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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8 10:11
시사 + α 2012/05/28 07:56
서울광장에는 매년 5월과 12월, 불교의 연등과 개신교의 성탄트리가 불을 밝힌다.
올해 4월에 부처님오신날 연등회(석가모니의 탄생을 기념하여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행사)가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됐고, 드디어 5월 19일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후 처음으로 燃燈會가 치러졌다. 연등회는 신라시대 때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열리기 시작했고 고려시대 때에는 국가적인 행사로서 성행했다고 하는데, 중요무형문화제 지정으로 연등회가 (단순히 종교행사가 아닌)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으로서 이제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고 볼 수 있겠다. 앞으로 연등회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지원을 받게 될 테고, 외국의 다양한 축제들처럼 관광상품으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땅에서 석가탄신일의 역사는 크리스마스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상업성과 서구화를 비롯한 여러 가지 요인들로 인해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좀 낮은 편이다.
하지만 말이야 바른 말이지, 부처님오신날과 성탄절은 엄연히 동급이다. 전자는 석가모니가 탄생한 날을 기념하는 것이고 후자는 예수의 탄생을 기념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대한민국이 불교국가나 기독교국가가 아닌 다음에야 둘은 결국 비슷한 위상을 가지는 셈이다. 요즘 세태를 보면 현실적으로는 크리스마스가 훨씬 더 많이 주목을 받지만, 우리의 역사를 길게 보면 오히려 석가탄신일이 더 관심받을 만한 여지가 많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기껏해야 백몇십 년의 역사를 가진 성탄절은 천몇백 년의 전통을 가진 부처님오신날에 전혀 비할 바가 아니다. 다만 앞서 말했듯 서구화된 한국사회에서 상업적 이득을 얻기에 유리한 크리스마스가 실질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석가탄신일 연등회와 같은 찬란한 유산의 가치가 줄어들지는 않는다.
[서울광장의 대형 연등과 성탄 트리 - 사진 자료: 경향신문, 연합뉴스]
아무튼 부처님오신날과 크리스마스는 똑같이 의미 있는 날이고 비슷한 부류의 기념일이며, 불교신자나 기독교인에게는 더없이 중요한 날이다. 그래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청 앞 광장에서는 매년 5월과 12월에 대형 연등과 성탄 트리의 점등식이 거행되는데, 종교인이든 아니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 자체가 특별히 문제있다고 생각하진 않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불교든 기독교든 둘 다 한국인들이 굉장히 많이 믿는 양대 종교이기도 하고, 또 공식적인 휴일로 지정될 만큼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에 세계 3대 종교 중에 나머지 하나인 이슬람교가 한국에서 불교나 기독교 정도로 성장한다면, 그때는 서울광장에 이슬람교 기념일을 기리는 상징물이 들어설 수도 있고 이와 관련된 공휴일이 지정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국가에서 어떠한 특정 종교를 막론하고 모두 존중을 받는다는 뜻이며, 다종교 사회 속에서 종교간에 서로를 인정하고 화합한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평화와 소통의 정신을 제대로 가지지 못한 인간들이 있다. 연등회가 치러졌던 지난 5월 19일에는 일부 개신교인들이 석가탄신일 연등회의 무형문화재 지정을 비난하며 교단과 관련 있는 종합일간지에 (제목과 내용이 전혀 딴판인) 광고를 냈고, 또다른 일부는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벌어지는 연등행사들에 대해 딴지를 걸며 서울 종로의 조계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벌인 것이다. 도대체 왜 이런 어처구니 없는 행태는 개신교에서만 자행할까? 같은 기독교인데도 천주교는 이러는 경우를 거의 못 본 듯하고, 반대로 불교에서 기독교에 이런 짓을 저지르는 것 역시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아무리 개신교가 배타적이라고 하더라도, 종교가 없는 시민들도 가만히 있는 타종교의 행사에 대해 이토록 치사한 방법으로 태클을 거는 건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불교와 천주교는 안 그러는데, 어째서 개신교만 그러는가? 이러니까 일반 시민들로부터 '개독'이라는 소리를 안 들을 수가 있나..
[여의도순복음교회와 관련 있는 국민일보에 5월 19일 게재된 광고]
광고 내용을 대충 읽어보면 알겠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편협한 시각으로 서술되어 있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일단, 석가탄신일을 성탄절과 동급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성탄절은 거의 모든 국가가 지키는 기념일이고, 부처님오신날은 그저 '이웃집의 아름다운 경사'란다. 불교신자나 기독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두 기념일이 매한가지이거늘, 가장 기본적인 시각에서부터 이들은 불교를 개신교 아래에 놓고 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등행사의 전통적인 의미를 축소하고, 소송과 물리적 마찰을 운운하며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국민 기만행위에 대한 책임을 공공기관에 떠넘긴다. 제목과 맨 끝부분 한 줄만 빼고는, 전부 다 연등회의 무형문화제 지정에 대한 비난인 셈이다. 그런데 이들이 내세운 근거("연등행사는 조선시대 60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일제에 의해 강제 집행된 문화정책") 자체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역사학자 전우용에 따르면, "조선시대에 연등축제의 맥이 끊겼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란다.
