수가 되어 국회의원이 된 태권도 금메달수상자. 이런 인간들이 선량한 국민들을 허탈감에 빠지게 한다.
차기 대통령의 유력한 여당의 후보자가 정직하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소망이다. 소통이 있고 아량이 있고 국민의 오해는 속 시원하게 풀어주길 바란다. 내가 아니라면 아닌 독선에서 해방되기를 바란다.
국민들은 세상이 바뀌고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수없이 강조한다. 그런 국민의 소망이 있다면 당연히 세상은 바뀌어야 하는데 끄떡없다. 왜 그럴까. 언제 봐도 나쁜 인간은 그대로 나쁜 인간이고 썩은 정치는 오물통에 방치된 채 악취를 풍긴다.
개꼬리 3년 묻어 놔도 황모가 안 된다는 속담은 진실이다. 그러나 황모가 썩은 정치에 오염되어 개꼬리가 되는 것이 진실이 되어야 하는 세상이다.
간첩출신이 국회의원이 되려는 세상이라는 말이 농담이 아닌 진담처럼 떠 돈다. 북한 관광코스에 하나인 묘향산 국제전시관에 가보면 대한민국에서 내노라 하는 인물들과 조중동 고위층이 보낸 값진 선물들이 즐비하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표를 비롯해서 정몽준 등도 북한을 방문해서 침이 마르게 북한을 찬양했다고 북한이 선전을 한다. 이들이 종북 아닌가.
천주교 신자를 잡아 죽이기 위해 십자가를 밟게 했던 방식으로 ‘김정일 개새끼’ 못하면 종북이라고 잡아내자는 제의를 하는 막장세상은 인간의 세상이 아니다.
자신들이 했으면 세기의 로맨스고 좌빨이 했으면 세기의 불륜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분명히 하자. 짐승과 사람의 한계만은 확실하게 하자는 것이다. 아무리 자신이 인간이라 목메게 외쳐도 국민이 아니라면 짐승이 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사람답게 살기를 원한다. 외피만 사람의 가죽을 두른 것이 아니라 속살까지도 사람의 육체이길 바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밥이 입으로 그냥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수저를 들어 밥을 퍼서 입에 넣고 씹어야 배가 부르고 굶어 죽지 않는다. 노력을 해야만 사람노릇을 한다는 말이다.
사람과 짐승의 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다만 사람노릇을 하면 사람이고 짐승 짓을 하면 짐승이다. 사람처럼 살자. 정말 사람처럼 살아 보자. 사람처럼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
이기명 /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