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 이명박 카페지기 류한림(닉네임 윤활유)씨가 2012년 3월 24일 새벽 2시에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48세로 젊은 나이로 사인은 간암말기와 그 합병증으로 경찰병원에서 장례를 치뤘다.
안티 이명박은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007년 12월17일 창립된 최고(最古)의 까페로 회원수 또한 12만3천여명 (2012년 3월 25일 기준)으로 국내 최대 회원수를 기록하고 있다.
▲ 안티 이명박 까페지기 故 류한림 씨 빈소에 놓여진 안티 이명박 깃발 © 서울의소리 | |
다음까페 안티 이명박(안티엠비)은 2008년 미국 소고기 반대 집회 때 가장 적극적으로 촛불을 들었고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산에 올라 촛불을 보고 아침이슬을 들으며 반성했다'라는 말을 하며 사죄했다.
운영자 류씨는 기륭전자 투쟁때 한쪽 눈을 실명한 것을 비롯 굴곡진 투쟁의 인생을 살아왔다. 류씨는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자신만의 탐욕을 위해 자신의 욕망에 장애물이 되는 존재가 누가되었건 희생시키는 기득권층'에 투쟁의 목소리를 높여왔다.
류씨가 참여한 기륭전자 투쟁은 2005년 7월 비정규직인 파견노동자들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했고, 사측이 이들 중 일부를 해고하면서 시작됐다.
노조는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단식, 고공농성 등을 벌였지만 사측은 경찰을 투입하고 사태를 악화시켜 교섭은 번번이 실패하였고 급기야 비정규직 투쟁과 인권을 보장하라며 맞서던 노조와 전경의 대치가 부상사고까지 촉발시켰다.
해고당할 수 없다는 노동자들은 결국 버텨내어 2010년 1월 투쟁 1,895일 만에 사측으로부터 '비정규직 10명 정규직 고용'이라는 성과를 얻어내게 되었다.
CBS는 이 기륭전자 투쟁을 두고 '비정규직 문제 심각성을 우리 사회에 여실히 드러낸 상징적인 사건'이라는 논평을 했다.
▲ 농성중 전경에 맞아 한쪽눈을 실명한 류한림(윤활유)씨. © 레디앙 | |
그 와중 류한림씨는 전경에 맞아 한쪽 눈을 실명하는 등 개인적으로 상당히 고통과 고충을 안게 되었다. 이후 류한림씨는 투쟁의 일선에서 물러나 생계를 위해 가족이 운영하는 조경업을 도왔으나 지난 2011년 11월 간암 4기 선고를 받고 투병해왔다.
2011년 11월 간암 4기 진단을 받고 간을 잘라내는 대수술을 받았으나 결국 합병증 등으로 올 3월 24일 오전 2시 경 유명을 달리했다.
마지막 가는 길.. 류씨, 이명박을 심판해 달라고인 빈소 정동영, 이종걸 의원 등 각계 인사 화환 및 조문 행렬 빈소는 잠실 경찰병원 8호실에 차려졌으며 민주통합당 박지원 최고의원, 이재명 성남시장, 이종걸 의원, 까페 안티 이명박, 인권 변호사 한웅 등 수많은 인사들의 근조화환이 도착였으며, 수많은 애도의 발길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