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20608162158§ion=01당무에
복귀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줬다. 3월, 매번 결과적으로 정치적 실리를 놓친 적이 없다는 평가를 받던 그가 총선
비례대표 후보 12번이라는 순위를 받아들인 것은 세
...간의 주목을 끌었다. 당시 통합진보당 지지율에 비춰볼 때 당선 안정권은 6~7번, 당선 가능권은
10번 정도였다. 거의 처음으로 '내려놓는' 모습을 보여줬다는 평이었다.
진보정당의 고질병으로 지적돼 온 정파 패권주의에 맞서 당무
거부까지 불사하며 상식과 혁신을 주장한 모습도 그에 대한 평가를 조금씩 개선시켰다. 총선 전 통합진보당 비당권파의 한 인사는 '당권파와 맞서는데
참여계가 큰 힘이 되고 있다'고 인정했다.
이어 총선 비례대표 경선 부정사태와 중앙위 폭력사태라는 이른바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유시민에 대한 평가는 역전됐다. 특히 결정적이었던 장면은 5월 12일 중앙위 폭력사태의 한가운데서 당권파 당원들의 폭력으로부터 심상정
의장을 몸으로 감싸 지키는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이었다.
비례대표 12번을 받아들이는 모습, 자파 후보들의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을 위해 보인 인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으로 인해 전략공천 명부인 그의 원내 진입 가능성이 열렸을 때도 후보직을 사퇴한 깨끗한
모습과 함께, 이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의미는 적지 않다.
정치인 유시민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진정성'이었다. 실제로 진정성이
없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대중의 눈에 비친 그는 그랬다. 열린우리당 분당에 앞장섰고, 개혁국민당-열린우리당-민주당-국민참여당 등
당적을 수 차례 바꿨다. 6.2 지방선거에서는 김진표와 심상정을 주저앉히고 거의 혼자만의 힘으로 야권 단일후보가 됐다. 4.27 재보선에서도
민주당에 맞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배짱 승부를 펼쳐 자당의 단일후보 자리를 따냈다.
이는 놀라운 정치적 성취지만, 그 반작용으로
영악하고 약삭빠르다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인터넷 '악플러'들이 그에게 붙인 치욕스러운 별명 'chr새', '정당 브레이커', '분열주의자'
등은 사실 진정성의 결여라는 한 가지 약점을 가리킨다. 그런 그가 통합진보당 사태를 거치며 보여준 진정성은 정치인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평이다.
인내심도 생겼다. 언제든 '옳은 말'을 하지 않고서는 직성이 풀리지 않던 그였다. 정치인이라기보다는 평론가적인
모습이었다. 열린우리당 시절 김영춘 의원은 그에게 '저렇게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것도 재주'라고 했을 정도다. 그러나 통합진보당에
와서 그가 가장 많이 보여준 것은 '참는 모습'이었다. 때로는 보는 사람이 답답할 정도였다. 물론 '애국가 논쟁' 같은 경우 본성이 나왔다는
말도 있었지만.
최근에 자신의 주가가 다시 높아지는 데 대해서도 신중함을 보이고 있다. 7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한 그는 "당의 미래도 어렵고 나의 미래도 어렵다"며 당의 위기 극복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