["오늘 저녁은 연등(燃燈)하는 밤이다. 도민(都民)들은 부자 형제가 서로 이끌면서 관등(觀燈)하련만 나만 혼자니, 이 무슨 팔자인가?"(1773. 4월 초파일)]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인용한 1773년(영조49년) 사월 초파일 조선왕조 실록의 일부 (5월 25일 머니투데이 보도)]
일부 개신교인들의 이런 어이없는 행태를 보다 보면 한 가지 떠오르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엄연히 다종교 사회인데도 불구하고 우리의 수도 서울을 자기 멋대로 하나님께 봉헌한 개신교인 이명박에 대한 기억이다. 기사에 의하면, 그는 2004년 5월 31일 새벽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청년학생 연합기도회'에 참석해서 '서울을 하나님께 바친다'는 봉헌서를 낭독했다고 한다. 어떻게 서울시장이라는 인간이 이런 말도 안되는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이것 하나만 그런 게 아니다. 공교롭게도, 이명박이 제32대 서울특별시장(민선 3기)으로 재임하기 시작했던 2002년부터 시청 앞 성탄 트리는 서울시가 아닌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에서 설치했다는데, 보도에 따르면 이때부터 서울광장 트리 꼭대기에 '십자가'가 달리기 시작했단다(이전에 서울시가 직접 제작할 때에는 꼭대기에 '별'을 달았다). 뭔가 좀 이상하지 않은가?
[CTS 기독교TV(www.cts.tv) 화면 - 이미지 출처: 오마이뉴스]
전임 시장 이명박은 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했지만, 후임 시장인 박원순은 절대 그럴 생각이 없는 듯하다. 며칠 전 5월 22일에 기사화된 <불교신문>과의 인터뷰 내용 중에 일부분을 한 번 읽어보자.
이성수 불교신문 편집국장 - 불교계는 역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종교간 화합을 깨는 행위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던 경험이 많다. 역대 대통령은 물론 지자체에서 종교편향이 일어났던 사례들도 많다.
박원순 서울시장 - 서울시는 어디에 절대로 봉헌하면 안 된다. 서울시가 특정종교에 편향적으로 해서는 안 되고, 편향적으로 할 수도 없다. 예를 들면 서울광장에 부처님오신날이 되면 봉축장엄등을 설치하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트리를 세우는 것처럼 서울광장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다만 불교에 여러 지원을 하는 것은 불교라는 종교를 지원한다기보다는 문화유산으로서의 불교에 대한 지원으로 봐야 한다. 때문에 다른 종교에서 특별히 문제 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면 명동성당은 한국 근대사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서울시가 인프라를 만드는 일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종교적 관점이라기보다는 시민의 이익, 역사적 관점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
[인터뷰 원문 보기: http://www.ibulgyo.com/news/articleView.html?idxno=118430]
같은 서울시장이지만 공인으로서 종교를 대하는 수준은 이토록 천지차이다. 상식적으로, 이명박과 박원순 중에 과연 누가 옳은지는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보편적인 정답이니까..
자, 부처님오신날을 맞아서 오늘은 종교와 관련된 포스팅을 이렇게 해보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불교신자나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석가모니 탄생일이나 예수 탄생일이나 별 차이가 없다. 물론 가정의 달 5월에 있는 석가탄신일과 시끌벅적한 연말인 12월에 있는 성탄절이 완전히 똑같을 순 없을 테고, 상업적으로 이용하기에 안성맞춤인 크리스마스에 비해 부처님오신날은 상대적으로 좀 조용한 편인 건 사실이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두 기념일은 동급이고, 일반적으로도 모두에게 공히 기쁜 날이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석가탄신일은 분명히 우리에게 의미 있는 날이고, 수많은 연인들과 가족, 친구들에게는 성탄절도 굉장히 좋은 날일 것이다. 이렇게 그냥 서로를 인정해주면 된다. 그런데 일부 개신교인들은 자기들의 종교만 중요하다는 듯이 부처님오신날을 흠집내려고 하며 아집과 독선으로 우리의 평화를 깨뜨리려고 한다. 이와 같이 나쁜 행태는 언제 어디서든 단호히 거부되어야 하고, 박원순 시장이 말한 것처럼 공적인 영역에서는 특정종교에 편향적이면 안 된다. 한국은 이슬람국가가 아니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는가? 마찬가지로, 한국은 불교국가도 아니고 기독교국가도 아니다. 함부로 우리 삶의 터전을 봉헌하는 개독의 국가는 더더욱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