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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1 18:27
1. 군인은 반역의 권리가 없다. 이미 역사에서, 법률로도 국헌 문란으로 규정된 쿠데타
주범, 곧 반역자가 사관학생들의 사열에 참여한 것 자체가 중대한 국기 문란이다.
19대 국회는 국가행사에 반역자/독재자, 그와 관련된 자들의 참여배제규칙부터 정해야 한다.
2. 시간에 광장이 없는 자들은 죽은 자들이다. 혁명은 광장을 자궁으로 세상에 태어났다.
저 시청앞광장은 6월의 거룩한 거처다. 대중은 여기서 새로 태어났고,
현행 헌법 또한 그렇고, 시간은 여기 이르러 비로소 미래로 흘러갔다.
3. 탈북자는 남과 북을 아는 존재로 통일의 노둣돌이 될 때 빛을 발하지 분단 갈등을
심화시키는 新서북 청년단 노릇을 해서는 안된다.
*참고자료: 서북 청년단
개신교는 한일합방후 일제치하 초기에 3.1운동을 하고
민족정신을 고취하는데 앞장서고 주도적으로 독립운동을 지원하다가
일제의 거듭된 핍박과 회유에 친일파로 변절하는 개신교들이 늘어나게 된다.
일제는 서북청년단의 전신이 되는 친일파로 변절한 그들의 편의를 봐주고,
개신교의 탈을 쓴 친일개신교는 북한지역에 교세를 넓히고 사회적으로 지위를 높이며,
일제때 고위관직을 지내면서, 신사참배와 황국군대 지원을 선동하기도 한다.
해방이후 개신교의 탈을 쓴 서북청년단은 이승만 정권과 함께 영욕의 세월을 함께 보냈다.
이들은 해방 이후 소련군정에 의해 박해를 받아 월남한 개신교와 지주들의 연합세력으로
이북의 주지나 개신교인들로 구성된 극우반공단체로 이북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김일성이 토지를 무상분배하고 종교를 없애자 남하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해방이후 북한에서 쫒겨온 감리교가 주축이 되어 남한의 개신교가 가담하여
YMCA에서 창단식을 가지고, 그 트라우마에 의해 철저히 반공주의자로 바뀌어 이승만을 등에 업게된다.
당시 서북청년단 구성원의 85%가 개신교 출신이었으며,
여기에 남한의 깡패세력과 친일세력이 더해지면서 그 세력은 더욱 커졌고
전후, 이승만 정권의 묵인하에 대규모 테러를 서슴치 않게 된다.
한마디로 이들은 정부 대신 손에 피를 묻혀주는 우파 민병대였다.
코소보와 그루지아의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던 민병대를 떠올리면 될 것이다.
이들은 말이 민병대지 사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는 준군사조직이나 다름없었다.
서북청년단은 그런 민병대류의 영역을 초월하는 존재였다.
이들은 친일세력과 마찬가지로 군과 정부 고위직을 장악하였고
대구 노동자 파업, 보도연맹사건, 거창양민학살사건, 제주 4.3 사건에 적극 개입하여
20~40만명 이상의 좌파로 의심되는 민간인과 비기독교인들을 학살하였다.
아직까지 사망자를 정확히 추정치 못하는 것은 이승만 정권의 은폐 때문이며
김구를 암살한 안두희도 서북청년단 소속이었다.
제주 4.3 항쟁의 이면에도 서북청년단이 있었다.
과거 제주에서는 서북청년단을 가리켜 '서청놈'이라고 부르며 치를 떨었다.
이때 벌어진 학살로 인해 전체도민의 10%가 넘는 3만 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전국 개신교 인규비율에 비해 제주도가 유독히 적은 것은 바로 이러한 역사 때문이며,
지금도 이 지역 할머니들은 개신교라면 치를 떤다고 한다.
4.3 도민연대가 주최한 토론회 '서북청년단의 실체를 규명한다'에서,
1947년 미군 정보보고서에는 제주에서 자행한 서청의 테러행위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며 그 내용을 설명했다.
"서북청년단 순회 집회 때 저질러지는 제주도 주민에 대한 계속되는 테러에 관해
서청 관계자들은 자신들의 조직원이 더 이상 제주에서 테러사건을 유발시키지
않도록 하겠다고 11월18일 CIC에 사과했다. 우익들은 서청의 자금모금 캠페인을
벌임에 있어서 테러에 의존해 왔다. 서북청년단 제주도 단장이 지난 주 제주 CIC에 '
제주도는 조선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말했다. 그는 이같은 자신의 주장을 CIC에 증명하려고 애썼다."
"무자비한 테러와 탄압으로 도민들의 감정이 격하됐다"며
"경찰과 서청의 테러가 심해지면서, 젊은이들은 낮에는 산으로 올라갔다가
밤에만 마을로 내려오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서청은 비록 '반공'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제주에 투입되었지만
이들의 행위는 오히려 '빨갱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다"며 "무차별적으로 사람을 죽이다 보니,
우익계통의 사람들도 상당히 포함돼 있었던 것"
"빈곤한 상황이 잔혹한 테러와 민간인에 대한 폭력을 야기한 원으로 유추된다.
이들의 명목은 '반공'이었지만 좌익 뿐 아니라 민간인들 심지어 우익 인사들에게도
무차별적인 폭력을 휘둘러 금품을 갈취하였으며, 처녀들을 강제로 아내로 삼는 행위가 다반사였다."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 이후 해체 된 서북청년단은 전국 각처에 교회를 만들고 목회활동을 하였고
그들은 자신들을 반공용사라 칭하고 사람 죽이는 일을 공산당 때려 잡는 일로 미화시키며 목회 활동을 하였다.
지금 현재는 현직에서 물러 나고 정치권력적·종교적 기득권을 쥐고 개신교를 배후에서 조정을 하고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역사는 지금의 강정마을 사태로까지 이어진다.
타 종교단체들은 해군기지건설을 반대하며 단식농성까지 벌였지만,
일부 개신교측은 이를 찬성하여 정부측과 조중동의 입장을 옹호하고 있다.
개신교의 탈을 쓰고 자신들만의 안위를 위한 친일의 역사를 숨기고,
정치적·종교적 기득권을 지키려는 탐욕을 세습하고 세뇌하려는 시도는 아직도 계속 되고 있다.
변절된개신교 리더쉽들은 아직도 좌익·종북을 외치며, 자신들은 항일·반공·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한다고 자신들의 잘못된 역사를 감추며 진실을 호도하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되풀이 되는 '북풍의 역사'를
변절된 친일수구 개신교들은 아직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현실이다.
좌익 세력들이 종교를 아편으로 몰고 종교를 말살하려한다고 하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그대로 사실인양 호도하고 있으며, 안티기독교의 대부분이 종북 좌익 세력이라며 적개심을 부추기고,
좌익·종북 세력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며, 1000만 기독교인의 용단을 외치고 있다.
모 교회의 목사라고 밝힌 두 사람이 자신들은 하늘의 사자이며 “만연한 종교, 정치, 사회의 부패를
심판하고 또한 북한의 김정일이 2월20일 기습남침을 기도한다.는 성경의 예시를 알리러왔다.”며
주변의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나체시위를 계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