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2
0
조회 390
2012.06.01 18:06
"02-****-0601"
내 손전화에 발신된 전화번호다.
전화를 받자 주민번호 뒷7자리를 눌러 내 신분을 확인 시켜 주었다.
그리고 두명을 찍으라고 했다. 1명만 찍으면 무효라고 했다.
기호 1번 이해찬에게 투표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사람에게 투표했다.
최소한 나머지 한사람은 김한길은 아니다.
난 최소한 김한길이란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김한길이 지금 민주당 당대표선거에서 앞서나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해찬과 김한길이 지난 이명박정권 시절 정치행보를 보면 답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이명박정권이 촛불이 꺼져갈 무렵 공안통치로 마구잡이로 사람들을 잡아갈 때,
미네르바 사건 즉,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자기 귀에 거슬리다는 이유 하나로
미네르바를 잡아들일 때,
MBC PD수첩에서 광우병과 관련한 보도를 했다는 이유로 PD들을 기소 할 때
촛불들러 온 유모차 아줌마 부대에게 기소여부를 들먹이며 협박 할 때
이해찬은 이명박정권에 대해 말하였다.
이명박 정권은 지금 파시스트 정권으로 되어 가고 있다고
이명박 정권이 지금 대한민국이 그간 쌓아올려온 민주주를 허물어뜨리고 있다고
이해찬은 이명박정권을 향해 경고하고 싸웠다.
그러나 그 자리에 김한길은 없었다.
이해찬은 뿔뿔히 흩어질 뻔한 친노 진영을 하나로 규합해 내기 위해 있는 힘을 다 했다.
시민주권을 결성해서 친노정치인의 구심점 노릇을 했다.
노무현 재단을 만들 때 우리 재단에 물심양면으로 힘을 모아 달라고 그는 사람들에게 절규했다.
자기는 국무총리까지 역임했기에 자리에 미련이 없다며 자신의 지역구를 초개 처럼 버렸지만
새로이 출마하는 후배 정치인들의 선거 한복판에 뛰어들어 야권후보를 지지해달라는 호소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김한길은 없었다.
이해찬은 친노진영만을 규합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이해찬은 전체 야권을 하나로 묶는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성근과 함께 야권통합 운동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 성과로 민주통합당을 일구어 냈다.
그러나 야권통합 현장 그 어디에서도 김한길은 없었다
이명박정권의 거듭된 실정이 국민들에게 각인되고 이제 야당으로 출마하여도 당선 가능성이 많아졌을 때
어디 있었는지도 몰랐던 김한길은 야권지지도가 센 서울의 한 지역구에 출마하여 당선이 되었다.
그러나 이해찬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끝까지 국회의원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세종시 거기에 심대평이 나왔다.
우리 노무현대통령의 치적인 행정복합도시가 심대평에게 빼앗길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세종시로 향해 줄것을 부탁했다.
전체를 위해 제발 출마해 달라는 많은 사람의 요구를 그는 끝까지 외면할 수가 없었다.
결코 자신의 사심을 채우기 위해 세종시에 출마하지 않았음을 우린 지켜보았다.
그런 이해찬이었다.
난 그래서 이해찬을 찍었다.
이해찬이 상대적으로 가장 큰 정의이기에 난 이해찬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