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인격살해한 것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이태경 칼럼] 특권과두제의 발전적 해체 없이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 | re*****@naver.com

세계제국을 건설했던 로마,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중국의 여러 왕조, 5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왕조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과두제(寡頭制)가 공고해지면서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비단 고대나 중세, 근세의 왕정 및 귀족정만이 과두제의 심화로 인해 멸망한 것은 아니다. 현존하는 민주공화국들 중에도 경제발전의 지체와 민주화의 미성숙으로 인해 후진국 대열에 있는 허다한 나라들이 과두제의 폐해에 신음하고 있다.

과두제(oligarchy)는 정치권력과 경제권력 그리고 문화권력 등이 소수 엘리트에 의해 장악되고 이 소수 엘리트가 국가를 자신들의 일상사를 처리하는 위원회로 만들어 사적 이익 추구에 동원하는 정치체제이다. 특권동맹이 과두체제를 구성해 국가를 장악한 상태에서는 법도 특권동맹을 위해 해석되고 집행되며, 여론조작과 왜곡이 일방적으로 특권동맹에게 유리하게 일어나고, 게임의 룰과 각종 기회가 특권동맹의 이해에 부합되게 만들어지고 주어지며, 사회적 자원이 특권동맹 위주로 할당되고 배분된다. 한 마디로 특권동맹이 과두제를 구성해 99% 시민들을 다스리는 국가는 특권동맹의, 특권동맹을 위한, 특권동맹에 의한 국가라 할 것이다.

특권과두제 국가를 멀리서 찾을 것이 없다. 지금의 대한민국이 정확히 특권동맹의 과두제가 지배하는 나라이니 말이다. 87년 체제 성립 이후 한국사회의 성격을 가장 정확히 규정짓는 개념은 특권과두제이다.

권위주의 정부가 축출된 자리는 정의롭고 강한 국가가 아닌 특권과두제가 차지했다.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잘 해야 독재권력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하거나 하수인 역할을 했던 재벌, 금융엘리트, 정치 엘리트, 검찰 및 고위 경제 관료 등의 엘리트 테크노크라트, 조중동 등의 수구과점언론, 학자 및 연구자 등의 전문가 그룹 등은 국가권력이 연성화된 틈을 타 광범위하고도 강고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선출된 권력을 압박하고 종내에는 제압하기에 이르렀다.

이 네트워크를 과두제라 명명하는 것은 정당하고 자연스럽다. 또한 이 네트워크는 정의․평등․자유․공화 같은 지고의 가치나 민주국가원리, 법치국가원리, 사회국가원리 같은 대한민국 헌법이 추구하는 국가구성원리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배타적 특권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권동맹이라고 불러도 좋다. 과두제와 특권동맹을 합치면 특권과두제가 된다.

이 특권과두제는 한국사회를 자신들의 특권이 최대한 관철되는 사회로 완전히 재편했을 뿐 아니라 국가를 사실상 장악해 국가를 모든 국민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국가로 개조했다. 특권과두제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특권과두제를 구성하는 지배블럭의 탐욕이 얼마나 무서운지, 특권과두제를 형성하는 지배블럭이 특권과두제를 해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이나 세력에 대해 얼마나 집요하게 보복하는지를 알고 싶은가?

그렇다면 3년 전 이맘 때 자결한 노무현의 집권시기와 죽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노무현은 준비나 역량 부족도 있었겠지만, 특권 수호를 위해 강철 같은 의지로 무장한 지배블럭의 처절한 저항과 반격으로 인해 한국사회를 특권과 반칙이 없는 사회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노무현은 퇴임 이후 질투와 의혹과 증오가 뒤섞인 지배블럭의 저열하고도 집요한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자결을 택하고 말았다.

2008년 겨울부터 2009년 5월까지 노무현과 그 일가, 측근들에게 퍼부어졌던 지배블럭의 모함과 저주의 강도를, 지배블럭이 노무현과 친노그룹을 인격살해하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의 극악함을 복기하면 지금도 격심한 분노가 치민다.

분명한 것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추진한 일련의 개혁조치들을 형해화시킬만큼 특권과두제의 힘이 세고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크기가 크다는 사실이다. 또한 특권과두제를 구성하는 지배블럭은 직전 대통령을 핍박해 자결에 이르게 할 정도로 모질고 흉악하다. 한편 이명박이 통치하는 동안 그리고 이명박에 힘입어 특권과두제는 더 강력해지고 완성도도 높아졌다.

대한민국이 특권과두제 국가이고 특권동맹을 위한 나라임은 명백하지만, 특권과두제가 지금처럼 지속되는 한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는 사실도 분명하다. 특권과두제 국가 안의 지배블럭은 특권동맹의 특권보장을 위해서 국가와 언론을 사유화하고 시민들의 정신을 노예화하며 법과 제도를 지배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이 과정에서 불의, 불공정, 반칙, 특혜, 부정, 부패, 비리, 유착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사회가 이렇게 재편되면 시민들은 서로에게 늑대가 되며 사회에 적대와 반목, 증오와 다툼이 만연하게 된다. 사분오열되고 구성원들이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가 온존할 리 없다. 그런 국가는 쇠락하다가 멸망할 수 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지금 특권과두제의 지배가 뿜어내는 악취로 가득하다. 더 늦기 전에 특권과두제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그 자리에 정의롭고 공정하며 유능한 국가를 세워야 한다. 2012년 대선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권과두제의 지배가 더 공고해진다면 대한민국은 희망 없는 디스토피아가 될 것이다.