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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11 11:04
새천년이 시작되었던 지난 2000년 세계의 언론들은 인류 2,500년 동안 가장 지대한 사상적 영향을 끼쳤던 인물로 카를 마르크스를 선정했다. 돌이켜보면 1848년 공산당선언이 포고된 이래 세계사의 큰 줄기는 공산당선언의 글자대로 변화했다. 그래서 인류에게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로 마르크스를 선정하는 데 우리는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다.
80년대의 도저했던 저 6.10 민주항쟁의 날, 우리가 지난 80년대 군부 독재에 대항하기 위해서 차용한 비판사상의 뼈대는 공산당선언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역사의 주역으로 내세우는 사회사상이 아니라 독재에 저항하기 위한 사회주의 사상이었다. 당시 우리에게 다급했던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아니라 민주주의 혁명이었다. 우리가 당면했던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혁명이 필요했던 것이다. 즉, 우리 운동진영은 투쟁을 위한 이론을 마구잡이로 수입하기에 바빴다. 여기에서 투쟁 후의 사회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되어 있었기에 90년 소련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아노미 속으로 빠지게 된 것이다. 김문수, 이재오, 심재철, 하태경이라는 막내에 이르기까지 일부는 극우 진영에 백기 투항하고, 일부는 야권으로 편입하고, 나머지 목표를 상실한 투사들은 뿔뿔이 흩어져 80년대 운동의 동력은 점차 식어갔다.
어찌 보면 남한의 부르주아지는 국가권력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재생산을 보장받아 왔을 뿐만 아니라 국가권력의 보호 속에서 가장 짭짤하고, 가장 안전하게 자신들의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에게 권력이란 지배계급의 이익만을 위해 조직되고 행사되는 물리력 이상이다. 노동의 생산단계에서 민중이 창출하는 거대한 잉여생산물을 부르주아지가 착취하는 것 이상으로 국가도 직접 수탈에 가담하고 있다. 지금 국가권력은 억압기구이면서 동시에 수탈기구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권력이 프롤레타리아를 통제하고 착취하는 구조를 바꿔 권력이란 바로 그 프롤레타리아의 삶에 봉사하는 권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70여 년 전, 마르크스는 어떤 사회를 꿈꾸었을까? 공산당선언이 나오기 전에 쓴 ‘독일이데올로기’에 마르크스가 그리는 사회에 대한 꿈의 단서가 나온다. “공산주의 사회에서는 아무도 하나의 배타적인 활동역역을 갖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 자신을 계발할 수 있다. 사회가 생산 전반을 통제하게 되므로 각 개인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 일을, 내일은 저 일을 할 수 있다. 아침에는 사냥을 하고,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소를 몰며, 저녁식사 후에는 비평을 한다. 하지만 그는 사냥꾼도, 어부도, 목동도, 비평가도 아니다.” 즉 마르크스는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특정의 노동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인간들의 자유로운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마르크스가 꾸었던 꿈의 핵심은 인간이 물질적 조건 때문에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실천하지 못하는 현재의 질곡을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가령 공부를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 날품을 파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공부를 위해 사회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를 꿈꾸었던 것이다.
공산당선언에서 마르크스는 어떤 꿈을 내비쳤을까? 공산당선언에서는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적 묘사와 이 현실을 타개해 나갈 주체에 대한 묘사는 아주 구체적으로 해놓고서 정작 미래에 대해서 그는 아주 조심스럽다. 공산당선언 2부를 보자. “부르주아 사회에서 살아있는 노동은 축적된 노동을 증식시키는 수단일 뿐이지만 공산주의 사회에서 축적된 노동은 노동자의 삶을 확장하고 풍요롭게 하며 고양시키는 수단이다.” 즉 자본이란 노동자들의 성과물임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소유권이 부르주아에게 귀속되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노동자의 삶을 확장시키고 풍요롭게 하며, 고양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노동자를 지배하고 노동자의 노동을 수탈하는 수단으로 운동한다. 그리하여 마르크스는 자본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는 꿈을 꾸는 것이다. 바로 이런 마르크스의 꿈이 실현되고 있는 사회가 스웨덴 등 보편적 복지국가가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진화하고 있는 북구의 나라들이다. 최근 집권한 프랑스의 좌파 정권의 재정정책의 핵심 슬로간이 부유세 75% 인상이라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 사회당의 올란드는 재벌과 부유층들이 해외로 도피할 테면 하라는 배짱으로 이를 밀어부쳤다.
공산당선언 2부는 이렇게 끝맺는다. “계급과 계급대립으로 얼룩진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체로 나타날 것이다.” 선언이란 강령이다. 강령이란 미래에 대한 설계서와 같은 것이다. 만일 현재의 야권이 권력을 쟁취하고자 한다면 어떤 사회를 만들려 하는가? 민주진영의 대권 후보자들은 이에 대해 우리 민중들에게 구체적인 해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