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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30 18:49
<윤현석, 노무현재단 웹툰에서>
군대에 있을 때 몇 개월 동안 해안방어에 투입된 적이 있었다. 군의 지휘관이란 분들은 사병을 놀리면 사고가 난다고 믿으시는지 몇 십 년을 지켜온 장소에서도 크고 작은 작업 지시가 그치질 않는다. 한번은 해안가 철조망을 위장하라는 지시가 하달되었다. 본부에서 내려온 재료는 녹색 분말의 염색약 한 봉지가 전부였다. 초소에서 차포 떼고 남은 너댓 명의 졸병들이 동네에 흩어져 있는 지푸라기들을 모아 철사로 묶은 다음 밥솥에 끓인 (ㅠㅠ) 염색약에 담가서 보기 좋게 물을 들였다.
작업 할 철조망은 많고 염색약은 한 움큼이 전부였기에 물을 최대한 많이 넣고 끓여야 했다. 선임병 한명과 같이 작업을 했다. 고향에 두고 온 새악씨 이야기 등 있는 이야기 없는 이야기 지어 바치면서 졸병의 의무를 다 하고 있는데 문득 그가 아주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야, 참 OOO 이상타. 이 찌프라기를 여그 담아서 물들이면 물이 OO 계속 줄제?”
“넵!”
“물이 이케 계속 줄면 말이다, 색깔은 OO 더 찐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어, OO 그러게 말입니다!”
나는 선임병의 놀라운 관찰력에 경탄한 듯 대꾸하면서 그의 상식에 반한 밥솥의 염색약을 꾸짖는 듯 아주 못마땅한 눈초리로 째려보기까지 했다. 그는 적극적인 대꾸에 기분이 흐뭇하여 “아, 참 OOOO 모를 일이다”며 혀를 찼다. 그제야 관심을 갖고 보니 지푸라기들을 물들이는 초록색이 점점 연해져 가고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물을 끓이면 물이 기화되니 색은 진해져야 되는 게 맞다. 하지만 기화 속도보다 빠르게 지푸라기들이 가져가는 염료의 양이 더 많기 때문에 염색물은 점점 연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제 생각에는 OO 아무래도 이놈들 때문인 거 같습니다. 이것들이 염색물을 빨아가니 OOO 색이 점점 희미해지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OO 맞다. 맞아! 염색약은 OOO 이것밖에 없는데 물들일 놈들은 OO 이케 OOO 많으니 색깔이 계속 빠쪄삐리는 기다. OO, 군대는 오와 열인디 이케 색깔들이 OOOO 통일이 안 되면 어쩌자는 거냐. OO OOO. OO, 염색약이 비싸면 얼마나 비싸다고, OOO OO들.”
우리의 대통령께서 한국 정치사의 획을 긋는 십자가를 지시고 부엉이바위에서 생을 마감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후미진 서초동 오픈옥션 갤러리 루미나리에서 열린 1주기 전시회가 생각납니다. 많은 분들이 외진 장소를 찾아와 좀 많이 슬펐고 애가 탔습니다. 저도 그때 ‘내가 지금 여기에서 구경하는 입장에 있어야 하는 게 맞는가’ 자문했습니다.
노무현을 떠나지 못 하는, 노무현을 떠나보낼 수 없는 국민을 대표하고 대신하여 노무현재단에서 주최한 ‘노무현이 꿈꾼 나라’ 5월의 3주기 추모행사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토요일과 일요일은 자봉의 날로 잡아 재단과 함께 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아직 재단의 공식 발표가 없어 얼마나 많은 자봉인원이 투입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항상 미리 와 계신 분들이 있었고 선약이 있어 훌훌 털고 가더라도 끝까지 챙겨주신 분들이 있었던 걸 알기에 그냥 넉넉했을 거라 짐작합니다.
작년과 금년의 자봉을 하면서 현장에서 느낀 점은 한마디로 성장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행사 장소의 면적과 위치는 노무현재단의 외연이, 덩치가 얼마나 커졌는지 보여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참여 회원님들의 열의와 기쁨은 넘쳤고, 전국에서 크고 작은 자발적인 지역행사가 많아졌고, 시민들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 한두 가지 실수가 없을 수야 없겠죠. 그러나 자봉 1인의 입장에서 볼 때 전체적으로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장소와 무대구성의 틀이 잡혀 있었고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프로그램 행사 관리와 통제가 물 흐르듯 이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특히 시청 행사에서 자봉들에게 제공한 무료 식사 대접의 품질은 ‘본전 뽑네’ 수준이라서 대외비 정보로 우리끼리만 알고 있었으면 하는 심정이었습니다. 반면에 기획/준비기간을 제외하고라도 재단님들의 한 달에 걸친 노고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서울에서 봉하까지 보잘것없는 작은 노빠들이 신명이 나 자체적으로 행사를 연 것도 다 믿거나 하는 님들 덕인가 합니다.
만약 내년에도 자봉의 기회가 온다면 올해 세종문화회관 전시관의 출구에 마련했던 회원유치 자리에 앉아보고 싶습니다. 입구에 이루어진 긴 줄에 놀라 다음을 기약한 시민들이 많았듯 출구 쪽에 자리 잡은 매장과 회원가입신청 장소가 상대적으로 협소하여 고객들을 다 받을 수 없었습니다. 내년에는 더 넓은 장소에서 다양하고 충분한 메뉴로 이 시대 민주주의의 아이콘인 노무현을 널리널리 알리는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이런 자봉의 기쁨이 거듭되면서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우리의 슬픔과 부채 의식이 잦아듭니다. 이제 노무현은 당신께서 원하셨던 대로 작은 비석으로 남겨 놓았으면 합니다. 대신 우리가 자봉이든 뭐든 노무현의 염료가 되어 노무현이란 원액을 국민을 대상으로 진하게 멀리 물들여나갑시다. 이 세상이 당신의 상징색인 노란색으로 물들었을 그때야 바로 어떤 놈이 주구장창 입으로만 떠드는 국격이라는 것도 올라갈 것이라 믿습니다. 그때가 되어야 우리는 진정한 노무현의 바다에서 만나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족) 전시회장 입구에서 풍선을 만드느라 분주할 때였습니다.
형색이 딱 어버이연합 수준인 두 노인네가 관람을 기다리며 길게 늘어선 두 줄을 보고 말합디다.
“OO OO 많네.”
속으로 대꾸해 주었습니다.
‘OO OOO들아, 우린 아직도 OOO 배고프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