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뉴스톺아읽기] "주주자본주의이냐 재벌이냐 선택 강요" 비난에 "이건희와 삼성 구분하라"
[미디어오늘최훈길 기자]
30일은 19대 국회가 개원하는 날이다. 일간지, 경제지는 1면 사진 기사 등으로 국회나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관련 모습을 다뤘다. 일부에서는 19대 국회를 조망하는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19대 국회의 경제 화두는 무엇일까.당은 10대 공약, 민주통합당은 7대 경제 비전의 하나로 경제 민주화를 제시했다.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복지 등 총선 이전에 여야가 앞 다퉈 밝힌 이 같은 화두들은 국회 개원 첫날 신문에 어떻게 보도됐을까.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복지 이슈가 실종된 상태다. 경향신문이 칼럼 제목으로 < 넘치던 '복지 구호' 다 어디 갔나 > 로 꼽을 정도다. 당선자들이나 여야가 총선 이후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복지 이슈에 잠잠해진 것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언론이 이 같은 이슈를 조명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슈의 실종이라기보다는 이슈를 찾아 보도하는 언론의 실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 점에서 30일자 한겨레 1면 편집은 다른 일간지, 경제지들과 대조된다. 한겨레는 1면 머리 기사로 < 재벌개혁이냐 재벌활용이냐…진보의 백가쟁명 > 을 실었다. '대기업 전문 기자'로 알려진 곽정수 기자의 기사다. 이 기사는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정승일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이종태 시사인 기자와 이병천 강원대 교수, 정태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 간에 프레시안 지면을 통한 재벌 논쟁을 벌어지고 있는 것을 다뤘다.
장하준 교수쪽은 재벌기업에 경영권을 보장해주는 대신 세금을 더 내도록 해 그 돈으로 복지를 확충하는 식의 타협을 주장하고 있다. 장 교수 등은 '정태인·이병천의 비판에 답한다'는 부제가 달린 글에서 "재벌의 유용성과 정당성을 옹호한다는 점을 곡해해, 마치 우리가 이건희·정몽구와 같은 재벌 가문과 가신그룹의 이해관계와 불법행위들까지 옹호하는 양 착각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병천 교수는 "장하준 등이 '주주자본주의냐, 재벌이냐'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고 있다"며 이들의 주장을 '재벌 프렌들리한 복지국가론'이라고 비판했다. 정태인 원장은 프레시안에 '삼성의 목줄을 틀어쥐지 않으면 복지국가도 없다-장하준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통해 재벌타협론을 비판했다.
한겨레는 "개혁진보 진영은 그동안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론을 공통 화두로 삼으면서도 재벌개혁의 구체적인 방법론을 둘러싸고는 이견을 보여, 본격적인 토론을 벌인 적이 없었다"며 "이번 논쟁은 개혁 진영 안에서도, 재벌 비판을 넘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사회경제 모델과 성장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주목된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3면 기사 < "재벌 세금늘려 복지국가로"↔"경제민주화 없인 복지 없다" > 에서 '재벌활용론'과 '재벌개혁론'의 충돌 지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3면 기사 < 경제민주화 외치는 여야, 방점은 다르네 > 에서 민주당은 재벌의 경제적 집중 완화와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는 입장을, 새누리당은 재벌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거래를 시정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한겨레는 "(여야)
둘 다 하도급 부당 단가인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피해액의 3배)의 확대 등 대기업-중소기업 간 공정거래 확립의 필요성에는 동감을 표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보 진영 안에서 재벌 개혁 구호를 넘어 구체적인 대안이 논의되고 있고, 새누리당이 과반수를 차지한 18대와 달리 19대에선
여야가 '재벌 규제책'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되는 일이다. 언론이 이 같은 경제 사안을 찾아내 '이슈 파이팅'하고, 대안까지 고민해 보도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셈이다.
오건호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날 경향신문 칼럼 < 넘치던 '복지 구호' 다 어디 갔나 > 에서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풀뿌리 복지국가 운동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의제 영역에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지닌 사업이 필요하다"며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무상의료를 구현하자는 '건강보험 하나로' 운동, 능력껏 세금을 내자는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운동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밝혔다. 또 "구체적인 실행방안도 내놓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29일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경향 칼럼 < 누가 신용불량자 문제를 방치하나 > 에서 "관념성에서 벗어나, 사회경제적 문제를 실제로 다룰 수 있도록 구체화되고 현실성을 갖지 않으면 안된다"며 "이 점에서 경제민주화, 보편적 복지, 재벌개혁과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 수준이 높은 슬로건이나 언어는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공허한 구호를 반복하는 것에 그치는 역효과를 갖는다"고 지적했다. 최장집
교수는 "추상적 이념에 헌신하나 구체적 실천에는 관심이 없는, 진보의 이름을 딴 습관성 정치구호나 관성화된 행태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또 안찬수 내일신문 편집위원은 29일자 칼럼 < 19대 국회가 지켜야할 약속 > 에서 "정작 선거가 끝나고 국회 임기가 시작됐지만
입법은 하지 않고 연말 대선에서 또다시 표를 얻자고 경제 민주화 구호를 재탕한다면 국민들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경제 민주화의 핵심 고리는 재벌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이어 그는 "그동안 재벌개혁에 대한 논의가 공수표가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나라 회사법(상법)에 기업집단에 대한 기초 개념조차 정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독일의 콘체른법과 같은
'기업집단법'을 통해 개별기업 범위를 넘는 기업집단의 존재와 구성 요건을 법률적으로 규정하는 것부터 첫 걸음을 떼야 한다"고 밝혔다.
사실 이 같은 '재벌개혁' 논의가 진행되기 위해서는 언론이 '공론장'을 만들어주는 게 필수적이다. 그 점에서 < 이건희 회장, 지하주차장 통해 출근 > (조선일보 경제면 2면), < 유럽 다녀온 이건희 전자 사장단과 오찬 > (매일경제 13면) 등
경제적 이슈보다는 언론이 회장 동정 기사에 매몰된 게 아닌지 고민해 볼 대목이다.Copyrights ⓒ 미디어오늘.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